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만 원을 낸 적이 있다
버스에서 만 원을 낸 적이 있다
  • 박다빈
    박다빈
  • 승인 2019.09.1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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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학교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교복 주머니에 천 원짜리 지폐 두 장과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있었다. 버스 타면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을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버스에 오르고 보니, 돈 통에 들어간 건 만 원짜리 지폐였다. 버스 기사님이 당황해 하시며 (사실 짜증을 좀 내셨다) 만 원을 왜 냈냐고 했다. 나는 죄송하다고, 잔돈을 안 받아도 된다고 했다. 버스가 만원이었고 내 뒤에 타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았다.

버스 기사님은 버스 타는 사람들의 돈을 일단 받으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승무원이라도 된 양,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버스 요금을 받았다. 그리고 그걸 차근차근 세어서 내 가방에 넣었다. 버스 문이 닫히자, 기사님이 거스름돈 버튼을 마구 누르기 시작했다. 동전으로 돈을 거슬러 주겠다는 거였다. 민망하고 죄송스러웠다. 몇 분 간의 동전 비가 쏟아진 뒤, 모든 소요가 끝났다. 나와 함께 버스를 탄 친구는 나를 끝까지 모른 척했고 나는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 날 나와 함께 버스에 타고 있던 내 친구는 그 일 때문에 내가 쪽팔리다고 얘기했다. 나는 그게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친구가 그 일로 나를 부끄럽게 여겼다는 사실을 알고 조금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때 그 친구에 대한 마음이 좀 상했었다. 별걸 다 부끄러워한다 싶었다. 당황스럽거나 민망하긴 해도 망신스러운 상황은 아니었는데. 나는 그 친구가 버스에서 그런 일을 당했다면 옆에서 잔돈 받는 걸 도와줬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 일일 때도 별일 아닌 건 남의 일일 때 더욱 별일이 아니니까. 뭐든 금세 잊는 성격이라, 나는 그 일도 금세 잊고 지냈다.

사람이 사람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그 일이 간혹 떠오른다. 나는 누가 누구에게 악의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얼결에 평가를 해 버렸으면, 스스로 그 평가를 무효화시킨다. 쓸데없이 남의 눈치를 보느라 나와 타인에게 이상한 잣대를 들이밀지 않으려고, 나는 순간순간 깨어 있고자 한다.

내가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별일이 아니다. 모든 건 지나가는 일이고, 내 생의 의미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물론 내 쪽에 잘못이 있다면 반드시 반성을 하고 사후 대처를 해야겠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잘잘못과 상관없는 일이라면, 거기에서 금방금방 자유로워지는 것이 나에게 이로운 것 같다. 오늘을 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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