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서 생긴 일
버스 안에서 생긴 일
  • 송이든
    송이든
  • 승인 2019.09.16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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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두 딸아이들을 데리고 버스를 탔다. 아마 30분 정도 가는 거리였던 것 같다. 두 아이와 나란히 앉기 위해 맨 뒷좌석에 올라가 앉았다.
차만 타면 큰 아이는 자는 버릇이 있었다.
자지 말라고 하면 짜증 낼 테니 그냥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머리만 흔들리지 않도록 내 어깨에 기대어 자도록 했고, 작은 애도 언니 따라서 왼쪽 어깨에 기댔지만 잠이 오지는 않는지 그냥 기대고 있는 상태였다.
갑자기 어디서 끼어든 오토바이 때문에 버스가 급정거했다. 나는 마침 작은 애의 손을 잡고 있어서 왼손에 주어지는 힘으로 넘어가려는 작은 아이는 잡았는데 오른쪽에 기대고 있는 큰애를 미처 잡지 못했다.
큰 애는 급브레이크 한 반동에 의해 마치 서서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다다닥다다닥' 종종걸음으로 버스 기사 아저씨가 있는 곳까지 '저 여기 있어요' 하듯이 달려나갔다.
운동신경이 있는 아이처럼 버스 기사 아저씨 있는 곳까지 달렸다. 그래 분명 달렸다. 그 모습에 내가 더 휘동 그래졌다.
금방까지 정신없이 졸던 애가 구른 것도 아니고 마치 높은 곳에서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가는 것처럼 버스 기사 아저씨 옆에 고정되어 있는 봉을 잡고 멈춰 섰다.
마치 체조선수가 도마 위에서 안전하게 착지한 것처럼. 금방까지 졸고 있던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나는 순간 얼어서 일어서지도 못하고 멍하니 보고 있었다. 자다가 웬 날벼락인가 싶은 큰 아이는 뒷좌석에 동생과 나란히 앉아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그리고 버스 안에 앉아 있는 손님들의 시선을 의식한 순간, 어떤 상황인지 파악한 그 순간 무서운 속도로 내게 달려오며 막 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 있음에 부끄럽고 당황스러웠으며 엄마가 자신을 잡아주지 못한 원망과 수많은 복잡한 감정들로 폭발해 버린 것이었다.
버스 아저씨는 "괜찮냐 꼬마야. 괜찮아?"를 연신 물어왔지만 아이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것 같았다.
물론 괜찮은 걸 나와 버스 안에 있던 손님들과 기사 아저씨도 보았다. 거의 묘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딸아이는 부끄러운 것 말고는 엄마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웃으며 한마디씩 했다.
"운동신경 있네"부터, "아저씨는 안 불렀는데 네가 왔네" 아이를 달래보려고 농담도 던졌지만 아이는 그럴수록 더 크게 울었다.
너무 웃픈 일이었다. 졸다가 급정거에 그렇게 다다닥 버스 아저씨에게 한달음에 달려나가는 모습은 그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놀란 나와 놀라고 부끄럽고 민망하고 화난 큰아이만 빼고는 모두에게 콩트와 같은 명장면이었던 것이다.
아이는 자신을 잡아주지 못한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더 크게 울며 나를 때렸다. 동생은 엄마 옆에 앉아있는데 자기만 붙잡아 주지 않아서 속상했던 것이다.
아이의 마음을 풀어줘야 했지만 이 버스 안에서는 안될 것 같았다. 이 버스 안에서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두 아이를 데리고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벨을 눌렀다.
버스기사 아저씨는 "꼬마 손님이 많이 당황했나 보네요."하고 버스에서 내리려는 내게 미안해했다. 뭐 끼어든 오토바이로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는 걸 알기에 괜찮다는 말 말고는 달리할 말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서도 몸부림치고 우는 아이를 한참이나 어르고 달랬다. "엄마가 나만 안잡아줬잖아"하며 서럽게 울던 아이에게 절대 안그런다고 다짐에 다짐에 또 다짐하고 아이의 울음이 멈추었다.
이 사건은 한 번씩 버스에서 자려는 아이에게 "졸다가 저번처럼 또 아저씨한테 달려갈래"라고 하면 아이는 안 자려고 용을 썼다. 그래도 졸리면 내 손을 꼭 잡고 잔다. 하나의 보호장치를 만드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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