고학찬 전 예술의전당 사장 “낮선 길을 찾아 다니는...난 늘 구르는 돌”
고학찬 전 예술의전당 사장 “낮선 길을 찾아 다니는...난 늘 구르는 돌”
  • 정성남 기자
    정성남 기자
  • 승인 2020.06.22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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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찬 전 예술의전당 사장
고학찬 전 예술의전당 사장

[정성남 기자]지난해 12월2일 고학찬의 비긴어게인이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첫 영상을 선보인 고학찬 전 예술의전당 사장은 유튜브에 흠뻑 젖어있다.

그는 앞으로도 유튜버로 계속활동을 할 것이라면서 “유튜브는 새로운 미래라고”정의해 주었다. 그러면서 고 전 사장은 자본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유튜브이며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또 싫은 사람 입장에서도 싫으면 안보면 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를 하고 싶어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 사람들이 유튜버로 활동을 하다보면 문제가 생길 경우 대처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고 전 사장은 이에 대해 “가난하고 외로운 유튜버들과 손잡고 이를 해결하고, 나아가 유튜버가 되는 길을 안내도 해주는 선배로서 유튜버 세상을 한번 펼쳐보는 것이 제 꿈이 됐다고 설명했다. 

국내 최대 복합 문화예술 공간의 운영책임자로 6년의 임기를 마치고 명예롭게 퇴직한 고학찬 전 예술의전당 사장을 지난 17일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만나 그의 진솔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고학찬 전 예술의전당 사장(이하 고학찬 전 사장)을 만난 첫 인상은 마냥 다정한 이웃집 아저씨 그 자체였다. 

고 전 사장이 첫 유튜버로서 공개한 영상은 “강아지 관객을 위한 콘서트 모란동백이었다” 아이디어뱅크로 정평이 나 있는 그의 첫 유튜브는 이렇게 재치있게 기획되었다.

'고학찬의 비긴어게인' 유튜브 채널에서 첫 공개한 '강아지 관객을 위한 콘서트 모란동백' 장면. 그의 관객이 되어준 강아지들사진 [출처=유튜브 캡쳐]
'고학찬의 비긴어게인' 유튜브 채널에서 첫 공개한 '강아지 관객을 위한 콘서트 모란동백' 장면. 그의 관객이 되어준 강아지들사진 [출처=유튜브 캡쳐]

기자가 찾아본 그 영상 속 고 전 사장은 텅 빈 야외무대 중앙에 홀로 서 뛰어난 가창력의 노래 솜씨를 뽐내고 있는 가운데 강아지들이 한두 마리씩 모여들고 객석에는 귀여운 강아지들이 관객으로 관람을 하고 있었다.

그는 고학찬이 노래한다고 관객들이 오겠습니까?라는 반문과 함께 강아지를 섭외한 이유를 설명한다. 강아지 4마리를 섭외한 고 전 사장은 아마 강아지 관람객 앞에서 노래를 한 사람은 자신이 처음 일 것이라면서 유튜브 세상에서 무명가수가 노래한다면 관객이 오겠습니까? 그렇다고 텅 빈 객석보다는 평소 좋아하는 강아지들 앞에서 노래 한 번 해보고 강아지들한테 박수 받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에서 첫 방송에 강아지들을 관람객으로 모셨다고 설명해주었다.   

이같이 시작한 그의 유튜버 변신은 6개월째를 맞이하고 있는 데 벌써 구독자가 1300명이나 되었다.

- 노래가 하고 싶은 고학찬 “노느니 염불한다”

그가 이렇게 유튜버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고 전했다, 먼저 우리나라 속담에 ‘노느니 염불한다‘는 말이 있듯이 나이가 들어 다른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이유가 첫 번째 이며 두 번째로는 어려서부터 노래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그는 건물도 없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바닷가로 데려가 책상으로도 사용할 수 없는 넓은 바위들에 앉혀놓고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은 노래 뿐, 초등학교 1-2학년, 2년 동안 노래만 불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년 동안 바다에서 노래를 한 그는 음악특기생으로 중학교에 입학하였고 그 당시 교실이 없었던 2년이 그에게는 남들이 갖지 못한 소중한 발성 연습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 전 사장은 노래를 접을 수 밖에 없는 시간을 맞이하였다.

