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으로 향하는 가시덩쿨
친정으로 향하는 가시덩쿨
  • 송이든
    송이든
  • 승인 2019.08.1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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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만에 친구가 내게 연락을 해왔다. 어린 시절 부모를 다 잃고 그녀에게 친정부모가 없다. 결혼 후 쭉 시집에 들어가 살고 있다 했다. 시부모님이 딸처럼 잘해주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친정엄마가 사무치게 그립다 하소연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갈 수 있는 친정집이 있었으면 좋겠다 말했다.
밤새 그 말이 신경쓰였다. 어떤 마음인지 어떤 의미였는지 아니까. 시어머니가 아무리 좋아도 친정엄마가 주는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다.
결혼 후 내게도 많은 반발심이 손님처럼 자주 찾아 왔다. 결혼하면 철든다고 하더니 아마 이런 감정이나 변화를 두고 하는 말이지 싶었다.
결혼 후 모든 것이 받는 삶에서 주는 삶으로 바뀌었다. 권리보다 의무가 부여되기 시작했다. 며느리로서의 의무, 아내로서의 의무, 엄마로서의 의무가 내 한 몸에 다 쏟아졌다.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었다. 결혼은 그동안 누려오던 자유가 끝났다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의식이었다.
결혼 전에는 몰랐다. 친정집과 시댁으로 나누어지는 삶을 상상도 못했다.
결혼하고도 딸로서 크게 달라질게 없다고 여겼다. 똑같이 나는 딸로서 지금처럼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냥 환경만 조금 바뀌는 것 뿐이라고.
그냥 부모와 다른 집에 사는 것 뿐이라고. 근데 너무 먼 이웃이 되어버렸다. 제주라는 곳이 주는 거리상의 문제라기 보다 현실상의 문제로 말이다.
아주 먼 이웃말이다. 아주 먼 친척처럼 일년에 한 번 만나는 것도 힘들었다. 설날이나 추석, 부모님의 생신 때 그들을 볼 수 없게 되리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현실에는 내가 꿈꾸는 효도는 없었다. 현실에는 내가 꿈꾸는 낭만은 없었다.
결혼해서 시댁이 생기고 그 시댁으로 인해 친정은 마음속에서 가시나무처럼 피어났다.
내 부모 생신상 한 번 제대로 차려준 적이 없는데 시어머니 생신이라고 새벽부터 일어나 미역국을 끓이고 생선을 굽고 나물을 볶고 무치면서 마음 한 켠이 저려왔다.
날 길러준 부모 놔두고 왜 여기서 음식 준비하느라 분주한가.
날 낳고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모질고 혹독한 시집살이를 했던 엄마에게 이런 생신상 한번 제대로 차려준 적이 없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저 사람은 결혼 후 더 자유로워보이는데, 저 사람은 결혼으로 자신의 부모에게 날 앞세워 효도를 하는데 나만 내 부모에게 불효하고 있다는 것이 억울하고 아펐다.
나는 여기서 날 낳아준 적도 없는 사람의 생신상을 이렇게 정성들여 차리고 있는데, 당연히 해야하는 의무처럼 내 어깨에 올라탔는데 백년손님같은 소리만 하고 있다.
이게 딸들이란 종자들인가. 이래서 딸들을 아들과 차별한 것인가. 어짜피 내 생일상을 차려줄 사람은 자신이 낳은 딸이 아니라 며느리일 걸 알아서 그런 것인가. 키워 놓으면 남의 집 사람이 될거라서....참 아펐다. 참 싫었다. 결혼이 자꾸 내 부모로부터 날 이방인으로 만들어놓았다.
왜 엄마가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부엌에서 눈물 지었는지 가슴 저미게 통감했다. 제삿날 엄마가 해 놓은 음식을 나르는 일만 하던 내가 결혼 후 며느리로 엄마가 하던 음식을 손수 요리하고 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일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실감하는 중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힘든걸 엄마 혼자 다 해냈구나. 제사는 또 얼마나 많았으며, 손님은 또 얼마나 많았는가, 그러니 그 양은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래서 장손 며느리 되지마라, 장남한테 시집가지 말라고 눈만 마주치면 말했는지를 또 통감하는 중이었다.
재료손질만 해도 하루해가 짧았다. 그리고 새벽부터 일어나 불앞에서 할 게 너무 많았다. 내 대에서 끊어내야 해, 내 손에서 이 말도 안되는 여자들의 중노동을 끊어내야 해. 난 절대 물려주지 않을거야. 내 아이들에게.
마늘을 잘게 다지듯 내 각오를 뼈에 새겨 넣어두듯이 다지고 또 다졌다. 친정이란 말만 들어도 친정엄마란 소리만 들어도 죄인이 된다. 마음이 무너진다.
내가 결혼으로 잡은 손이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손을 놓아버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점점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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