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생각하는 우화] 반딧불이의 슬픔
[전정희의 생각하는 우화] 반딧불이의 슬픔
  • 전정희 소설가
  • 승인 2019.08.0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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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내내 요란하게 울어대던 매미들이 늦털매미만 남기고 모두 입을 다문걸 보니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한풀 꺾였나 봅니다. 대신 각시멧노랑나비와 빨간 고추좀잠자리가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하늘을 여유롭게 날고 있습니다.

“아빠는 왜 이렇게 늦는 것일까?”

반디는 마을 어귀에 시무룩한 얼굴로 앉아 여행을 떠난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반디는 요즘 몹시 우울합니다. 머지않아 정들었던 이곳을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의 병세는 여전히 차도가 없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올 여름은 이사를 가서 나야 한다는 동네 아저씨들의 말을 순순히 따랐으면 좋았을 텐데, 고집을 부린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그러나 반디는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여름방학에 서울에서 놀러온 어린 친구들이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반디네 가족들을 보고 탄성을 지르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올 여름만 이곳에서 나자고 떼를 썼는지도 모릅니다.

몇 해 전만 해도 반디네 동네에는 홍줄노린재와 가락지나비, 장수하늘소 같은 친구들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공기가 탁해서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짐을 꾸릴 때 반디는 얼마나 슬펐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반디네 동네에는 아직까지 많은 친구들이 남아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친구들과 모여 장기자랑도 했습니다. 그 장면을 생각하자 반디의 입가에는 저절로 웃음이 떠오릅니다.

잘난 체 하기 좋아하는 부전나비는 큰 고리 모양의 주황색 무늬가 새겨진 뒷날개를 팔랑이며 자기가 최고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긴꼬리쌕새기는 자신의 몸보다 3배가 더 긴 더듬이를 내밀며 무슨 섭섭한 소리를 하느냐고 부전나비를 나무랐습니다. 가슴의 양 옆에 달린 톱니모양의 돌기가 있는 톱하늘소도 앞으로 나서서 자기가 최고라고 말합니다. 금테비단벌레도 행여 뒤질세라 녹색 광택이 나는 몸과 금속 광택의 테두리가 둘린 날개를 쓱 내보입니다. 그러나 반디는 친구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아무리 친구들이 자신의 자태를 뽐내도 여름밤을 아름답게 수놓는 반디를 따라올 친구는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수천, 아니 수만이 넘는 반디네 식구들이 모여 모두 빛을 발하면 숲속은 불야성을 이룹니다.

할아버지 말씀을 들으면 옛날 길을 잃은 나그네가 반딧불을 보고 하룻밤 묵으려고 찾아왔다가 집은 보이지 않고 숲속에서 영문을 알 수 없는 광채만 나자 도깨비불이 나타났다고 놀라서 줄행랑을 쳤다고 합니다. 또 가난해서 전등을 켤 수 없었던 선비들은 반딧불을 모아서 공부를 했다고도 합니다. 반디가 이 이야기를 꺼내면 깃동잠자리와 노린재, 꽃등에 같은 친구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며 반디를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봅니다. 그럴 때면 반디는 어깨가 절로 으쓱해집니다.

그런데 이제 아빠가 돌아오시면 이 정든 곳을 버리고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야합니다. 새로운 동네는 이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라 반디 혼자서는 찾아올 수 없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은 너무 외져서 반디가 아무리 아름다운 빛을 발해도 탄성을 울리는 꼬마들과 친구들이 없습니다. 반디는 그것이 너무 슬펐습니다. 그래서 올 여름만 이곳에서 나자고 떼를 썼던 것인데 자신의 그 고집이 할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요술방망이가 있어서 반디네 동네를 뒤덮고 있는 나쁜 공기를 몽땅 가져가 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다면 반딧불이는 자연의 등불로 그대로 정든 이곳에 남아 있어도 좋을 텐데요.

반디의 슬픔을 알리없는 실베짱이와 폭날개애매뚜기는 뭐가 그리 좋은지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 반디는 지금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친구들이 부럽습니다. 저 친구들마저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할 텐데, 반디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아무래도 아빠가 너무 늦으시니 조금 더 밖으로 나가 길을 밝혀야겠습니다.

 

소설가 전정희 / 저서 '하얀 민들레' '묵호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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