그는 대학 진학에서 성악과를 가려고 했지만 심장판막증이라는 병을 얻어 노래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호흡이 생명인 노래에 이같은 병으로 인하여 결국 연극영화과로 진로를 바꿀 수 밖에 없었던 시간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숙성된 장 맛 이라고 할까 그의 전공은 연극영화였는데 70이 넘었지만 가창력은 변함이 없다. 이같은 비결은 무엇일까?

고 전 사장은 제주도 출신이다, 그런 그는 자연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고 전 이사장은 어머니가 노래를 잘했다면서 아마도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어머님과 제주도 방송국에서 제주민요를 녹음한 것을 함께 한 적이 있다면서 나름대로 개인적 노력도 있지만 유전적으로 어머님의 피가 섞인 것이라면서 “모든세상이 제 무대”입니다. 그래서 고 전 사장은 길을 걷다가도 사람이 없으면 노래를 부른다고 웃음지었다. 

- 고학찬의 아이디어뱅크 “공연물 영상화 사업...코로나19 비대면 공연에 빛나”

이야기의 주제를 바꿔보았다.

고학찬 전 사장이 거쳐 온 ‘직업’만 해도 25여개가 된다. 또 그는 아이디어뱅크로도 정평이 나있다. 

고 전 사장은 PD, 작가, 음악감독, 한인방송국 사장, 소극장 극장장에서 바텐더, 패션사업가까지 저자는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그 도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도전이 개인적 욕심이나 발전을 위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길 위를 함께 걷는 주변사람들, 친구들, 동시대인들의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었다는 데서 경외감마저 든다.  

많은 직업속에 그가 아이디어뱅크로 정평이 나 있는것에 대해 한마디로 ‘호기심’이라고 정의해 주었다. 그는 교수.PD 등의 직업 활동 속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는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날 인터뷰 장소에 오기 전에 서울역에서 유튜브 촬영을 하고 왔다. 오늘 촬영 전에 동대문 풍물시장에 들러 소품으로 예전 고등학교 모자와 교복을 구입한 후 이를 착용하고 대전부르스를 불렀다면서 “고등학교 옷에다 고등학교 모자를 쓰고 한번 해보자 잠깐이라도 그때로 돌아 가보자”라는 취지였다고 설명해 주었다.

- 고학찬의 발상전환은 오늘의 코로나19와도 연결되었다.

그는 예술의전당 재임시 지난 2013년 공연물 영상화 사업을 펼쳐 호평을 받고 있다. 고 전 사장은 직원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시작한 영상화 사업이 1년의 시간이 지나가면서 지역민들의 호평이 입소문으로 번져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역의원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예산도 확보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문턱이 높았던 예술의전당은 연간 관람객이 230만명에서 300만명으로 늘어나는 자체도 고 전 사장이 문턱을 대폭 낮추었던 이유 때문인 것이다, 공연물 영상화 사업은 일반 중계영상 제작보다 더 많은 카메라를 동원하여 관객석으로 부터 프론트스테이지는 물론 백 스테이지까지 풀로 동원해 촬영을 한 후 편집본을 만들어 전국의 문예회관에 보급했던 사업이었다, 이같은 사업진행으로 인하여 지방의 관람객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던 오페라 뮤지컬 등의 공연문화 예술에 대한 전반적 관람을 현지에서 관람할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지난 몇 달간 벌어진 코로나19사태로 인하여 비대면 공연이 시작단계에 들어선 지금 고 전 사장의 공연물 영상화사업은 빛을 더 내고 있는 중이다. 고 전 사장은 지난 2014년 울릉도의 한 학생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면서 편지의 내용에는 “오늘 처음으로 발레라는 공연을 보았다”면서 호두까기 인형을 스크린을 통해 울릉도에서 본 소녀는 “난 앞으로 발레리나가 되고 싶습니다”라는 편지의 내용이라고 소개했다.

