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열의 [단상] 인생의 맛
황상열의 [단상] 인생의 맛
  • 황상열 작가
    황상열 작가
  • 승인 2019.09.3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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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맛

어느 일요일 특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강남 교보문고를 들렀다. 서점에 가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무슨 책이 있는지 둘러보다가 우연히 서가에 꽃힌 책 하나를 보게 되었다. ‘한잔의 맛’이란 제목의 책이다. 책을 펼쳐보니 글과 만화가 어우러진 구성으로 되어있다.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서 자리를 잡고 읽기 시작했다.

예전 <생활의 참견>이란 일상웹툰의 만화가 김양수 작가가 쓴 책이다. <생활의 참견>을 재미있게 본 터라 이 책도 더 궁금했다. 저자가 본격적으로 표방한 음주만화라고 한다.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일부 챕터를 골라 읽는데, 술맛과 인생을 비교하는 부분에서 공감되었다.

근무하던 잡지사가 망해서 주인공은 프리랜서 기자로 생계를 이어간다. 우연히 한 술집의 바텐더를 인터뷰 의뢰를 받게 된다. 찾아간 술집주인 바텐더는 그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고, 대신 위스키 한 잔을 먹어보라고 한다. 주인공은 위스키를 들이키지만, 역시 그 첫 맛은 아주 쓰다. 인상을 찡그리는 그에게 바텐더는 10분뒤에 마셔보라고 이야기한다.

10분이 지나 다시 마신 위스키는 달고 카라멜 향이 났다. 이를 의아하게 생긴 주인공은 바텐더에게 맛이 다른 이유를 물어본다. 시간의 맛이라고 귀띔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바텐더는 위스키, 칵테일, 보드카등 각 술에 얽힌 사연을 들려준다. 특히 40대 부장에게 아주 쓴맛이 담긴 올드 패션드를 타서 건넨다고 하는 내용에 조금 서글펐다. 힘든 인생에 쓴 술 한잔으로 그 순간만큼은 잊으라는 의미란다.

‘위스키가 10분 전에 쓰고, 시간이 지나 달게 느껴지는 것처럼 지금 씁쓸한 순간을 맞더라도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그것마저 달콤한 추억이 될 때가 있다’ 라는 바텐더의 말에 공감이 되었다. 학창시절에 성적이 떨어져 가고 싶은 대학을 못가게 되어 죽을만큼 힘들었던 시절, 남들은 다들 괜찮은 기업에 취직하는데 나만 취업이 되지 않아 작은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마음고생이 심했던 시절,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여 밤새 술마시며 괴로워하던 시절...

한잔의 맛이 쓰고 달고. 그에 따라 인생도 울고 웃고.

그때 그 시간만큼은 정말 씁쓸하고 힘들었지만, 인생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마저도 달콤한 추억이 된다는 사실이 위스키 한 잔의 맛과 참 닮아있다.

▶황상열 작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서툰 아재이자 직장인이다. 저서로 <모멘텀(MOME독서와 MTUM)>, <미친 실패력>, <나를 채워가는 시간들>, <독한 소감>, <나는 아직도 서툰 아재다>, <땅 묵히지 마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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