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보다는 방향이 먼저인 날개짓
속도보다는 방향이 먼저인 날개짓
  • 송이든
    송이든
  • 승인 2019.08.0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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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행복한가. 난 꿈꾸었는가.
요즘 생각한다. 내가 꾸었던 꿈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꿈을 위해 세상이 아닌 나를 본 적이 있는가를
내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를
어떤 방향으로 가야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인가를
'뭐가 하고 싶은데, 네가 좋아하는 게 뭔데'라는 질문에 나는 망설이고 또 망설인다.
꿈을 꾸기에는 아직도 시간이 많은데 자꾸 늦었다한다.
나 스스로도 그 속도에 길들여졌는지 자꾸 늦은 감에 어깨가 내려간다.
만져지지않는 것을 만지느라, 느껴지지않는 것을 느끼려 애쓰는지라 축 처진 어깨를 끌고, 시든 얼굴을 매달고 살았다.
속도에 맞추어 사느라 정작 내 자신을 알아갈 여유가 없었다.
꿈을 꾸기만 했을뿐 꿈을 향해 방향을 잡은 기억도 없다.
생존권을 위해 살았지, 추구권을 위해 발을 딛어보지 못했다.
꿈은 자신의 발견에서부터 발을 떼어야 시작되는데 현실과 동떨어진다고, 돈이 되지 않는다고 그냥 꿈에 불과하다 적어두기만 했다.
나자신을 배제하고 타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속도에 맞춰 살아오느라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모르겠다.
허공에 매달려있는 것처럼 붕 떠 있는 공허감이 엄습해오고, 방향을 잃은 나비처럼 퍼덕거리고 있다.
살아간다는 것보다 잘 버틴 나만 보인다.
삶은 잘 살아가는 것이지, 잘 버티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잘 버티는 것이 내게 즐거움일 수는 없지 않은가. 날 만족시킨 삶은 아니지 않은가.
내게 잘 사는 것이란 날 채우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텅 빈 강정이 아니라 알알이 채워진 석류같은 것이다.
양으로 승부해서 풍요로운 삶이 있다면 질로 승부해서 행복한 가치가 있다.
난 그 가치를 속도로 인해 느껴보지 못했다.
고급레스토랑에 앉아 스테이크를 먹는 것보다 작은 동네 식당에서 순두부에 밥 한그릇 뚝딱 비워내는 게 만족스러웠다면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방향일 것이다.
내가 더 웃을 수 있는 방향, 내가 더 가벼운 날개짓을 할 수 있는 그것이, 내가 갈 방향이라는 것.
뜨거운 열정으로 불타던 20대의 나는 살아가는 것에 대해 공격적이었고, 자식을 낳아 키울 때는 나없는 내 인생을 맹목적으로 지켜내느라 한번도 날 위한 꿈의 날개짓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제와 날개짓을 하려고 하니 몸이 참 무겁다. 머리는 거미줄이 쳐저있고, 심장은 빨리 뛰려고 하지 않는다.
회전율이 더딘 머리와 불꽃이 사그라든 가슴을 안고 내게 남아있는 무게를 감당하며 동서남북 나침반위에 나는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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