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손해율 악화로 '허덕'…보험료 차등제 도입될까
실손보험 손해율 악화로 '허덕'…보험료 차등제 도입될까
  • 이승원 기자
    이승원 기자
  • 승인 2019.09.06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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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종합병원에서 보호자들이 진료비 수납을 하고 있다. 2018.7.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국민 3400명이 가입해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여겨지는 실손의료보험의 손해율이 악화돼 보험료 차등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료 이용이 많아 보험금을 많이 타는 가입자에게는 높은 보험료를, 그렇지 않은 가입자에게는 할인된 보험료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험료 차등제는 가입자 간 형평성을 높이지만, 소득재분배 등 공적부조 기능 하락을 유발한다. 또 고령층과 중증질환자는 보험료 급등이 예상돼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태열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5일 코리안리에서 열린 '실손의료보험제도 현황과 개선방안 정책세미나'에서 올해 상반기 실손보험 손해율은 129.1%로 전년동기대비 약 20%포인트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수익성 문제가 심각했던 2016년(131.3%) 수준이다. 올해 상반기 손해액은 5조1200억원에 달한다.

손해율은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 중 지급하는 보험금 비중이다. 가입자에게 100만원을 받았다면 129만1000원이 보험금으로 지급됐다는 의미다.

실손보험에서 이익은커녕 손실이 발생하자 일부 보험사는 손을 떼고 있다. 손해보험사 중 AIG(2017년 4월)·ACE(2013년 4월)·AXA(2012년 4월)가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했다. 생명보험사에서는 DB(2019년 3월)·KB(2018년 6월)·DGB(2018년 5월)·KDB(2018년 1월)·푸본현대(2017년 8월)가 실손보험을 판매하지 않는다.

 

 

 

 

 

 

 


보험 전문가들은 실손보험 손해율 급증의 상당 부분은 관리되지 않는 비급여에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백내장 수술을 할 때 다초점인공수정체가 실손보상 담보 대상에서 제외되자 계측검사 비용을 기존보다 훨씬 많이 요구하고 있다. 비정상적인 횟수의 도수치료도 비급여 관리 허점을 드러내는 구멍으로 지목된다.

우리나라 총의료비는 건강보험에서 지급하는 급여(보통 진료비의 70%)와 나머지 본인부담금,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비급여로 나눠진다. 실손보험은 본인부담금과 비급여를 보장한다.

이재구 손해보험협회 손해보험1본부 본부장은 "두 환자가 같은 날 백내장 수술을 위한 계측검사를 했는데 2016년 이전 실손보험 가입자는 20만원, 이후 가입자에게는 200만원을 받는다"며 "정부가 비급여 관리를 못 한다지만 너무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비급여는 현저히 감소해야 하지만 실손보험 보험금 청구는 본인부담금, 비급여 모두 증가하고 있다.

손해보험 상위 5개사의 실손보험 청구 금액을 보면, 본인부담금은 올해 상반기 1조4500억원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 1조1200억원보다 3300억원 늘었다. 비급여는 2조6500억원으로 2조100억원보다 6400억원 증가했다.

이태열 선임연구위원은 "비급여가 본인부담금 증가를 상쇄할 정도로 감소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청구액이 증가하는 것은 총의료비 관리 차원에서 우려된다"며 "한시적으로라도 비급여의 적정성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심사하는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비급여의 적정성 심사는 의료계가 강하게 거부하고 있어 현실적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비급여 심사는 어느 정권에서도 시도하기 어려운 의료계의 '역린'이다. 심평원은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적용 급여 항목의 진료를 적정하게 했는지 심사하고, 필요한 경우 진료비를 삭감해 과잉의료를 막는 공공기관이다.

손해율 급등의 또 다른 요인은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다. 가입자는 의료 이용과 상관없이 동일한 보험료를 부담하기 때문에 '본전 심리'가 발동할 수 있고, 때에 따라 불필요한 의료비를 지출할 수 있다.

실손보험은 보험료 산출 때 성·연령·상해등급(직업 위험별 3등급) 등 보편적인 인구구조 변수를 반영한다. 가입 때 병력을 반영해 보험료 할증을 하지만 유지기간 이후 재가입 때는 보험료 할증이 없다.

불필요하거나 고가의 의료 서비스를 빈번하게 이용하고 높은 보험금을 수령하는 일부 가입자에 의해, 대부분의 가입자가 매년 인상된 보험료를 감당해야 하는 구조인 셈이다. 실제 보험금 지급구조를 보면 보험가입자 20%가 85%의 보험금을 청구하고 있다.

실손보험 손해율 악화가 지속되면 보험료 상승은 불가피하고 결국 가입자가 노인이 됐을 때 실손보험을 해지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비싼 보험료를 부담할 여력이 있는 노인만 실손보험 유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 뉴스1

 

 


정성희 보험연구원 손해보험연구실장에 따르면 실손보험 손해율이 매년 10% 상승하면 현재 40세가 60세에 부담해야 할 보험료는 약 7배, 70세 때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는 약 17배 오른다.

예를 들어 현재 보험료가 가장 저렴한 1년 갱신 신(新)실손보험에 가입한 40세는 현재 1만4794원의 보험료를 내고 있지만 60세 때는 보험료가 9만9527원, 70세 때는 25만8146원으로 뛴다.

결국 의료 소비자인 가입자가 의료 이용을 적정하게 유지하도록 의료 이용량과 연계한 보험료 차등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실린다. 정성희 실장은 보험금 고액 청구자의 보험료는 더 하고, 무(無)청구자는 더는 보험료 할인·할증 방식을 제안했다.

 

 

 

 

 

 

 

 

 

 

 

 


실제 주요국은 민영의료보험의 보험금 청구 실적에 따라 다음 연도 보험료 할인·할증을 적용하고 있다. 영국 최대 건강보험사인 BUPA는 보험료 조정단계를 14등급으로 구분해 보험금 청구 실적에 따라 최대 70%까지 차등 적용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바이탈리티(Vitality)의 경우 가입자 보험금 청구 실적과 더불어 다이어트, 금연, 운동 등을 고려해 최대 80%까지 보험료 차이를 둔다.

다만 보험료 차등제를 도입하면 의료 이용이 많은 고령자, 중증질환자 보험료가 급증할 수 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질병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같은 이유로 시민소비자단체는 보험료 차등제를 지속적으로 반대해 왔다.

오창환 보험개발원 생명장기손해보험부문 부문장은 이러한 부작용을 고려해 "필수의료를 제외한 선택진료 중심으로 보험료 차등제를 도입하자"는 방안도 내놓고 있다.

보험료 차등제를 도입하면 소득이전 등 상호부조효과가 주는 것도 논의해야 할 부분이다. 정부에서도 이 같은 점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하주식 금융위원회 보험과 과장은 "실손보험은 그동안 제2의 건보처럼 많은 사람들이 저렴한 보험료로 혜택을 봤다"며 "보험료 차등제가 이뤄져 보험 원리 가까워질수록 소득이전효과가 주는데 이 부분을 감내하면서도 도입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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