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칼럼]조국을 세자 책봉한 '文 대통령 신년사'
[박한명 칼럼]조국을 세자 책봉한 '文 대통령 신년사'
  • 박한명
    박한명
  • 승인 2020.01.1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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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이 남긴 것

[글=박한명]극강의 내로남불과 궤변으로 점철된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지만 건질 게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문 대통령과 친문세력이 차기 구도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도록 힌트를 줬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겪었던 어떤 고초, 그것만으로도 저는 아주 크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생각합니다”며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애틋함을 표현했다.

또 “(조 전 장관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과 검찰 개혁에 기여가 컸다”며 “그분의 유무죄는 재판을 통해 밝혀질 일”이라고 했다.

조국 임명 이후 극심했던 정치·사회적 논란과 분열상에 대해선 “참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이제는 국민도 조 전 장관을 놓아주자”고 했다. 오랜 경험상 친문세력이 쓰는 용어를 맥락 없이 글자 그대로 해석할 경우 큰 낭패를 본다는 점을 의식한다면 문 대통령의 이 발언은 해석이 쉽다. 

‘조국은 정권의 성골세력인 친문 외에 모든 반대정파를 잡을 수 있는 공수처법을 통과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로 인해 우리끼리 태평성대를 누릴 차기 정권 재창출의 발판을 마련했으니 이 얼마나 경사인가. 조국의 유무죄는 공수처가 컨트롤 할 검찰과 김명수의 대법원이 알아서 공정하게 처리할 것이니 붕어 개구리 가재 국민과 검찰은 조국에 대한 관심을 끊어라.’ 문 대통령의 신년사가 있기 이틀 전 조국은 지인들과 함께 경기 남양주시 마석모란공원을 찾아 고 박종철 열사와 고 노회찬 의원의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12가지 범죄혐의로 기소되어 수사와 재판을 받는 처지에 놓여 국민의 지탄을 받는 초라한 전직 법무부 장관의 모습이 아닌 당당한 대권주자의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조국의 행보와 문 대통령의 신년사는 아무 관계가 없을까. 그렇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전후 맥락 상 양쪽의 공감대 없이 한껏 움츠려도 모자랄 판에 조국은 대권주자 행보를 시작하고 대통령은 신년사에 ‘조국 후계자 선포’나 다름없는 상징적 암시들을 집어넣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문 돌쇠형 정봉주 전 의원이 공수처법을 반대하고 최종 기권한 금태섭 의원의 지역구에 출마하겠다며 ‘내부의 적’을 제거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마찬가지다.

김어준 김민웅 전우용 등 친문 스피커들이 주도하는 ‘조국 백서추진위원회’의 ‘조국 백서’ 발간 성금 모금 소식도 이 즈음에 들려왔다.

이 모든 해프닝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벌어진 일들이다. 과연 우연일까. 문 대통령은 차기 대권주자 경쟁에서 압도적인 1위인 이낙연 총리가 아니라 왜 조국일까. 문 대통령은 호남에 대해 특별히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고 한다. 부산의 양말 공장에서 양말을 구입해 전남 지역 판매상들에 공급해주는 장사를 했던 선친이 사기를 당해 결국 부도를 맞았다는 것이다. 이 사연은 문 대통령이 자서전 <운명>에 직접 밝혔다. 

시대를 거슬러 왕조로 돌아가는 대한민국

세간에는 문 대통령이 이런 과거 경험 탓에 호남 출신보다 자기와 같은 지역 출신인 조국에 대한 선호가 높다는 얘기가 떠돈다. 그러나 그런 하나의 에피소드만으로 문 대통령의 조국 사랑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특별한 호남 사랑을 보아도 대통령이 그런 편견을 가졌다고 단정하긴 어려운 일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문 대통령과 조국은 과거부터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고 특히 조국은 민정수석 시절 대통령 일가에 관해 거의 전부를 파악하고 있으리라는 점이다.

언론이 대통령 부인과 아들, 딸에 대해 제기한 여러 의혹에 대해서도 조국 민정수석실은 여러모로 파악하고 대처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과 조국의 개인적인 특별한 인연이 아니라도 대통령은 그에게 마음의 빚을 크게 질 수밖에 없는 처지 아닌가. 악어와 악어새처럼 두 사람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절대적 공생관계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진중권 교수가 ‘조국 백서’를 쓰겠다는 ‘조국 백서추진위원회’에 “그렇다면 내가 조국 흑서를 쓰겠다”고 맞불을 놓은 것도 이런 맥락을 읽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과 친문세력이 조국을 명예회복 시킨 뒤 대권주자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골수 좌파인 진중권이 갑자기 애국심이 솟아 요즘 정교한 저격솜씨를 보여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본인도 관계가 있는 동양대 사건처럼 권력자와 홍위병 세력의 칼춤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생존본능일 뿐이다.

문 대통령과 집권세력은 상식적으로 안 되는 걸 계속 밀어붙여 성공시켜왔다.

주사파가 주류인 지금 친문세력은 평생 내부 암투와 권력다툼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권력에 취해 왕 놀이를 즐긴다”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사고방식이 전근대적이며 왕조시대에 가깝다. 그런 집단사고의 결론이 바로 조국의 후계자 선포, 세자 책봉과 다름 아닌 문 대통령의 신년사다. 시대가 정말 급진적으로 후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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