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 칼럼] 추석(秋夕)의 의미
[전정희 칼럼] 추석(秋夕)의 의미
  • 전정희 소설가
  • 승인 2019.09.0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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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秋夕)의 의미

어린 날 추석 풍경은 정겨웠다. 추석이 다가오면 추석빔을 얻어 입어 신이 났고, 추석 전날 밤에는 온 식구가 둘러앉아 송편을 빚었다. 어른들 틈에 끼어 앉아 뭉툭하고 찌그러진 송편을 만들며 서로 자기 송편이 더 멋지다고 우기기도 했다. 마당 한쪽에서는 송편 찌는 솔향기가 무럭무럭 올라오고, 달이 둥실 떠오를 즈음에는 온종일 차에 시달리며 달려온 친척들이 두 손 가득 선물을 들고 대문을 들어섰다. 이후에는 술상이 벌어지고 친척들은 그동안 못 나눈 이야기들을 밤이 늦도록 하품을 하면서도 끝낼 줄을 몰랐다.

음력 팔월 보름날, 추석(秋夕)은 설날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명절로 손꼽힌다. 가위, 한가위, 가배, 중추절(仲秋節)로도 불리는 추석의 시초는 삼국사기와 이를 인용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찾을 수 있다. 신라 제3대 왕 유리 이사금 때 서라벌 도성(6부) 안의 부녀자를 두 파로 나누고 두 명의 공주로 하여금 각 파를 이끌게 하여 백중(음력 7월 15일) 다음 날부터 한 달 동안 삼을 삼아 음력 8월 15일, 즉 추석 당일 가윗날에 한 달간의 성적을 심사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 한 턱 내고 함께 노래와 춤을 즐기며 놀도록 한 것이다.

원래 추석의 의미는 추수를 하기 전, 농사의 중요 고비를 넘겼을 때 미리 곡식을 걷어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었다. 즉 여름 농사일은 이미 끝냈고, 가을 추수라는 큰일을 앞두고 날씨도 적절하니 성묘도 하고 놀면서 즐기는 명절이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의 추석은 추수를 끝낸 뒤 감사의 의식을 치르는 외국의 추수감사절과는 다르다.

추석은 여름처럼 덥지도 않고 겨울처럼 춥지도 않아서 살기에 가장 알맞은 계절이므로 속담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이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 또 추석 무렵이면 기후가 쌀쌀하여 여름옷에서 가을 옷으로 갈아입었기에 ‘추석빔’을 얻어 입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추석이 그리 쌀쌀하지 않고 올해 추석은 더더욱 빨라 아직도 한낮의 기온은 30℃를 오르내리고 있다.

추석을 하루 이틀 남기고는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교통 혼잡이 극에 달한다. 민족의 대이동으로 서울 시내가 텅 비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평소 걸리는 시간의 두 배, 혹은 서너 배의 시간이 흐르는 고통을 감내하고 고향으로 고향으로 향한다. 늦은 밤 겨우 도착하여 가족들은 회포를 풀고 밤새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이때 여자들은 음식을 내고 설거지를 하느라 녹초가 된다.

추석날 아침이 되면 일찍 일어나 햅쌀로 밥을 짓고 햇곡식으로 미리 만들어둔 술과 송편, 햇과일로 차례를 지냈다. 차례가 끝나면 아침 식사를 마치고 조상의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하는데, 추석이 되기 전에 산소에 가서 미리 벌초를 해두어야 했다. 추석이 되어도 벌초를 하지 않은 무덤은 자손이 없어 임자 없는 무덤이거나 자손은 있어도 불효하여 조상의 무덤을 돌보지 않는 경우여서 남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위와 같은 모습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추석 풍경이었다. 그러나 2019년의 추석은 시대가 변하면서 점점 바뀌고 있다. 귀성길 대신 해외 여행길에 오르거나, 가족과 친척을 만나기보다 집에서 혼자 휴식을 취하는 등 추석 연휴를 보내는 방식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

필자의 지인은 홈쇼핑 관계자로 일하고 있는데 몇 년 전만 해도 추석 무렵에 잘 팔리는 물건이 프라이팬이나 그릇, 그리고 먹거리였다면 지금은 배낭, 캐리어 또는 여행상품이 불티나게 잘 팔린다고 말한다. 실제로 한 신문사의 설문조사 결과 ‘추석은 연휴의 하나일 뿐’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약 60%에 달했으며 추석 차례 상을 차리는 소비자도 71.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추석 뒤에는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다. 추석 당일 시댁을 먼저 방문하느냐, 친정을 먼저 방문하느냐를 두고 서로 감정싸움을 하거나 고부(시어머니와 며느리) 혹은 장서(장모와 사위)간 갈등이 평소 쌓아둔 배우자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져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명절이 지난 후 지방법원은 급증하는 이혼 부부들의 방문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이제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다. 올해는 둥근 보름달을 보고 무엇을 기원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본다. 누군가에게는 가족들을 만나는 행복한 추석이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해외여행길에 오르는 즐거운 추석이 될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뼈빠지게 집안일을 해야 하는 불행한 추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라기는 모쪼록 올해 추석만큼은 더도 덜도 말고 서로를 위해주는 추석, 기분 좋은 말 한 마디로 시름을 덜 수 있는 추석, 오랜만에 만나 지난날의 안부를 묻고 진심으로 상처받은 마음들을 서로 치유할 수 있는 복된 추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추석날 둥근 보름달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기를 바라며…….

 

전정희 소설가 저서 '하얀민들레' '묵호댁'
전정희 소설가 저서 '하얀민들레' '묵호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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