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 칼럼]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전정희 칼럼]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 신성대 기자
    신성대 기자
  • 승인 2019.09.2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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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얼마 전 승용차에 깔린 초등학생이 한마음으로 구조에 나선 시민 영웅들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된 아름다운 미담이 방송되었다.

부산진구 범일로에서 A씨가 운전하던 승용차가 횡단보도 위에서 벗겨진 신발을 줍던 초등학생 B양을 미처 발견하지 못해 들이받은 뒤 3∼4m를 더 주행한 뒤에야 멈춰 섰고 B양은 차 밑에 깔려있었다. 놀란 운전기사가 차에서 다급히 내리고 이 광경을 목격한 근처에 있던 시민 10명이 더 모여들어 맨손으로 차량을 들어 올려 아이를 무사히 구조했다. 다행히 B양은 다리 등에 찰과상을 입었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은 상태였다.

또 승합차에 깔린 50대 남성을 여고생들이 구해내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되어 방송을 타기도 했다.

승합차 주인 A씨가 뒷바퀴에 받쳐놓은 돌을 옆으로 치우고 운전석으로 가는 사이 승합차가 조금씩 뒤쪽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A씨는 뒤늦게 차를 멈춰보려고 했지만,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차 아래쪽에 깔리고 말았다. 승합차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크게 다칠 수 있는 위급한 상황에 구조의 손길을 내민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 근처를 지나는 마을버스에 타고 있던 여고생들은 꼼짝할 수 없는 A씨를 발견하자마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학생들과 주민들이 힘을 모은 덕분에 A씨는 6분여 만에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다.

승객 2명을 태운 택시기사가 운전 중에 갑자기 심장마비 증세가 와서 쓰러졌다. 그러나 뒷좌석에 타고 있던 50대 남녀 승객 두 명은 곧바로 내리더니 트렁크를 열고 자신들의 골프채를 꺼낸 후 다른 택시를 타고 현장을 바로 떠나버렸다. 이후 다른 사람의 신고로 택시 운전사는 급히 119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사망하고 만 뒤였다.

당시 이 사건이 뉴스로 중계되자 어떻게 사람의 목숨이 달렸는데 골프를 치러 가는 일이 더 소중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장을 떠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이어졌다. 이어 이런 사람을 법적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적용되고 있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 우리나라에도 빨리 도입되어야 한다는 갑론을박이 계속되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의 유래는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옛날에 어떤 유대인(이스라엘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향하는 길을 가다가 그만 강도를 만났는데 강도들이 가진 물건과 옷가지를 빼앗고 때려서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다. 마침 당시 사회의 상류층이자 종교지도자였던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다친 유대인을 보고도 그냥 피해서 지나갔고, 또 다른 한 레위인(성전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도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그런데 유대인과 적대관계이고 유대인들이 멸시하는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던 중 마침 그곳을 지나다가 그를 발견하고는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떠나면서 주막 주인에게 돈을 주며 이 사람을 돌보아 주고 혹시 비용이 더 들면 자신이 돌아올 때 갚겠다고 부탁한 뒤 비로소 갈 길을 떠났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도덕적인 의무를 법으로 규정하여 강제하는 것을 말한다. 이 법은 이미 프랑스와 폴란드, 독일, 포르투갈, 스위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러시아, 루마니아, 헝가리 등 유럽의 14개 국과 미국의 30여 개의 주, 중국 등도 이 법을 적용해 처벌을 가하고 있다. 프랑스는 이 법을 지키지 않은 자에 대하여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구금 및 한화로 약 9,300만 원의 벌금에 처하고 있으며 폴란드는 3년 이하의 금고나 징역에 처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1년 이하의 징역형, 러시아는 6개월 이하의 징계 노동, 심지어는 북한에서도 2년 이하의 노동 교화형이 있는 상황이다. 영국의 황태자 다이애나 비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도와주지 않고 사진만 찍은 파파라치도 이 법에 의해 징역 5년의 처벌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 법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시행되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쟁점이 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타인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키는 것이 옳은가라는 부분에서 의견이 대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강제하더라도 타인의 중대한 이익(생명 등)이 걸려 있는 경우에는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것에 대해 긍정하는 견해와 어떤 경우에도 아무런 잘못 없이 무조건 타인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견해로 나뉘기 때문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치닫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일에 잘 참견하지 않고 또 어지간한 일에는 나서지 않는다. 하긴 중국에서는 난징(南京)에서 발생한 이른바 '펑위(彭宇) 사건'도 있었다. 당시 일용직 노동자인 그는 버스 정류장에서 사람들에 밀려 넘어진 한 할머니를 목격하고 부축해 병원까지 모셔다 드렸지만 오히려 가해자로 몰려 법정에 섰고, 할머니 치료비의 40%인 4만여 위안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선의로 도움의 손길을 뻗쳤다가 봉변을 당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중국은 '남의 일에 괜히 나서지 말라'는 관념이 팽배하여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못 본 척 지나치는 일이 자주 발생해 사회문제가 됐다. 이후 광둥에서는 두 살배기 여아가 교통사고를 당해 피를 흘리며 숨져가는 데도 행인 18명이 끝내 외면한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중국 사회는 도덕성 상실에 대한 우려와 자성론이 연이어 나오면서 이 법안을 확정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이 같은 법이 있을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혹자는 하필 사건이 일어난 그 주변을 지나게 된 것을 재수 없는 일로 치부할지도 모른다. 돕자니 귀찮고 그냥 가자니 인간으로서의 양심에 찔리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도 착한 사마리아인 법 추진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제한적으로 형법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를 보호할 법률상 혹은 계약상 의무가 있는 자에 대한 책임, 경범죄처벌법에서 자기가 관리하는 곳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한 관리상의 책임 등을 규정하고 있어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만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이 법이 통과되었으면 좋겠다.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을 구해주는 것은 개개인의 양심에 맡겨진 문제가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언제 나에게 이런 위급한 상황이 닥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비록 생면부지의 타인이지만 나의 작은 관심과 도움으로 작게는 위기에서 벗어나고 크게는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면 그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윤리적인 문제를 법적인 영역으로 해결한다는 점에서, 법과 도덕의 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전정희 소설가  저서 '하얀민들레' '묵호댁'
전정희 소설가 저서 '하얀민들레' '묵호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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