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일주일 간의 마지막 여름 휴가가 어제 부로 끝나고, 오늘 다시 일상을 시작한다. 휴가 동안 많은 생각을 한 건 아닌데, 기억에 남는 생각이 있어 기록으로 남겨 두고자 한다.
휴가가 시작된 첫 날과 둘째 날에는 아무 생각이 없고 마냥 좋았다. 좀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에, 쉬는 것에만 집중하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런데 휴가가 사나흘 이어지면서부터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매일 일을 하던 관성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전처럼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싶었다. 가만히 있는 게 어쩐지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여름철, 겨울철 두 번뿐인 휴가인데 이때 일하는 건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까지는 휴식에만 전념했다.
그리고 휴가 닷새째 되던 날, 나는 책을 한 권 읽었고 일기를 썼다. 지독한 활자 중독증이 다시금 절감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일을 하기 싫을 때는 정말 일이 하기 싫은 게 아니라, 단순히 휴식이 필요한 것일 수 있겠구나.
올해, 나는 가장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체력적인 뒷받침이 되어서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과로를 하긴 했다. 약간은. 그래서 늦여름에는 꽤 자주 지쳤다. 아침에 일어나고 싶지 않은 때가 있었고, 오후에 긴 낮잠을 자고 싶은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하루쯤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다고 생각한 때도 있다. 그것은 일에 대한 싫증이 아니라 휴식에 대한 목마름이었다. 닷새 일 안 했다고 그렇게 책 읽고 글 쓰고 싶은 걸 보면, 나는 여전히 이 일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인데. 이 일에서 크나큰 행복을 발견하는 사람인데. 일상 운용을 잘못했다가 이 일을 놓쳤으면 어떡할 뻔했나, 싶은 생각이 들어 모골이 송연하였다.
완급 조절이 매사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또 한 번 든다. 내가 늦여름 동안 자주 피로했다면, 그것은 내 몸이 아니라 내 일상 계획에 문제가 있었던 것. 살아갈수록 자꾸만 유연해져야 하는 것 같다. 몸이 노곤하면 그 날, 그 날의 일과를 수정할 법도 한데. 나는 1년 간 거의 변함없는 일과를 유지했으니.
이렇게라도 성찰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남은 한 해와 내년은 좀 더 건강하고 유연하게 보내 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먹고 싶은 것들 먹고, 보고 싶은 사람들 보며, 안쪽으로 충만함을 기할 수 있었던 근사한 휴가였다. 모든 사람들과 모든 순간들에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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