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차와 막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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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억수로빠른 거북이
    억수로빠른 거북이
  • 승인 2019.09.1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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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이야기 2

첫차와 막차

내가 살았던 시골 동네에는 예전에 하루에 버스가 두(?)번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저녁 일곱 시쯤 해서 동네 앞을 지나간 버스는 우리 동네보다 더 안쪽에 있는 종점 마을에서 하루 밤을 자고 다음 날 아침 여섯 시 사십분에서 오십분 사이에 동네 앞을 지나 도시로 나가는 버스였다.

군 내에서는 제대로 된 고등학교가 없었던 관계로 중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이 고등학교가 있는 도시로 진학을 하던 시기 토요일 저녁이 되면 객지에 나가서 공부를 하거나 직장에 다니는 아들딸들이 또는 손주들이 타고 올 버스를 기다리는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동네 앞을 서성거리며 기다리는 것이 주말 저녁 행사였다.

여름이면 해라도 길어서 어둡기 전 이었지만 겨울이면 이미 해가 져서 캄캄한 길에 저 멀리서 버스 불빛이 보이다가 어느덧 동네 앞에 서서 버스에 타고 있던 아들딸들이 내리면 반가움을 표현하느라 제법 소란스러워지다가 그것도 잠시 서로의 손을 잡고 그렇게 집으로들 가고 나면 가로등도 없던 동네 앞은 간간히 개 짖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해진다.

주말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모두가 같은 초등학교, 같은 중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다 보니 친구와 선후배를 보는 시간이 되고, 버스 안에서 조촐(?)한 동문회, 동창회가 열리기도 한다.

주말이면 그래도 격주로 내려오거나 한 달에 한 번 정도 집에 다녀가는 경우들이 있다 보니 좀 덜 복잡하지만 명절 전날이면 객지로 도시로 나갔던 사람들과 친척집에 다니러 오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그야말로 콩나물시루가 되고, 솜씨 좋은 버스 안내양은 버스 안쪽에서부터 승객들을 무슨 짐을 쟁이듯이 그렇게 차곡차곡 정리하여 승객들을 싣고 정 급하게 되면 창문으로 타고 내리기도 했다.

이쯤 되면 반가운 얼굴을 봐도 인사도 쉽지가 않고 대게가 종점 인근 까지 가는 승객들이다 보니 자리가 비는 경우도 거의 없이 한 시간여를 넘게 버텨야 한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오다 저 멀리 불빛들이 보이고 동네의 모습이 보이고 반가운 얼굴들이 보이면 그 마음들은 어떠했을까?

그렇게 도착한 집에서 주말을 보내고 명절을 지내고 나면 아침에 나가는 버스를 타고 도시로 가던가 아니면 십리 길을 걸어 면소재지로 가서 한 시간에 한 대 정도 있는 버스를 타야 했다.

겨울 아침 아직 해도 밝지 않은 시각, 어머니들은 새벽부터 일어나서 객지에 나가 고생할 아들딸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먹이시려고 밥을 짓고 또 그렇게 배웅하시고는 했는데 아들딸들을 태우자마자 급하게 출발해버리는 버스의 뒷모습을 보는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이렇게 다니던 버스도 홍수가 나거나 폭설이 나서 다니지 않게 되면 그나마 도로 사정이 나은 면소재지로 가서 버스를 타야 했다.

지금은 오전 열시쯤에 들어와서 열한시쯤에 나가는 오전 버스와 세시쯤에 들어와서 네 시쯤에 나가는 오후 버스 두 대가 병원에 가기위해 오일장에 가기위해 버스를 타고 다니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모시고 있다.

---폭설로 인해 버스가 다니지 않던 어느 날 도시로 급히 나가야 하는 아들이 못내 걱정스러워서 일까 아들의 만류에도 끝내 면소재지 까지 따라 나오신 어머니는 아들에게 몸조심하고 잘 가라는 인사말 한 마디 건넬 틈도 없이 급히 도착한 버스에 아들이 타자마자 바로 떠나버리는 버스를 허망하게 바라보다 아들과 올 때는 힘든 줄 모르고 걸었던 그 길이 갑자기 멀고 아득하게 느껴져 한 참을 서 있다가 그래도 가야지 하고 돌아서는 순간 눈 위에 나란히 나 있는 두 개의 발자국을 보고 그 발자국을 쫓아 걷다보니 아들과 함께 걷는 것처럼 힘든 줄 모르고 다시 걸어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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