고 전 사장은 “눈물나죠, 아니 제가 호두까기 인형을 영상으로 만든 것을 울릉도 소녀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레를 보고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 것 아니예요?  그게 영상화 사업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미국에서 만들었지만 처음에는 그곳에서도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그 사연은 오페라계의 반대였다면서 오페라를 오페라극장에서 봐야지 지방에 있는 극장에서 봐 버리면 누가 오페라를 보러오겠냐며 반대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자신은 ‘오페라는 오페라를 영상으로라도 본 사람이 오페라를 보러 오는게 아니냐?’ 고 반문한다. 그는 이어 오페라를 안 봤던 사람은요 표를 줘도 안 온다고 강조했다. 고 전 사장은 예를 들어 시골에 살던 사람이 오페라 영상을 보고 난 다음 서울에 사는 딸집에 갔을 때 예술의 전당 오페라를 봐야되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것이 오페라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오페라를 찾아간다고 역설한다. 이러면 연간 300만명이 오페라를 보게 된다면 400만명으로 늘어날 수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가곡이 없어진 유일한 대한민국

전 세계에 가곡이 없는 나라가 없는데 유일하게 우리나라가 없다는 고 전 사장은 학교에서 안 가르치고 방송국은 가곡프로가 다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고 전 사장은 동요 3회, 가곡 4회 총 7회를 무료공연 했는데 직접 사회를 봤다. 해마다 7편씩 6년의 세월동안 총 42편을 했다. 그리고 이에 성이 차지않았던 고 전 사장은 대한민국 지방에 있는 문예회관과 전 세계에 있는 대한민국 문화원에 보급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서 670만명이 지금 해외에 나가 살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그들을 위해 한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해외 문화원이 전 세계에 25개가 퍼져있는데 문화원에 보급을 한 후 교포들이 좋아했다고 밝혔다.

고 전 사장은 나이지리아 한국 문화원에서 상영했을때를 회고해 주었다.

그는 이 가곡영상을 현지인들도 알아들을 수 있게 번역을 해 상영했다. 우리의 가곡 고향생각을 본 나이지리아 국민들이 울먹였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이 가사가 옛날에 우리를 울렸다. 고 전 사장은 그러면서 “시골에서 돈 벌러 서울에 올라와 고향 생각나고 고향도 가고싶은데 경제적.업무적.시간적 문제때문에 못가는 그 세대들이 이 노래들 듣고 울었다. 그런데 지금 나이지리아에 사는 흑인들이 우리와 그 당시 삶과 똑 같은 것 이라면서 시골에 살다 도시에 돈 벌러와 1년에 한번 갈까 말까하는데 가사내용과 같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죠. 전부 고향 노래 아닙니까? 우리 가곡을 그래서 나이지리아 흑인들이 좋아 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영상사업에 대해서 저는 보람을 느끼며 자부하고 있다고 말한다

[고학찬 전 예술의전당 사장이 펴낸 미ㅏㄴ성 자서전 '구르는 돌'[출처=인터넷 갈무리]
[고학찬 전 예술의전당 사장이 펴낸 미완성
자서전 '구르는 돌'[출처=인터넷 갈무리]

- 잡초와 같았던 인생 격랑...‘구르는 돌’은 정체되지 않는 인생

이런 그는 인생행로의 편린을 모은 회고록 ‘구르는 돌’이라는 미완의 자서전도 펴냈다.

고 전 사장은 영어의 속담에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는 한곳에 정체된다면 이끼가 끼는데 이끼가 낀다는 것은 때가 묻는다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고학찬의 인생은 한 곳에 눌러 앉아 편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예술의전당 사장직을 마감하고도 정체되지 않은 인생을 살기위해 다시 구르기 시작했다. 이어 다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보는 것이라면서 자신의 본질은 rolling stone이다. 그래서 제책은 미완성 자서전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것이라면서 교향악도 미완성 교향악이 있듯이 자서전도 미완성 자서전이 있다고 말했다. 

