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칠두 최현우, '백발의 독립투사' 강우규 '한글 수호자' 최현배 발자취 조명
김칠두 최현우, '백발의 독립투사' 강우규 '한글 수호자' 최현배 발자취 조명
  • 이나라
    이나라
  • 승인 2019.09.16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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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특별기획 ‘1919-2019, 기억록’ 9월 셋째 주 기록자로 시니어모델 김칠두와 마술사 최현우가 참여했다.

김칠두는 의거 100주년을 맞아 서울역에 있는 강우규 의사의 동상 앞에서 그를 기억했고, 최현우는 이목을 끄는 화려한 마술로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를 기록했다.

강우규 의사는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대한국민노인동맹단’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 해 9월 2일, 강우규는 새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의 처단을 결심하고 서울역 광장에서 총독을 향해 폭탄을 투척했다. 그의 거사는 3.1운동 이후 최초의 의열 투쟁이자 최고령자의 폭탄투척의거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강우규 의사는 이듬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고, 서울역 광장에는 폭탄을 투척하는 강우규 의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시니어 모델로 활발히 활동하는 김칠두는 구 서울역사 광장에서 역사의 순간을 되돌아봤다. 김칠두는 “나도 늦은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했던 만큼 의거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때문에 노년의 나이에 독립운동을 했던 강우규 의사가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는 감회를 밝혔다.

우리말과 글이 사라졌던 일제 강점기, 최현배는 빼앗긴 민족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한글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보존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체포된 최현배는 감옥에서도 한글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우리말본> <한글갈> <글자의 혁명> 등을 저술하며 일본식 한자어 대신 우리 한글 쓰기와 가로쓰기를 주장했다.

“한글이 목숨”이라며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고자 했던 외솔 최현배는 평생을 한글 교육과 연구에 힘쓰다 1970년 세상을 떠났다.

최현우는 “최현배 선생님의 삶이야말로 마술 같은 삶이 아닐까 싶다. 일제로부터 끊임없이 탄압받았지만, 불꽃처럼 다시 일어나서 한글을 연구하신 분”이라며 “선생님을 기록하며 한글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많은 분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험한 길을 걸어왔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기획된 캠페인 다큐 ‘1919-2019, 기억록’ 은 매일 수시 방송되며, 김칠두와 최현우의 ‘기억록’은 16일부터 일주일동안 MBC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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