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수명과 긴 수명의 차이
적은 수명과 긴 수명의 차이
  • 박다빈
    박다빈
  • 승인 2019.09.1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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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내편] 소요유편(逍遙遊篇) 1-3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한다. 적은 연령은 큰 연령에 미치지 못한다. 어찌 그것이 그러함을 알 수 있는가. 아침에 피어 해 뜰 때 말라죽는 조균이라는 버섯은 그믐과 초하루를 알지 못한다.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 이것을 보고 짧은 연령이라 한다.

초나라 남쪽에 명령이라는 나무가 있다. 명령에게는 오백 년이 봄이고 오백 년이 가을이다. 오랜 옛날에 대춘이라는 나무가 있었다. 대춘에게는 팔천 년이 봄이고 팔천 년이 가을이다. 이것을 보고 긴 연령이라 한다.

요즘 팽조라는 사람이 특별히 오래 살았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되기를 바란다(팽조는 약 800년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

은나라 탕(湯)왕이 극(棘)이라는 현명한 재상에게 들은 것도 이에 관함이다.

“풀도 나무도 나지 않는 황량한 불모지 북쪽에 어두운 바다가 있습니다. 그것을 하늘의 못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물고기가 있습니다. 그 물고기의 넓이는 수천 리에 달하는데, 그 길이를 정확히 아는 자가 없습니다. 그 물고기의 이름은 곤입니다. 거기에는 새도 있습니다. 새의 이름은 붕입니다. 붕의 등은 태산과도 같습니다. 붕의 날개는 하늘을 드리운 구름 같습니다. 붕은 회오리바람을 타고 양의 뿔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구만 리 위로 날아오릅니다. 이는 구름을 찢고 푸른 하늘을 짊어진 연후에 남쪽으로 가기를 도모합니다. 장차 남쪽의 어둠을 향해 가려는 것입니다. 메추라기가 나타나 이를 비웃으며 말합니다. 저것이 장차 어디로 가려 한단 말인가. 나는 위로 뛰어올라도 몇 길 오르다 말고 떨어져, 쑥대밭 사이를 빙빙 놀며 날아다닐 뿐이다. 이것은 내가 날아서 이를 수 있는 전부이다. 그런데 저것은 장차 어디로 가려 한단 말인가.”

이것이 작은 것과 큰 것의 차이이다.

자신의 앎을 하나의 벼슬에 바칠 만하고, 자신의 행동거지를 하나의 마을 사정에 견줄 만하고, 하나의 임금을 위해 덕을 합쳐 하나의 국가를 거둘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일 또한 이(메추라기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일)와 같을 것이다.

송영자(宋榮子)라는 사람은 그러한 사람을 비웃는다. 송영자는 세상이 그를 칭찬한다 해도, 좋아하거나 무언가를 더욱 행하지 않는다. 세상이 그를 배반한다 해도, 무언가를 그만두지 않는다. 그는 안과 밖을 반드시 구분한다. 영화와 수치의 자리를 분별한다. 그런데 그는 이러할 뿐이다. 그가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급급해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의 심지는 나무 한 그루처럼 올곧게 박혀 있지 않다.

열자(列子)는 바람을 타고 가볍게 날아다니다가 보름 후에야 되돌아온다. 그는 복을 구하는 일에 급급해 하지 않는다. 그는 걸어 다니는 일로부터 벗어났으나, 여전히 의지하는 바가 있다.

만약 천지의 올바른 기운을 타고 육기(六氣.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여섯 가지 기운)를 다스리며 무궁한 경지에서 놀 줄 아는 사람이라면, 무엇에 의지하겠는가? 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지인(至人)에게는 자기 자신이 없고, 신인(神人)에게는 공로 및 공치사가 없고, 성인(聖人)에게는 이름이 없노라.

* 해설 :

이번 장에서 장자는 장단(長短)과 대소(大小)에 대해 말한다. 길고 짧음, 크고 작음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장자는 조균이라는 버섯과 쓰르라미를 언급한다.

조균이라는 버섯은 아침나절에 피었다가 해 뜰 때 말라죽는 버섯이다. 찰나적인 생만을 살고 죽는 조균 버섯에게 그믐과 초하루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다. 쓰르라미는 매밋과의 곤충인데, 매미는 여름에 살다가 죽는 생물이다. 하여 쓰르라미에게 봄과 가을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다.

그런 반면, 명령이라는 나무의 한 계절은 오백 년이다. 조균과 쓰르라미는 명령의 생을 헤아릴 수 없다.

장자가 살았던 당대에 팽조라는 인물이 약 800년을 살아서 많은 이들이 그처럼 되고 싶다 하였다. 그런데 팽조의 수명을 명령의 수명에 비할까. 긴 수명에 대자면 짧은 수명은 참으로 덧없다. 이 우주의 수명에 비하자면 인간의 수명은 얼마나 덧없는가.

하지만 모든 생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고 사명(使命)이 있다. 그저 긴 수명을 갈구하며 보내는 세월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수명을 값지게 사용하며 보내는 세월이 더 건설적인 세월 아니겠는가.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1000년보다는 의미 있게 살아가는 100년이 훨씬 알차지 않겠는가.

나는 이렇다 할 목적 없이 단순한 장수를 바라는 사람인가. 아니면 내 생의 고유한 목적을 따르며 순간순간을 귀하게 활용하는 사람인가.

그 다음으로 장자는 송영자와 열자라는 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송영자는 바깥 사정에 초연한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이 그에게 찬사를 보내든 야유를 부내든, 송영자는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장자는 그 이상을 말한다. 송영자의 수준 너머에 있는 수준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송영자는 세상사의 덧없음에 무심해질 수는 있었지만, 그의 심지는 아직 올곧지 못하다고. 세상에 관심을 끈 사람들 모두가 자기 중심을 확고하게 다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열자는 바람을 타고 어디든 가볍게 날아다닐 수 있는 사람이다. 그 또한 송영자처럼 세상의 희비에 초연하다. 그는 행복을 구하는 일에 목마름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뭔가에 의지하고 있다.

장자는 말한다. 본인이 천지 기운을 자유자재로 다스리며 무궁한 경지에 도달했다면, 어찌 무언가에 의지하겠느냐고. 장자는 다시 열자의 수준 너머에 있는 수준을 보여준다.

지인(至人)은 아집을 버린 사람이고, 신인(神人)은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는 사람이고, 성인(聖人)은 명예에 매달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장자는 말한다. 이번 장에서 장자는 끝이 없는 배움의 세계를 보여준다.

조균 버섯과 쓰르라미는 자신의 세계 안에 있는 것들만을 보고 그 너머의 세계에 호기심을 가지지 않는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내가 머물고 있는 세상이 전부인 줄로만 알고, 그 너머의 세상을 비웃은 적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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