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적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나의 정적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 박다빈
    박다빈
  • 승인 2019.09.1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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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적(2019)』 리뷰

나는 간혹 명상록을 작성한다. 명상 중에 떠오른 것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지면에 기록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내가 내 안의 심연에서 건져 올린 내면의 메시지들이다. 혹은 내 안의 심연이 나에게 선보여 준 내면의 안내장이거나 경고장이다. 때로 나의 명상록은 참회록의 형태를 이룬다. 명상 중에 떠오르는 잡다한 생각들 대부분이 반성의 절차를 거치기 때문이겠다.

내가 적은 참회록은 내 일상에서 나의 수련을 돕는다. 과거에 저지른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는 인간이 되기 위해 개인적으로 작성한 지침서가 나의 참회록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비난만 하는 것은 참회록에 속하기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참회는 뉘우치는 일이지 냅다 꾸짖기만 하는 일이 아니라고 여기는 까닭이다.

이 책의 저자 배철현님의 전작 '심연'과 '수련'이라는 제목을 읽으니 신작 '정적'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차기작의 제목은 '승화'다. 이 시리즈 이름은 위대한 개인이다. 위대한 개인이 되기 위한 단계들, 심연, 수련, 정적 그리고 승화.

자신의 심연에 다다른 사람만이 진짜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다. 일상의 소란으로부터 벗어나 진정으로 자기 자신과 독대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무언가를 발견해 낼 수 있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살기를 그만두고 자신만의 길을 닦기 시작할 수 있다.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고여 있는 고요를 거닐며 개인이 이루어 낸 거룩한 발견 속에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희망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이 길이 내 길이다.'라는 뜨거운 인정은 많은 순간의 연료가 되어 줄 것이다.

이 책은 28개의 꼭지로 이루어져 있다. 28개의 꼭지 안에서 저자는 스스로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스스로가 현재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명철하게 파악하기 위한 노력에 힘을 싣는다. 자기 자신의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모든 변화의 첫걸음인 까닭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 줄 모르는 상태에서는 행선지를 계획하기 어렵다. 하여 묵상(黙想. 눈을 감은 채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행위)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적인 행위인 동시에, 동적인 행위를 위한 적극적인 준비다.

오늘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길이 정녕 내 길인가.

나는 이 길 위에서 참된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가.

나는 타인에게 진심으로 친절한가.

나는 불완전함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나는 나의 개성을 사랑하는가.

나는 경쟁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등등.

저자는 이 책이 '독자 스스로 자신의 개성을 응시하고 발현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저자는 자신의 마음 밑바닥으로 들어간 뒤 거기서 본 것들을 우리에게 두런두런 이야기해 준다. 아무런 강요 없이 묵상의 세계에 초대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이루는 28개의 꼭지는 저마다 그리 길지 않아서, 짬나는 시간에 틈틈이 읽기 좋다. 나는 이 책을 주로 아침나절과 저녁나절에 읽었다.

이 책에 양념처럼 뿌려져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저자는 하나의 화두를 이야기하기 위해 수많은 참조 자료를 제공한다. 저자는 수많은 단어의 언어적인 의미를 깊이 있게 해설해 주곤 하였는데, 그 부분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다(저자는 인류 최초 문자들의 언어인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하였다). 언어의 심층적인 의미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그 언어가 묘사하고자 하는 것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아서였다. 그것이 나에게 친숙한 단어여도, 어떤 단어의 역사를 소상히 알고 나면, 그 단어와 관련된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것이 낯설거나 어렵게 느껴져 명상을 시작하기 망설여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명상 입문서로 읽기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저절로 내 마음을 되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명상은 그런 바라봄의 총체이기에,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수준의 명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음은 내 마음에 의미 있는 자국을 남긴 문장들이다.

p.32 : 나와 너 사이를 맺어 주는 위대한 감정인 사랑에는 간격이 필요하다. 이 절제된 간격이야말로 내가 너를 존엄한 존재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표현이다. 간격은 사랑의 완성이다.

p.38 : 기억으로 존재하는 지식은 내 말과 행동을 통해 배려와 친절로 드러나야 한다. 만일 지식으로만 정체된다면, 그것은 이념이 되어 나를 옥죄는 올무가 되고 타인을 배척하는 무기가 될 것이다. (중략) 배움이 실질적인 행위로 보강되지 않는다면, 그런 배움은 거짓이다.

p.49 :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알고 있다. 매일 그곳에 가기 위한 최적의 길을 발굴해 묵묵히 걸어간다. 그는 자신이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모여 목적지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자신이 올바른 길 위에 있다고 확신한다. (중략) 그는 그 길로부터 이탈시키려는 그 어떤 달콤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가야 할 이정표가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음의 지도가 '의도(意圖)'다. 의도는 목적지를 향해 걷는 수행자의 내공이다. 평온한 사람은 마음속 깊이 은밀하게 의도한 것들을 말과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p.85 :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내 삶을 지배하는 환경은 원인과 결과의 끊임없는 작용이다. 이 세상에서 원인과 결과라는 우주의 원칙을 벗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중략) 인과의 또 다른 표현은 공평이다. 공평은 인과의 자연스러운 적용이다.

p.118 : 당시 유럽 지식인들은 '이성'을 인생의 등불로 여겼다. 그들은 이성만이 인간의 불행을 풀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테는 이성이 아니라 자신의 심연 속에서 발견되는 사사로운 감정인 '사랑'과 그것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인류의 희망이라고 여겼다. (중략) 사랑은 인류 혁신의 모체다.

p.129 : 자신에게 감동적인 삶, 행복한 삶, 영원한 평온은 인간의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신성한 중심(divine center)에만 존재한다. 믿음이란 이 중심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에 의존하는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가 모두 다른 이유는, 각자에게 어울리는 '나다움'이라는 '다름'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p.131 : 자기중심을 신뢰하는 자는 욕망이라는 파도나 소문이나 남들의 의견이라는 폭풍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는 흔들리지 않는 자기중심에 굳건히 안주하기 때문이다.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중심 안에서 사는 자는 주변의 환경이나 소란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는 사람들의 환호, 질시, 열망, 주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p.183 : 인간이 호모 디비나(Homo Divina), 즉 '신적인 인간'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인간만이 자비를 자발적으로 발휘한다. 교육은 체계적인 공부를 통해 자비를 발견하고 발휘하려는 수고다. 현대 과학은 '길가메시 프로젝트'로 불멸을 추구한다. 영생이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영원으로 살 수 있는 기술이다. 몇 년 전에 저술한 『인간의 위대한 여정』에서 나는, 빅뱅에서부터 농업혁명 전까지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을 '이타심'이라고 기술했다. 이타심은 동물적인 인간을 신적인 인간으로 개조할 것이다.

p.247 : 우리는 종종 삶의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그 원인을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찾는다. 우리의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그리고 심리적인 불안과 불만을 타인 혹은 공동체에서 찾으려 한다. 우리가 경험한 전쟁, 유신 그리고 독재가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심화시켰다. 그러나 환경이 나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 결정적인 요소일 리 없다.

p.301 : 사마천의 『사기』에 “재소자처(在所自處)”라는 말이 있다.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 처한 장소나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을 대하는 태도, 즉 처세다. 매일 우리 앞에 펼쳐지는 크고 작은 일들은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당연한 자연의 이치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은 나만의 개성을 만들도록 부추기는 훈련사다.

본 리뷰를 작성할 때, 리뷰의 저작자는 출판사로부터 본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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