고 전 사장만의 기이한 행보에 대해서는 “길을 가잖아요? 여러 사람들이 길을 가는데 늘 길이 나 있는 곳만 사람들이 갑니다. 길이 나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새로운 길을 가본다면서 그게 낭떠러지가 될 수 있고 가시덤불이 있을 수 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새로운 길을 뚫어야 날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귀가 길에도 매일 가는 길로 안갑니다. 오늘은 이길로 가보고 내일은 저 길로 가보고 또 돌아가 보기도한다고 말한다.

- 흙수저의 약점이 곧 장점이자 재산일 수가 있어

고 전 사장은 후배들을 향해 주옥같은 조언도 해 주었다.

고 전 사장은 “요즘 젊은이들 만나면은 흙수저다 뭐 그러잖아요. 내가 그래요 흙수저가 네 재산이다 흙수저가 돼서 흙수저라고 한탄하면 아무것도 안된다”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제주도에서 서울 대광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나니 다른 학생들이 제주도에서 온 나를 어떻게 생겼냐고 구경을 왔다고 말해주었다. 당시 학교 수업에 고문(古文) 시간이면 자신이 고문을 잘 했다면서 그것은 제주도 사투리가 다 고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 전 사장은 옛날 한양에서 유행하던 말이 제주도까지 갈려면 몇 백년이 걸리는데 이같이 제주도 까지 새로운 말이 들어가기 어렵다면서 제주도 아래아 발음이 남아있는 곳이  아직 제주도라며 유창한 발음의 '아래아'를 읊어나갔다.

고 전 사장의 팩트는 고문시간만 되면 고문 선생님이 자신을 데리고 가 고문 발음을 하게 한 것이라면서 유일한 아래아 발음을 태어나 배운 제주도에서 서울로 입학한 자신에게 약점이 장점이 된것이라면서 "흙수저의 약점이 곧 장점이자 재산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 언택트 시대 콘서트 문화의 ‘뉴 노멀’

지난 14일 그룹 방탄소년단이 ‘107개 지역, 75만6600명, 257억원’

그룹 방탄소년단이 온라인 실시간 라이브 공연 ‘방방콘 더 라이브’(방방콘 The Live)에서 257억원’의 공연 수입금을 이루었다. 이 공연은 집에서 TV를 통해서 또 SNS통해서 그것이 가장 보편적인 해결방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언택트 시대 콘서트 문화의 ‘뉴 노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공연은 이렇지만 클래식에서는 클래식을 하는 사람들은 공연장에서 사람들 앞에서 노래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마스크 쓰는것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상황속에 클래식하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지금 어디로 가 혼자 부른다고 먹고 살수가 없잖아요. 클래식 하는 사람들도 이제는 공연을 영상화해서 관람객과 만나는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는 무료로 진행됐지만 앞으로는 유료공연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면서 이번 BTS가 하듯이 유료공연에서의 유료관객을 열거해 준다. 

- 고학찬 미국 뉴욕서 한인방송한 것이 가장 큰 보람

고학찬 전 사장은 지난 유신시절 대한민국에서는 언론통폐합과 함께 계엄령 기간 중 원고를 가지고 검열을 받아야 했는데 저는 차라리 미국을 건너가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에 미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고 전 사장은 지금껏 지난 인생에서 가장 보람이 있었던 것은 뉴욕에서 한인 방송을 시작한 것이라고 전한다. 그가 한인방송을 시작한 것은 그 당시 교포 삶에 들어가다 보니 아버지 어머니 세대하고 자식 세대하고 완전히 소통이 두절된 것을 알 수가 있었는데 그것은 대부분의 엄마 아빠들은 이민 초기에 야채가게, 생선가게 등 그런곳에서 일을 해야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 가장 장사가 잘 된곳은 세븐일레븐인데 아침 7시 오픈해서 11시까지 영업을 한다고 해서 세븐일레븐이라는 점포명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우리 이민 세대들은 세븐일레븐의 영업시간이 아닌 24시간 영업을 하며 하루 종일 문을 열어놓다보니 뉴욕사람들은 잠도 안자며 일을 하는 정말 부지런한 사람들이 왔다고 말했다. 그 바람에 한국 사람들이 야채가게를 90% 휩쓸었고 이런 이유가 아버지 세대와 아이들 세대간 소통이 완전히 두절 되다보니 한국어를 다 잊어버렸다. 그 당시 저는 비록 단칸방에 사는 신세였지만 우리말 방송을 시작해야겠다. 방송이라는 것이 소통의 최고 무기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방송을 뉴욕에 가서 다시 시작 한 것이라고 한인방송 시작의 배경을 설명해 주었다. 

