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리지 않는 마음
헷갈리지 않는 마음
  • 박다빈
    박다빈
  • 승인 2019.09.19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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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울산과 대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2박 3일 간의 여름휴가를 보냈다. 여행 둘째 날, 감사하게도 나는 이모 댁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대구 여행하기 전 날인 울산 여행 도중에 나는 이모와 통화를 했다. 이모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름휴가 기간이었던 그 주간에 내가 이모 댁에 한 번 들르겠다고 약속했었기 때문이다. 이모는 내 시간이 언제 괜찮은지 묻기 위해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다음 날 대구 여행하고 나서 이모 댁에 가겠다고 말했다. 이모가 대구에 사니까. 그러려고 여행 계획을 그렇게 짰다고.

그런데 내가 들르기로 한 대구의 명소들을 이모도 가 본 적 없단다. 해서, 이모와 나는 다음 날 정오쯤 이모 댁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후나절 동안 같이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대구 근대 골목 투어를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대구에서 나는 온종일 길을 잃었다. 이모를 만날 때까지 내내 길을 잃었다. 여행 계획을 헐겁게 짰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이모가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나를 기다리게 되었다. 나는 이모가 도착했단 소리를 듣고부터 지도 어플을 켜서 길을 제대로 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 뛰어 다녔다.

지도를 보자마자 알았다. 내가 대구 여행 계획을 얼마나 건성으로 짰는지. 나는 버스 정류장과 버스 노선을 정확히 확인해 두지 않았고, 목적지 주변 지리도 분명히 기억해 두지 않았다. 대구는 많이 가 봤으니까 어디든 적당히 잘 찾아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단단한 오산이었다. 만만하지 않은 것이 만만해지는 순간부터 사람은 올가미에 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여행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길을 잃어도 괜찮다. 그런데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상태에서 내가 길을 잃어버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나는 온몸으로 진땀을 줄줄 흘리며 이모를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모를 만났다.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나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는 이모를 보자마자, 미안한 마음이 너무 크게 들었다. 나는 이모에게 다가가고부터 계속 미안하다는 얘기만 했다. 진짜 너무 미안했으니까. 이모는 깔깔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다행히 내가 길을 잃은 건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리저리 헤매는 동안 그 근처 지리를 빠삭하게 익혔기 때문이다.

평소 가 보고 싶었던 곳들을 이모와 함께 들르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충만하였다. 우리는 온갖 주제를 가지고 대화하며 과거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대구 근대 골목을 걸었다. 뱃속에 집어넣을 기념품들을 가득 산 뒤에야 우리는 이모 댁으로 향했다. 마지막 행선지에서 차를 타고 30분만 가면 되었다.

다음 날, 우리는 즉흥적으로 등산을 했다. 전 날 이미 지쳐 버린 나 때문에, 우리는 정상까지 오르지 못하고 하산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에는 아무런 결핍도, 결함도 없었다. 시간을 채우는 것은 전부 마음인가 보았다.

그냥 같이 있기만 해도 좋은 사람. 바라보고 있으면 뭐라도 챙겨 주고 싶어지는 사람. 그 마음 안에 쌓여 있는 이야기를 언제나 듣고 싶게 만드는 사람. 늘 내 살갗처럼 편안하지만, 영원한 타인처럼 항상 조심하게도 되는 사람. 이모는 나에게 그런 사람이다.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친구이자 그 넓이를 알 수 없는 품이다. 이모는 내 정신적인 보호자 역할을 평생 해 주었다. 언제나 흔쾌하게. 심지어 감사를 느끼면서.

살다가 꼭 한 번은 수호신(守護神)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를 간혹 듣는다. 내 삶을 힘껏 일으켜 세워 준 수많은 수호신들 가운데 가장 큰 날개를 가진 수호신이 이모 아닐까 싶다.

오후 무렵,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배웅 안 해도 된다고 하는데도 이모는 아파트 입구까지 나와 동행하였다. 그리고는 거기에서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이처럼 양손을 하늘로 쭉 펼치고는 온몸을 귀엽게 흔들었다. 나는 그런 이모를 계속 되돌아보았다. 이모는 나와 다시 눈이 마주칠 때마다 활짝 웃으며 나에게 새로운 인사를 건넸다. 애틋한 이별이었다. 사실 안 본 지 열흘도 채 안 된 사람들인데.

마침내 골목 모퉁이를 돌았다. 뒤를 돌아봐도 이모를 볼 수 없는 길로 접어든 것이다. 하도 많이 가서 내 동네처럼 친숙한 그 동네를 느리게 빠져 나가며, 나는 이모에 대한 내 마음을 생각했다.

그 마음에는 흐트러진 부분이 없다. 모든 면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하여 나는 그 마음을 두고 아리송해하지 않는다. 나는 이모를 사랑한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나는 그 점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나는 이모를 사랑한다.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과 가장 닮아 있는 마음이 이모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 두 마음은 정말이지 너무 밝고 선명하게 존재해서 그 어떤 의문도 끼어들 자리가 없다. 내 모든 진심과 내 모든 아픔을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두 마음. 나는 그 두 마음을 두고 헷갈린다는 기분을 느껴 본 적이 없다. 진짜는 그런 것이다.

'진짜'라는 것은 나를 단 한 순간도 혼돈에 빠뜨리지 않는다. 진짜라는 것은 애매하지 않다. 불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그런 진짜 마음을 만든 건 나 자신이다. 무엇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내가 사랑해서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고 싶으니까. 어떤 관념이 생기기 이전부터 이미 사랑하고 있으니까.

헷갈리는 마음을 만든 것도 나 자신이다. 무엇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내가 헷갈려서 헷갈려하는 것이다. 누가 내 마음을 흔들거나 가려서 그런 게 아니다. 내가 제풀에 휘청휘청 흔들리는 것이다. 내가 뭘 제대로 못 볼 뿐이다. 상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하여도, 내가 그걸 받지 않으면 그만이다. 상대가 아무리 미덥게 굴어도, 내가 그걸 믿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모가 나를 사랑해 달라고 해서 내가 이모를 사랑하는 게 아니다. 이모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이모를 사랑하는 게 아니다. 내가 이모를 사랑하니까 이모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언제나 이토록 간단한 것이었다. 내 마음 문제의 원인이 내 마음 밖으로 나간 적은 없었다. 1초도.

핑계와 진실 사이의 거리가 이렇게 멀게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정교하게 꾸며대도 핑계는 핑계다.

스스로 사랑하는 일과 스스로 사랑하지 않는 일. 이 두 가지 사실만이 존재했다. 내가 사랑하는 일에는. 나머지는 전부 핑계였다. 사랑하니까 만나고 사랑하지 않으니까 만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언제나 이토록 간단한 것이었다.

중요해 보이는 사건보다 더 중요한 건, 당사자들의 마음이었다. 마음이 식으니 평소 때는 용납되던 것도 더는 용납되지 않는 것. 마음이 생기니 평소 때는 이해되지 않던 것도 문득 이해되는 것. 결정적인 사건보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언제나 마음이었다. 결정적인 사건은 마음의 생성과 소멸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

- 이야기집 『당신은 어디에서 춤을 추고 있는가』
http://www.bookk.co.kr/book/view/65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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