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쓴 엽서 같은 사람이 좋아서
손으로 쓴 엽서 같은 사람이 좋아서
  • 박다빈
    박다빈
  • 승인 2019.09.0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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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발달한 기술 문명 속에서 자필 엽서처럼 살아가는 사람. 웬만한 것들은 일단 자기 손으로 직접 해 보려고 하는 사람. 어설프고 서투른 것들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에 진정으로 감동할 줄 아는 사람. 촌스럽고 번거로운 것들 속에 담긴 뜨거운 진심과 열정에 공명할 수 있는 사람. 그렇다고 현대와 싸우지는 않고, 다만 현대의 어귀에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 하여 고집이 아닌 멋스러운 주관을 가진 사람. 트렌드에 민감하지 않아,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고 그것을 꾸준히 보유하고 있는 사람. 요즘은 그런 사람을 자꾸 바라보게 된다. 그런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크게 즐겁다. 어떻게 보면 내가 그런 종류의 인간상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런 이들이 예쁘게만 보이는 건지도 모른다. 이미 내가 그 길에 들어서 있기 때문에, 그 길 위에서 거닐고 있는 이들 곁으로 달려가고 싶은 건지도.

꼭 나와 닮은 사람만 좋아하겠다는 마음 같은 건 없지만. 내가 보는 행복을 행복으로 볼 줄 아는 사람 근처에 머물고 싶은 마음은 간혹 본능처럼 끈질기다.

물론 나는 내 것과 결이 다른 행복을 가진 모두를 기쁘게 응원하지만. 그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릴 수 있고, 그것이 많은 세월의 즐거움이었지만. 가끔은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의 존재를 찾게 된다. 설명도 해명도 변명도 필요 없는 관계 안으로 들어가 잠깐이나마 쉬고 싶다.

내가 나이기에 자연히 살게 되는 순간들로 쏟아지는 “왜?”는 서로 간의 이해를 시작하게 만드는 뜻깊은 계기이지만. 종종 내 어깨 위로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왜?”에 흠뻑 젖으면 마음이 버거워해서. 왜 너는 너냐고 피차 물을 필요가 없는 찰나, 그런 찰나로 통하는 문고리를 있는 힘껏 쥐게 된다. 마음이 고단해하는 그런 순간에 내가 제때 휴식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에게 건네는 “너는 왜?”를 “너는 아니야!”로 왜곡해서 듣게 되니까. 신경질 낼 일이 아닌 곳에서 신경질을 내게 되니까. 엉뚱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게 되니까.

나만의 고유한 구역을 보존하기 위해 그 안에서 시간을 보낼 줄 알아야, 사회 생활을 하는 구역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내 자리를 잘 지킬 수 있을 때, 다른 곳으로도 잘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잘 돌보지 않아 나의 정체성 따위가 흐트러진 상태가 되면, 나는 타인의 존재를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사실은 타인이 내 정체성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이미 내가 내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 상태일 뿐인데.

아무것도 부러워하지 않고, 아무것도 흉내 내지 않고, 아무것도 비교하지 않고, 그저 온전한 나 자신이 되어서 보내는 시간. 그런 시간이 요즘 나에게는 최고의 휴식 시간이다. 그 휴식 시간 속에서 문득문득 배운다. 내가 나의 자리를 만드는 것과 내가 내 둘레로 방어막을 세우는 건 다르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진정으로 나 자신을 사랑할 때, 나는 내 자리만 만드는 것 같다. 내 주위로 방어막을 세우지 않고. 이미 내가 나를 사랑해서 내가 충만하게 채워져 있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 딱히 없어서. 이미 내가 나를 돌보고 있기 때문에, 나 자신이 외부로부터 보호나 보살핌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나약한 존재가 아님을 알아서. 그러니 지켜 내야 할 것이 딱히 없어서. 공격해야 할 것도 딱히 없어서.

궁극의 평화는 건강한 자기애에서도 올 수 있다는 생각이 부쩍 많이 든다. 내가 나를 채울 수 있을 때, 나는 어디에도 구걸하지 않는다. 내가 나를 채울 수 있을 때, 내 인생의 지엽적인 상실은 나를 쓰러뜨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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