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지에서 생긴 일 2 - 어느 여름날의 동행
피서지에서 생긴 일 2 - 어느 여름날의 동행
  • 송이든
    송이든
  • 승인 2019.08.06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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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피서라는 개념이 우리 집에 존재하지 않았다. 비가 오지 않으면 일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비가 오더라도 집안일이나 부족한 잠을 채우셨다.

부모님과 여행을 간다거나 외식을 한다는 건 그저 우리와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손녀가 생기자 달라지셨다. '여름방학을 했는데 애 데리고 가까운 곳이라도 놀러갔다와야 되지 않을까' 먼저 제안을 하는 아버지.
첨 접하는 그 모습에 낯설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라는 자리가 다른 것인가. 자식과 손녀는 또 다른 것인가.
왜 서운할까. 자식으로서 아버지에게 서운했다. 내색할 수 없었지만 어린 조카를 상대로 질투하는 꼴로 비칠까, 한심하게 여길까 표현하지 못했지만 내게 제공해주지 못한 표현이, 내심 원망스러웠다. 그래 철이 덜 들었다. 자식이 60이라도 부모에게는 철들지 않는 아이같다더니 묘한 감정이 삐져나왔다.
어려서 그렇게 부모님과 여행이나 피서를 갈망했던 나였다. 하지만 제공되지 않았다. 사느라 바빠서,여유가 없어서, 시대가 그래서 많은 것을 이후로 내놓았다. 그것도 먼 훗날 엄마가 하는 변명이나 해명이었다.
그 부분에 대해 아버지는 한 마디도 꺼내 놓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평생 놀 줄 모르는 사람이 먼저 가자고 하는데 그것도 처음으로. 나는 일어서야 했다. 걸어서 10분거리에 검은 모래 해수욕장이 있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이 조금 사그라들고, 땅의 열기가 조금은 내려간 시간대를 골라 오후 4시쯤 움직였다.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서니 아버지가 튜브를 들고 계신다. 아~ 저 모습도 처음 보는 모습이다. 엄마가 무거운 봉지를 몇 개를 들고 있어도 남자가 모양새 빠진다고 손에 무얼 들어주지 않는 분이 아버지시다.
아들내미들이 부엌에 들락거려도 고추 떨어진다고 하시던 분이 내 아버지시다. 그런데 저 얼룩달룩한 어린이 튜브를 들고 계신다. 사랑스러운 연인의 팔짱을 끼듯 튜브를 끼고 있다.
"엄마, 저 사람 내가 아는 아빠 맞아?" 엄마는 내 말을 이해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웃기만 했다. 아빠가 아니라 할아버지다. 할아버지가 된 순간 난 아빠를 잃은 것이었다.
그때 내가 첨 알게 된 사실이 또 하나 있었다. 아버지는 바닷물에 못 들어간다. 바닷물이 몸에 닿으면 짠 염분으로 인해 가려움증으로 고생한다는 것이다. 이건 뭔 알레르기인지. 그럼에도 손녀때문에 오신 것이다.
손녀는 할아버지를 모래사장에 누우라고 한다. 아~ 행복한 표정으로 고분고분하게 누우신다. 저 미소를 난 본 적이 있었나. 저렇게 풍요롭고 자상한 표정의 미소를 내가 본 적이 있나 말이다.
난 지금 어린 조카를 시샘하고 있는 게 아니다. 단지 지금 할아버지라는 사람과 아버지라는 사람을 비교하고 있다.
자식으로서 내가 접하지 못한 것들을 보여주는 아버지의 모습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할아버지를 모래사장에 눕힌 어린 손녀는 할아버지 몸 위로 모래알을 살뜰히 덮었다. 혼자서 모래성을 쌓는 것보다 할아버지를 모래속에 가두는 걸 즐거워 하면서 말이다.
얼굴만 놔두고 발끝까지 다 덮었다. 그리고 어린 손녀는 "할아버지 여기서 자고 있어. 우리 놀다 올게" 라며 얼굴에 햇빛이 닿는 걸 막기 위해 밀짚모자를 덮어주었다.
아버지는 손녀에 의해 온몸이 다 묻혔는데도 세상 달달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할머니랑 놀다와. 할아버지 여기서 한숨 자고 있을게"
내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되면서 변할 것일까. 아니면 자식과 손녀에게 대하는 사랑의 모습이 다른 것일까.
나는 어린 조카의 손을 잡고 바닷물에서 한참동안이나 물장난을 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아버지가 왠 낯선 이들과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갔더니 아버지가 발목을 계속 손으로 주무르고 계셨다. 모래에 덮혀 누워있는 아버지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남자가 아버지의 발목을 밟은 것이다. 밟힌 발목이 아프셨는지 순간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그들은 비명소리에 놀랐던지 괜찮냐고 연신 걱정하는 표정으로 사과를 건네고 있었다. 아버지는 괜찮다고 그들에게 가라고 재촉했고, 그들은 선뜻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나는 괜찮냐고, 병원 안가봐도 되냐구 여쭈었고, 아버지는 "그정도는 아니다. 좀 있으면 나아지겠지!"라며 염려를 거두기를 바랬다.
그날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금 절뚝 거리셨지만 괜찮은 듯 했다. 어린 손녀는 쪼만한 몸집으로 할아버지를 자기가 부축한다고 용썼다. 나참 맘은 알겠지만 할아버지를 부축하는 것이 아니라 더 성가시게 하는 것이었지만 그런 모습이 마냥 행복한 듯 어린 손녀에게 기대는 시늉을 하시며 행복해 하셨다. 정말 바보같은 표정을 내 아버지의 모습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집에 와서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심한 가려움증을 호소하셨고, 너무 긁어 몸이 시뻘겋게 핏방울이 맺혔다. 그만 긁으라고 하셔도 가려움이 좀처럼 참아지지 않는지 효자손이 밤새 아버지 손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그게 아버지와 처음 간 어느 여름날 밤 바닷가에서의 짧은 동행같은 피서였다. 물론 날 위한 동행이 아니었지만 돌아가고 안 계신 지금 내게는 그저 한 여름 밤의 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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