고 전 시장은 방송허가를 위해 애드워드 카치 뉴욕 시장실에 전화를 해 왜 중국인과 일본인들은 본인들 나랏말로 방송을 하는데 코리아한테는 기회를 안주냐고 따져물었고 이 후  시장과의 면담에서 “당신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세워도 미안하지만 우리 코리안 쪽은 1세대들이 영어를 잘못한다. 그러니 나로 하여금 한국어 방송을 하게 해 달라 그럼 내가 당신의 정책을 충분히 전달해주겠다”고 밝히자 뉴욕시 생활방송 WNYE가 매일 12시부터 2시까지 코리안 방송을 하게하라고 그 자리에서 허가 받았다고 말했다.

제가 교포방송을 할 때 교포들은 야채가게에서 야채를 다듬고 생선가게에서 생선을 다듬을 때 TV는 볼수가 없는 것이 자명한데 그동안 매일 미국방송만 나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뉴욕에서 방송되는 KBS한인 방송입니다. 여러분들 듣고 싶은 노래 있으면 신청 하시고 듣고 싶은사연이 있으면 제가 전달해드리겠습니다”라고 방송을 시작했더니 교포사회가 뒤집어 졌습니다. 아마도 그때가 내 인생에서 비록 제일 가난하게 살았지만 가장 보람이 있던 기간이라고 회고했다. 

​​​​​​​- 자동차 이용은 안 해 하루 15000보 걷기에 건강 증진

고학찬 전 사장은 예술의전당에서 임기를 마치고 자가용 이용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하루의 일과 속 건강을 지키기 위해 걷고, 또는 버스나 전철을 이용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스마트폰에 만보기 앱을 보여주며 하루  15000보 이상 걷고 있는 것이 건강 비결이라고 말했다. 또한 유튜브 방송 제작은 스튜디오가 아닌 야외에서 전체를 생음악 제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학찬 전 예술의전당 사장은 한라산을 바라보며 성장한 제주도 출신이며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거쳐 TBC동양방송 프로듀서로 이름을 날렸고 제일기획, 삼성영상사업단, 서울예대, 추계예다, 상명대 한세대, 제주국제대 등에서 겸임교수나 석좌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다.

그는 바텐더, 옷장사, 공장 용광로에서도 일을 하는 등 많고 다양한 직업전선에서 일한 경험을 오늘 이야기 해주었다.

드라마와 같은 그의 진솔된 인생 이야기와 생동감 넘치는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시간가는 줄 모르게 진행되었다.

실제로 분명한 것은 고학찬은 늘 ‘구르는 돌’이였다는 것. 그래서 지금도 정체를 싫어하며 그만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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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들언니 2021-06-16 16:05:47 (223.38.***.***)
고학찬 사장님의 참 맛나는 이야기들을 맘에 쏙쏙 새기게 해 주신 정성남기자님 감사드립니다~~^^
귀감이 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김동원 2020-06-23 18:48:32 (223.38.***.***)
새로운 길 새로운 도전 화이팅입니다
김하늘 2020-06-23 16:47:04 (223.38.***.***)
멋지십니다
고학찬사장님 응원 합니다
김영복 2020-06-23 16:43:03 (121.65.***.***)
진정한 크리에이티브로 인생 2막을 실천하시는 분이네요... 멋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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