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 칼럼] 노인은 지혜의 등불
[전정희 칼럼] 노인은 지혜의 등불
  • 전정희 소설가
    전정희 소설가
  • 승인 2019.08.26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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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지혜의 등불

 

옛날 인도에 노인을 버리는 임금이 있었다.

“노인들은 잔소리만 퍼붓고, 그러면서도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니 나는 나라 안의 모든 노인들을 쓸어버리겠다.”

이렇게 생각한 임금은 곧 대신들을 불러 나라 안의 노인들을 모두 없애라고 명령하였다. 대신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아뢰었다.

“임금님,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이 노인이 되는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나이 먹어 늙는 것도 서러운데 나를 낳아준 부모님을 어떻게 버립니까?”

그러나 임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라 안의 한 대신의 집에도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 그러나 손자는 도저히 할아버지를 버릴 수가 없어서 몰래 땅굴을 파고 그 속에 모셔두고 저녁에 급병으로 돌아가셨다 하여 장사까지 잘 지냈다. 그 후 며칠이 지나서 임금이 꿈을 꾸니 한 신인이 나타나 말했다.

“내가 너에게 한 가지 물어볼 말이 있는데, 만일 이를 대답하지 못하면 7일 이내에 나라를 없애 버리리라.”

왕은 벌벌 떨면서 문제를 해결하겠으니 제발 나라를 없애지 말라고 간청했다. 신인은 뱀 두 마리를 내놓으면 말했다.

“어느 것이 수놈이고 어느 것이 암놈이냐?”

두 뱀은 서로 겹치기도 하고 꼬리를 틀기도 하고 또 혀를 날름거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임금은 아무리 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이튿날 임금은 대신들을 모아 놓고 의논하였으나 역시 아무도 답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제가 집에 가서 한번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중 한 대신이 얼른 집으로 돌아와 곧 지하실에 계신 할아버지께 물었다.

“어떤 것이 암컷이고 어떤 것이 수컷입니까?”

“두 마리 뱀을 따로 따로 부드러운 솜 위에 놓고 비유해 보라. 기운이 펄펄한 놈은 수놈이고 조용한 것은 암놈이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대신은 급히 대궐에 들어가서 그대로 여쭈었다.

저녁이 되어 임금님은 꿈 가운데서 신인을 만나 답을 말했다. 신인은 잘 맞추었다고 칭찬하고 또 새로운 문제를 주었다.

“여기 큰 코끼리가 한 마리 있는데 코끼리가 커서 저울에 달 수 없다. 무게를 달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임금은 역시 대답을 못하고 이튿날 또 어전회의를 열었다.

이번에도 그 대신이 할아버지께 물었다.

“얘야, 뭐가 그렇게 어려우냐? 커다란 배에다가 코끼리를 태우고서 물에다 띄워 배가 무거워 가라앉는 곳을 표했다가 다음에는 돌을 실어 그 표에 이르게 하라. 그리고 다시 돌을 꺼내 하나씩 달아 보면 되지 않겠느냐?”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셨다. 답을 알게 된 임금은 선인을 만나 말했으나 이번에는 더 어려운 문제를 주었다.

“여기에 있는 두 마리의 말은 보기는 똑같으나 하나는 어미이고 하나는 자식이다. 어느 것이 어미이고 어느 것이 자식이냐?”

왕은 또 대신들을 불렀다. 그러나 대신들은 눈만 끔벅였다. 역시 그 대신이 집으로 가서 할아버지께 여쭈었다.

“그것도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두 마리 말 앞에 풀을 주어보아라. 어미 말은 새끼 말에게 먼저 먹일 것이다.”

“아, 그렇군요, 사람이나 짐승이 뭐가 다르겠습니까?”

손자 대신은 신이 나서 곧 대궐로 뛰어가 이 사실을 아뢰니 과연 그것은 정답이었다.

