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 칼럼] 열정(熱情)에 대하여
[전정희 칼럼] 열정(熱情)에 대하여
  • 전정희 소설가
    전정희 소설가
  • 승인 2019.08.0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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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열정을 품고 있다. 물론 열정의 대상은 개개인마다 다 다르다. 한창 사랑에 빠져있는 연인들은 상대방에게 열정을 가지고 있고,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평생을 몰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스포츠에 열정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애완견, 혹은 식물에 열정을 가지고 산다. 이처럼 열정은 무엇에 열중하고 있느냐에 따라 개개인마다 다르고, 상황에 따라 그 종류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열정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은 그 대상이 무엇이냐에 관계없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똑같은 일을 해도 열정이 있는 사람은 일을 빛나게 한다. 열렬한 애정, 열중하는 마음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정을 가진 사람은 그냥 바라만 보아도 흐뭇하다.

뒤돌아보면 한때 사랑의 열병을 앓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다행히 마음에 품은 인연을 자신의 여자, 혹은 남자로 묶어놓은 사람은 그런 대로 살아가지만 끝내 자신의 열정을 감당치 못해 번뇌하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답습하는 사람들은 마치 인생이 끝난 것처럼 불행으로 곤두박질친다. 그 불행의 늪에서 헤엄쳐 나와 새로운 열정의 대상을 찾지 못한다면 아마도 많은 세월을 허송하게 될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열정적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열정은 사람을 들뜨게 하고 때로는 초인적인 힘을 갖게 하는 모양이다.

한 남자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던 남자는 자라면서 시(詩)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게 된다. 남자는 짬짬이 시를 쓰고 읽으며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남자는 이내 벽에 부딪친다. 현실에서 시만 쓰고 살아가는 것은 다른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결국 남자는 주변사람들의 만류로 법대를 지망했고 졸업 후 대기업체에 입사했다. 남자는 적령기에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을 해서 두 아이를 낳았다. 사람들은 그런 남자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남자는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재롱도 시큰둥하고 일을 하는 것도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 아주 소중한 것을 잃고 살아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남자의 가슴은 휑하니 뚫린 채 늘 무성하게 부는 바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는 게 왜 그렇게 어이가 없는지, 도대체 원인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아이가 부탁한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들른 남자는 시집이 꽂힌 서가에서 아주 오래도록 눈을 뗄 수 없었다. 시집을 보는 순간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제야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시를 잊고 산 것이 아니었다. 남자의 가슴속에서 늘 불어오던 허전함은 바로 시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길로 남자는 가슴속에 품었던 열정을 시로 쏟아놓기 시작했다. 어느새 남자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사는 것이 즐거웠다. 덩달아 가족들의 웃음소리도 높아져 갔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남자는 수줍은 얼굴로 출판기념회에 나타난다. 어쭙잖지만 자신의 언어로 쓰여진 시집이 빛을 보는 날이었다. 남자는 이제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가슴이 벅찼다.

그러나 때때로 열정은 사람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열정이 너무 지나치면 집착으로 발전하고 잘못된 집착은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요건을 가지고 있다. 또 잘못된 열정은 집착으로 남아 사람을 황폐하게 만들고 급기야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 존 파울즈의 <콜렉터>나 영화 <미저리>도 지나친 집착으로 상대를 괴롭히는 스토커, 즉 남다른 열정의 소유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근 들어 신문지상이나 텔레비전에서 스토커(stalker)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데도 끈질기게 달라붙어 괴롭히는 행위인 ‘스토킹’, 그와 같은 행위를 하는 사람을 ‘스토커’라 부르는데 비틀즈 멤버였던 존 레넌, 미국 여배우 레베카 셰퍼, 패션 디자이너 지아니 베르사체 등이 스토커에 의해 살해되었다. 또 스웨덴의 4인조 록그룹 아바의 멤버였던 아그네사 폴츠코그가 16세 연하의 네덜란드 출신 스토커에 의해 3년간 괴롭힘을 당해온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34세의 이 청년은 8세 때부터 아그네사에 빠져 그녀가 살고 있는 스톡홀름 근처에 집까지 마련한 채 끈질긴 구애를 해오다가 스토킹을 못 견딘 아그네사의 고소에 의해 체포되었다.

테니스 여왕 마르티나 힝기스도 스토커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힝기스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이 스토커 역시 경찰에 체포되었다. 미녀배우 브룩 실즈의 스토커도 석 달간 권총을 들고 브룩 실즈를 뒤쫓아 다닌 혐의로 체포된 바 있다. 국내 정상급 연예인들도 스토커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 심심치 않게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것을 접할 때가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연예인이나 특정 인물에 집중되었던 스토커가 이제는 대학가, 일반인들에게까지 유행처럼 번지고 있어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주변을 살펴보면 스토커에게 노골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요즈음 대학가에는 스토커에서 파생된 스타커(stocker)도 유행하고 있는데 스타커는 스타킹처럼 꽉 죄고 놓아주지 않는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집요함은 스토커와 같지만 스토커가 좋아서 괴롭히는 거라면 스타커는 싫어서 괴롭힌다는 차이가 있다.

이렇게 잘못된 열정은 아름다운 열정을 추하게 만든다. 상대를 괴롭히는 열정은 차라리 열정을 가지지 않은 것보다 훨씬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지나친 것은 오히려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옛말이 하나도 그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가 전정희 / 저서 '하얀 민들레' '묵호댁'
소설가 전정희 / 저서 '하얀 민들레' '묵호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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