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서 말을 걸러내는 연습
마음에서 말을 걸러내는 연습
  • 박다빈
    박다빈
  • 승인 2019.08.1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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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심을 벗어난 마음은 혀와 입술을 가볍게 만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난 주말의 경험이 그 점을 다시금 일깨워 준 것이다.

기분이 일그러진 상태에서 나는 평소보다 내 기분을 더 많이 표출하고 있었다. 말로써. 보통 때 같으면 보고도 그냥 지나쳤을 것들을 물고 늘어지며, 거기에 대고 불평하는 내가 있었다. 예전처럼 길길이 날뛰거나 다짜고짜 화부터 내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명백히 신경질을 내고 있었다. 그런 나를 통제하기가 어려웠다. 말 한 마디 뱉어 놓고 나면 '안 해도 되었을 말을 했다.' 싶어 하면서도, 나는 누군가의 말에 다시 대꾸를 하고 있었다. 내 의견을 상대에게 관철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좋지 못한 현상이었다. 나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려 하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전부에 가까운 것들에 무심해질 수 있는데. 기분이 헝클어져 버리는 날에는 눈에 드는 많은 것들이 못마땅하게 보인다. 이 세상에 다른 건 있어도 잘못된 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은 있지만, 그 생각보다 더 큰 불만족이 일어나, 나를 내 가치관의 세계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누군가에게 실수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또는 나 자신에게. 기분이 성격보다 커지면, 나는 실수할 수 있다.

숙제 하나를 새로 할 때가 왔나 보다 했다. 마음 숙제 하나가 새로 부여됐나 보다 했다. 그 날 짜증내는 내가 너무나도 선연하게 자각되어, 나는 나 자신의 상태를 1초도 무시할 수 없었다. 당장 무슨 생각이 드는지, 어떤 말을 하고자 하는지, 그래서 어떤 말을 해 버리고 말았는지, 그 모든 게 분명하게 인지되었다. 얼결에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쌓일 만큼 쌓인 이후에, 나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최근에 본 영화 등장인물 가운데 묵언수행(默言修行)을 하는 스님이 있었다. 그 스님 얼굴이 떠오르면서 '나도 묵언수행 비슷한 거라도 좀 할까.' 싶었다. 좋지 않은 기분이 내 혀와 입을 가볍게 만드는 습관을 파악했으니, 내 기분과 내 언어 생활 사이의 연관을 끊고자 하였다. 그러려면 연습이 필요했다. 기분이 어떠하든 입조심하는 연습.

불교에는 세 가지 업보가 있다. 몸으로 짓는 업보, 입으로 짓는 업보, 뜻으로 짓는 업보. 신업(身業), 구업(口業), 의업(意業). 이 세 가지 업보는 10악으로 세분화된다. 입으로 짓는 업보는 '거짓말, 이간질, 험악한 말, 꾸며낸 말'로 분류된다. 몸으로 짓는 업보는 '살생, 도둑질, 바르지 못한 성생활'로 분류되고, 뜻으로 짓는 업보는 '탐욕, 분노, 바르지 못한 견해'로 분류된다. 몸과 뜻으로 짓는 업보는 각 3가지인데, 입으로 짓는 업보는 4가지다. 돌이켜보면, 인간사에서 발생하는 문제 중 많은 것들이 실언(失言)에서 비롯되니, 입조심 잘하는 것이 새삼 중요한 일로 느껴진다.

말이라는 것은 의업과 구업을 함께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뜻이 입을 통해 나오는 것이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묵언수행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보다.

묵언수행은 문자 그대로 침묵하는 수행이다. 말을 하지 않는 동안, 수행자는 자기 내면에 떠오르는 것들을 성찰한다. 그러면서 뜻과 말이 일어나는 자리를 가다듬는다. 뜻이 말로 바뀌기 전에, 그것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볼 줄 아는 능력을 기른다. 하여 해도 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을 구분하여 말하는 법을 익힌다.

뜻과 말 사이의 길을 넓히고 연장시키는 것이 묵언수행인가 싶다. 기분이 구겨지면, 뜻과 말 사이의 길이 좁아지고 단축된다. 머릿속이나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말해 버리기가 쉬워지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내 기분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영역은 내 언어 생활이다.

틈틈이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기분이 평상시 자리를 벗어날 때마다 최대한 말을 아끼며 내 생각을 다시 생각해 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만약 내가 이것을 내뱉어 버린다면, 이 말은 어떤 결과를 몰고 올까.' 가만히 생각해 본다. '이 말을 하고자 하는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물어본다. '이 말을 하려는 것이 나인가, 내 기분인가.' 최대한 분명하게 살펴본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내 과거 곳곳에서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말을 아끼던 사람들이 실은 나를 배려하고 있었음을. 쉽지 않은 연습을 통해, 나와의 관계를 다치지 않게 만들려 했음을. 그때 나는 그들의 인내가 인내인 줄 몰랐다.

말을 하다 마는 사람들에게 남은 말을 마저 해 달라고 조르던 내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끝말을 어물거리는 사람을 채근하지 않았다. 말을 아끼는 사람이 본인과 나를 위해 뭔가를 참아내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부터. 신중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대면하는 경험들이 그 자체로 나를 꾸준히 가르쳐 온 것이다.

나를 만나면서 나를 가르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각자의 전공을 가지고 나를 가르쳤다. 내 깨달음이 어디에서 일어날 것인지 그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 중 대부분은 그들 자신이 나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삶이 삶을 가르치는 일은 많은 순간 그런 식이다. 가르치는 사람은 가르치고 있는 줄 모르고, 배우는 사람은 배웠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들의 가르침은 이슬처럼 서서히 스며들고, 그렇게 이루어진 배움은 살아가는 동안 조금씩 배어나다가 마침내 깨달음으로 꽃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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