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는 아직도 서툰 감정 아재다.
[에세이] 나는 아직도 서툰 감정 아재다.
  • 황상열 작가
    황상열 작가
  • 승인 2019.08.1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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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40대 아재의 감정일기

14일부터 어제까지 부모님을 모시고 여동생 내외와 오랜만에 가족여행으로 태안 안면도를 다녀왔다. 공휴일인 광복절이 목요일이다 보니 전날 수요일과 다음날 금요일 연차를 써서 오랜만에 길게 휴가를 쓸 수 있었다.

14일 늦게 리조트에 도착하여 안에 있는 수영장에서 아이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는 미리 사온 소고기, 돼지고기로 맛있는 저녁식사를 했다. 다음날 오전에는 썰물 시기에 갯벌로 나가 바지락을 캐는 체험을 하고, 저녁에는 회와 조개구이를 먹었다. 마지막 날아침에는 전날 캤던 바지락으로 매제와 여동생, 어머니가 같이 칼국수를 끓여서 맛있게 먹고, 근처 쥬라기 공원에서 공룡까지 잘 관람했다.

이제 여행도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바로 헤어질지 아니면 늦은 점심을 같이 먹을지 결정을 하기로 했다. 일단 본가 근처에 있는 초밥 레스토랑으로 가기로 했다. 안면도에서 목적지까지 쉬지않고 달리면 2시간 40분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확인했다. 각자의 차로 흩어져서 바로 시동을 걸고 운전을 시작했다.

차가 출발하자 애들은 다 곯아떨어졌고, 아내도 30분 후 잠들었다. 졸리지만 운전을 해야 하는 나는 라디오 볼륨을 조금 높이고 노래도 부르면서 빨리 가려고 속도를 냈다. 목적지를 얼마 안 남긴 순간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휴대폰을 네비게이션으로 쓰고 있다 보니 받을 수 없었다. 자고 있는 아내도 전화를 받지 않자, 10살이 된 첫째 딸에게 어머니는 전화를 했다. 갑자기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른 식당으로 오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그 전화 내용을 듣고, 나도 모르게 어머니께 흥분했다.

“이제 와서 다른 식당으로 오라면 어떡하냐고. 목적지를 바꾸려면 최소한 한 번 상의하고 같이 결정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이들도 초밥이 먹고 싶은데. 갑자기 일방적으로 목적지를 바꾸는 경우가 어디있어요?”

2시간 30분 정도를 피곤하고 졸린 상태서 운전하다 보니 예민해졌나 보다. 사실 다와서 목적지를 바꿀 수 있고, 어머니가 하자고 하면 그냥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하면 되는 것을. 다만 초밥이 먹고 싶은 아내와 아이들의 심정을 외면할 수도 없다 보니 나도 모르게 또 욱했다. 아니면 그냥 웃으면서 이미 정한데가 있으니 거기로 가면 안될까요? 차분하게 말해도 되는데.

좀 당황하신 어머니는 그냥 원래 초밥 레스토랑으로 가기로 했다. 도착해서도 기분이 가라앉지 않은 나는 계속 툴툴거렸다. 사실 3일동안 술도 좀 먹고 아이들을 쫓아다니다 보니 좀 피곤했다. 역시 몸이 피곤하고 졸리기 시작하면 예민해지는 경우가 많아진다.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혼자 또 감정조절을 못해서 짜증내고 흥분했다. 나 하나로 좋았던 여행분위기가 막판에 망친 것 같았다. 또 후회스러웠다. 나이를 먹을 먹었는데, 여전히 감정조절이 서툴다. 늘 일을 벌려놓고, 수습하기 바쁘다. 한번만 더 생각하고 말을 했으면 상황이나 분위기가 그렇게 나쁘게 만들지 않았을 텐데. 다행히도 집에 돌아오면서 부모님과 여동생 내외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렇게 했지만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도 마음이 너무 좋지 않다. 아직도 감정조절을 잘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다. 부모님과 여동생, 아내와 아이들에게 모두 한번 더 죄송하고 미안하다.

“한번만 더 생각하고 말을 하고, 행동하길 바래.”

아버지, 여동생과 아내의 촌철같은 조언이 또 한번 와 닿는 오늘이다. 나는 아직도 서툰 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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