비로소 신인의 시험에서 벗어난 임금은 그 대신에게 큰 상을 내리며 소원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하였다. 그러자 대신은 비로소 할아버지를 땅속에 숨긴 사실과 땅속에 숨어 계신 할아버지가 그 지혜를 짜낸 것을 말씀드렸다. 왕은 크게 뉘우치고 그 할아버지에게 큰 상을 내린 후 전국에 노인 사면령을 내렸다.

위의 우화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요즘처럼 노인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시기는 일찍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마트에서 목격한 일이다. 20대쯤 되어 보이는 아가씨가 진열대에 있는 캔맥주를 한 손으로 세 개나 들고 돌아서다가 마침 그 자리를 지나는 한 할머니의 손등 위로 캔맥주 하나를 떨어뜨렸다. 할머니는 ‘아’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시며 벌겋게 부어오른 왼쪽 손등을 오른손으로 잡고 계셨다. 그런데 아가씨는 사과 한마디 없이 할머니를 한번 흘낏 쳐다보더니 계산대를 향해 가는 것이었다. 바로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본 나는 오지랖 넓게 아가씨를 불러 세웠다. 아가씨의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려 있었고 이어폰을 낀 채 그때까지도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이봐요 아가씨, 할머니를 다치게 했으면 사과라도 하고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자 아가씨는 너는 또 뭐냐는 표정으로 당돌하게 말했다.

“할머니가 먼저 저를 치셨는데요.”

기가 막히기는 할머니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가씨 내가 바로 옆에서 봤는데 아가씨가 돌아서다가 할머니와 부딪친 거잖아요. 그리고 만에 하나 할머니가 잘못해서 부딪쳤다고 해도 캔맥주가 할머니 손등으로 떨어졌으면 할머니 손부터 살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잖아요?”

아가씨는 자신의 잘못은 조금도 없다는 듯 퉁퉁거렸다.

“뭐라구요? 장을 보려면 장만 봐야지, 손에 휴대폰 들고 이어폰 끼고 그러고 다니니까 주변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모르는 거 아닌가요?”

내 목소리가 조금 커지자 주변의 시선이 창피했는지 아가씨는 고개를 까닥 숙이며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라고 한 마디를 남기고는 쏜살같이 가버렸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할머니는 갑자기 당한 날벼락에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신 듯 멀어져가는 아가씨를 멍하게 보고 서 계셨다. 한참을 그렇게 서 계시던 할머니는 나를 향해 말했다.

“고맙수, 하마터면 손도 다치고 사과도 못 받을 뻔 했는데……, 요즘 젊은 것들한테는 잘못했다가는 봉변당하기 일쑤라우. 욕이나 안 하고 가면 다행이지 원…….”

할머니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카트를 천천히 밀고 가셨다. 손이 아프신지 연신 손을 들여다보면서 가시는데 괜히 내가 봉변을 당한 듯 화가 치밀었다. 생각 같아서는 직원을 불러 CCTV라도 돌려 보며 잘잘못을 따져서 하다못해 연고라도 사서 발라드리게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언제부터 젊은이들이 더 이상 노인을 존경하지 않게 되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물론 요즘 젊은 사람들이 모두 마트에서 만난 경우 없는 그 아가씨와 같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만 해도 버스나 지하철에서 노인이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자리를 양보하고 짐을 들어드리고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지나는 노인들에게 설교를 당하는 경우는 집에서 부모님께 혼나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식당에서 뛰는 아이를 혼낼 수도 없고, 엘리베이터에서 버릇없이 구는 아이에게 훈계를 해서도 안 된다. 그랬다가는 아이의 엄마가 십중팔구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면서 따지고 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기는 엄마가 예의가 바르면 아이를 그렇게 뛰게 두지도 않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노인은 지혜의 상징이다. 수많은 날들을 살아냈으니 수많은 지혜가 번뜩이는 것이 당연하다. 노인들의 그 지혜로움을 배우고 답습하지는 못할망정, 조금이라도 예의 없이 구는 일은 삼가야 한다. 어린아이가 가정의 꽃이라면 노인은 지혜의 등불임을 명심해야 할 일이다.

 

소설가 전정희. 저서'하얀민들레' '묵호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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