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예가체프 핸드드립 커피를 처음 마셨을 때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핸드드립 커피를 처음 마셨을 때
  • 박다빈
    박다빈
  • 승인 2019.09.1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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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기껏 진학한 대학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저는 대학을 그만두었습니다. 기합과 얼차려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학대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사를 양성하는 사범대에서 그런 관행이 계속 묵인된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후계 양성을 원하셨던 지도교수님은 저에게 견디라고 하셨지만 저는 아무것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스트레스로 나빠진 건강 상태를 명목 삼아 저는 그 대학과의 연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렇게 다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나오자마자 커피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가족들의 반발이 없지는 않았지만, 아무도 저를 말리지 않았습니다. 그거라도 하는 게 어디냐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저의 대학 생활 실패로 제 가족들은 좌절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좌절이 제 좌절만 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웬만한 건 훌훌 털어 버리자고 생각하는 편이라, 새로운 길로 얼른 접어들었습니다.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선생님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내 인생이 무가치해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되뇌면서요. 사실 그 생각을 붙들고 연명하였습니다. 그 생각을 붙들지 않으면 거대한 절망이 저를 집어삼킬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우울해 죽는 것보다는 뻔뻔해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저의 최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커피 학원에 들어간 첫 날, 저는 원장님께서 내려 주신 핸드드립 커피를 처음 맛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맛인가 싶었습니다. 그때 저는 생크림이 올라가 있는 에스프레소 베리에이션 메뉴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달콤하지도 않고 우유 맛도 나지 않는 커피가 생소했습니다. 그런데 싫지가 않았습니다. 커피에서 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맛과 향이 그 잔 안에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콩으로 내린 커피였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취향이 얼마나 빠르게 바뀌는지. 저는 핸드드립 커피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원두 고유의 맛이 이토록 다양하다니! 새로운 세계에서의 새로운 즐거움은 어린 날의 시름을 문득문득 달래 주었습니다. 저는 하루에 두어 잔씩 커피를 마셨습니다. 많으면 서너 잔도 마셨습니다. 그때는 커피를 꽤 많이 마셔도 잠을 자는 데에 아무런 불편이 없었습니다. 바리스타 자격증 준비하며 실습할 때는 하루에 커피를 거의 열 잔씩 마셨는데, 그때만 잠자기가 조금 어려웠지, 다른 때는 숙면을 취했습니다.

그때부터 최근까지 약 10년 간, 저는 매일 핸드드립 커피를 마셨습니다. 학원을 총 두 번 다녔는데, 두 번째 수료 이후로는 로스팅도 제가 직접 했습니다. 타지에서 카페에서 일을 할 때는 오히려 커피를 잘 못 마셨는데, 카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쉬면서는 커피를 다시 많이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콩의 가장 큰 강점은 군고구마 향과 과일 향이 난다는 것입니다. 잘 볶은 콩에서는 정말 군고구마 향이 납니다. 구수하고 달큰한 향이 새콤한 향과 공존하는 마성 같은 매력이 그 콩에 있습니다.

물론 원두에 대한 취향도 살다 보니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아프리카에서 재배되는 콩들을 가장 좋아했는데, 몇 년 전부터는 남미에서 재배되는 콩들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온두라스에서 재배된 콩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생두를 주문할 때는 다양한 대륙에서 나는 콩을 다양하게 구입하는 편이었습니다. 골라 먹는 재미를 위해서였습니다.

기후 변화 때문에 커피 생산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바 있습니다. 커피는 인류에게 각성과 취미를 준 새까만 신의 물방울. 저는 커피로 인해 수많은 날 수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받은 위로를 글에 꼭꼭 눌러 담아 세상에 환원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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