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 칼럼] 지인(知人)과 진정한 친구
[전정희 칼럼] 지인(知人)과 진정한 친구
  • 전정희 소설가
    전정희 소설가
  • 승인 2019.08.1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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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천석지기 조씨가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이 아들은 많은 청년들과 어울려 다니며 술이나 마시고 놀기만 하였고 공부에는 도통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들은 여러 청년들과 “형이야 아우야!” 하면서 “우리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진정한 친구”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아들은 진정한 친구가 정말 많다고 자랑을 하고 다녔다. 이런 아들을 보는 아버지는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하루는 아들을 불러 앉혔다.

“얘야! 네가 친구가 많다고 그리 자랑을 하는데, 술이나 밥으로 사귄 친구는 진정한 친구가 되지 못한단다. 그러니 한 친구를 사귀어도 의리 있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와주는 그런 친구를 사귀어라.”

“제 친구는 모두 의리가 있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앞장서서 도와줄 친구들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로 훈계해서는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한 가지 방도를 생각해 내었다. 아버지는 하인을 시켜 돼지를 한 마리 잡아서 털을 깨끗이 벗긴 후 멍석에다 둘둘 말아서 밤늦게 들어온 아들을 앞세워 아들이 가장 친하다고 하는 친구에게 가자고 하였다.

“네 친구에게 가서 네가 사람을 죽였는데 좀 도와 달라고 부탁해 보아라.”

아들은 자신이 가장 친하다고 믿고 있는 친구를 찾아갔다. 그리고 자신이 실수를 하여 살인을 하였는데 이 시체를 맡아서 처리해 달라고 하였다.

“아니! 자네가 사람을 죽였으면 자네 혼자 해결해야지. 왜 나까지 끌어들이려고 하는가?”

그 친구는 아들을 대문간에 들어서지도 못하게 하고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아버지는 두 번째 친한 친구에게 가자고 하였다. 아들은 친구를 불러내어 말했다.

“내가 술을 먹다가 잘못하여 사람을 쳤는데 그만 죽고 말았네. 그래 그 사람의 시체를 가져 왔는데 자네가 좀 처리해 주겠나?”

그러자 그 친구는 말도 붙이지 못하게 하고는 빨리 가라며 호통을 쳤다.

“네 친구는 모두 의리 있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와주는 친구라고 하더니 어째 이러느냐? 나는 친구가 많지도 않고 딱 한 사람이 있는데 한 번 가 보자꾸나.”

아버지는 아들을 앞세워 자신의 친구를 찾아갔다.

“여보게, 내가 술을 마시다가 실수를 해서 사람을 죽였네. 그래서 이렇게 시체를 짊어지고 왔는데 자네가 이것을 좀 처리해 줄 수 있겠나?”

“어쩌다 이런 일을 저질렀는가? 우선 아무도 모르게 묻어 놓고 다시 생각해 보세.”

아버지의 친구는 얼른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며 연장을 챙겼다. 이를 본 아들은 친구가 많다고 자랑을 하며 다녔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위의 우화는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보았을 이야기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지인(知人)을 만난다. 지인이란 가깝게는 친구나 친척을 포함하며 넓게는 알고 지내는 모든 사람이 지인에 속한다. 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일수록 지인의 숫자는 부지기수로 늘어갈 것이다. 종종 전화가 걸려올 때 분명히 이름이 뜨는 걸 보면 아는 사람임이 분명한데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도 생기고는 한다. 어떨 때는 동명이인까지 있어 입력된 사람의 특징을 나만이 알 수 있도록 적어 두어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가끔 의문을 품는다. 내 휴대폰에 입력된 이 많은 사람들, 나와 이모저모로 관계를 맺고 있는 이 사람들 중에 과연 내 편은 얼마나 될까? 적어도 이 친구, 이 지인만은 내편이 되어주지 않을까? 나는 휴대폰에 입력된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넘겨본다.

내가 아무 문제 없이 지낼 때 내 주변에는 수많은 지인들이 나를 향해 해맑은 웃음을 건네준다. 그러나 정작 어려운 일이 있어 주변을 돌아보았을 때 과연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손을 내밀어 줄 지인이 얼마나 있을지는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무조건 내편을 들어주는 지인, 가족보다 먼저 달려와 상처를 위로해주고 보듬어 줄 지인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지인과 달리 진정한 친구는 누구일까? 주변 사람에게 물어도 보고 인터넷 검색도 해 보았다. 어떤 사람은 새벽 두 시에 전화해서 술 먹자고 할 때 군말 없이 나오는 친구를 진정한 친구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마지막 한 개피 남은 담배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을 진정한 친구라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내가 죽었을 때 진심으로 울어주고 매년 내가 죽은 날 나를 떠올려 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인디언들은 친구를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고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친구는 언제 어느 때나 아무 부담 없이 만날 수 있고 만나서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편안한 친구,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잘 되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해 주며 더 나아가 배 아파하지 않는 친구가 아닐까 생각한다.

영국의 한 출판사에서 상금을 내걸고 ‘친구’라는 말의 정의를 공모한 적이 있었는데 수천 통이나 되는 응모엽서 중 일등은 ‘친구란 온 세상 사람이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를 찾아오는 그 사람이다.’였다고 한다.

한동안 내가 쓰러져서 재기할 의욕을 잃었을 때 나를 일으켜준 친구가 생각난다. 그때는 그친구의 진심이 내게는 천군만마(千軍萬馬)와도 같았다. 힘들고 어려울 때, 정말 억울한 일이 생겨서 하소연을 하고 싶을 때, 큰 위로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나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위로를 받고 싶을 때, 끝까지 내 말을 경청해주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족하다는 생각이다. 새벽이고 한밤중이고 마음 놓고 전화를 걸 지인 혹은 친구가 있다면 행복해 해도 좋다. 그러나 수많은 지인은 필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한 사람의 진정한 친구이다.

 

소설가 전정희 . 저서 '하얀민들레' '묵호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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