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 칼럼 ]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지혜
[전정희 칼럼 ]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지혜
  • 전정희 소설가
    전정희 소설가
  • 승인 2019.08.1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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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末伏)인 오늘은 한낮의 온도가 36℃를 육박했다. 거리는 그야말로 바람 한 점 없이 달아올라 기분 나쁜 열기가 행인들의 불쾌지수를 높였다. 다행히 요즘은 에어컨이 없는 집이 드물고 집을 나와 볼일을 보더라도 차를 타고 이동하며 차에서 내려 잠깐 걸으면 다시 에어컨이 있는 실내로 들어가니 그나마 무더위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말복 더위도 큰 고초 없이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복날은 너무 더워 사람이 지쳐 개처럼 누워 쉰다는 복(伏)을 의미한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진나라 덕공 2년 무더운 여름날 더위에 해충으로 사람과 곡식에 큰 피해가 생기자, 더위를 낮추기 위해 삼복 제사를 지냈다고 전한다. 이후 우리나라도 기후에 맞게 초복, 중복, 말복으로 나누어 삼복을 기해 건강을 챙겼다.

한여름에 맞게 되는 복날은 입술에 묻은 밥알조차 무거울 정도로 입맛과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시기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복날이 되면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지혜로 건강을 지켰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熱(열)은 熱(열)로써 다스림, 즉 같은 것으로 같은 것을 다스려 相殺(상쇄)함’이라고 쓰여 있다.

즉 여름철에는 인체 내외부 간 온도 차이가 심해지므로 우리 몸은 체온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배 속 온도를 계속 낮추어 찬 음식을 먹으면 쉽게 탈이 나는 것이다. 반면 뜨거운 음식을 섭취하면 땀이 나와 피부 온도가 떨어지고 배 속 온도는 올라 체온 균형이 맞춰진다. 따라서 땀을 많이 흘려 체력적으로 소모가 많은 여름에 인삼, 은행, 닭, 대추 등 뜨거운 성질로 구성된 삼계탕 같은 보양식을 만들어 먹으면 더위를 이겨 낼 수 있는 것이다. 무더운 복날에 시원한 냉면이 아니라 뜨거운 삼계탕을 먹어 이열치열로 더위를 이겨낸 조상들의 지혜가 느껴지는데 이 시점에 어머니가 떠오르는 것 무슨 까닭일까?

어렸을 때 어머니는 복날이 되면 삼계탕을 끓여주셨다. 지금처럼 부엌이 현대식이 아니라 마당에서 불을 때서 삼계탕을 끓이셨으니 먹는 가족들은 맛있게 먹었지만 뜨거운 열기 앞에서 온종일 어머니가 느꼈을 고초를 생각하면 지금도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그래도 어머니는 수건을 목에 두르고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닦아내시면서도 싫은 내색 한번 보이신 일이 없었다. 그저 가족들이 맛있게 먹고 여름을 잘 이겨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어머니는 닭다리를 야무지게 뜯어먹는 우리 형제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셨다. 어머니는 초복, 중복, 말복을 한 번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복날이 되면 추석에 송편을 먹고 설날에 떡국을 먹는 것처럼 당연히 보양식을 먹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더 이상 보양식을 만들어 내게 건네는 손길을 사라졌지만 이제는 내가 우리 가족들의 여름 건강을 체크하는 날로 복날을 지키고 있다. 바쁘지 않은 날은 삼계탕을 끓이지만 바쁠 때는 맛있는 갈비나 보양식이 될만한 음식을 사서 먹기도 하는데 덕분에 입맛 없는 여름날 억지로라도 영양가 있는 고단백 식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말복이 지났으니 이제 여름도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어서 빨리 이 더위가 지났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가는 여름이 아쉽기도 하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초복이니 말복이니 하는 절기는 가볍게 치부하고 또 그날이 정확히 무슨 날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삼복은 이제 다 지났지만 더운 여름을 잘 이겨내고 있는 자신을 위해 힘을 내라는 의미로 시원한 수박이라도 잘라 먹으면 어떨까?

 

소설가 전정희 저서' 하얀민들레' '묵호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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