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일 수 없듯이 너도 나일 수 없었던 거야.
내가 너일 수 없듯이 너도 나일 수 없었던 거야.
  • 송이든
    송이든
  • 승인 2019.08.04 17: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뜻 밖의 모습으로 진짜 감정과 만나게 되었지.
내가 너일 수 없듯이 너도 나일 수 없었던거야.
우리는 각자 자신으로 자신을 안아야 하는 거였어.
똑같은 사람이 아닌데 똑같아지려는 건 서로에게 무거운 부담으로 작용했던거지.
사랑한다는 것으로 모든 것이 똑같아지려고만 했어.
다른 사람으로 만나 다르다는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그 차이를 없애려고만 했다.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거지.
다름과 같음을 적절히 수용하지 못한채 사랑을 만들어갔지.
어느 새 네가 나이기를 원하고, 내가 너이기를 원했던 거지.
원하고 바라는 것이 커져 구멍이 생겼는데, 그 틈을 크게 의식하지 못했다.
같아지기 위한 과정이라고만 생각했지 부작용이라고는 의식하지 못했어.
누가 더 잘했나, 못했나만을 따지기 시작했어. 이때부터지.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지. 그때까지 우리는 우리를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틈을 서로에게 허용하지 못했다.
이렇게 커질 줄 몰랐겠지.
우린 서로에게 너무 기댔어. 힘을 너무 주는 것도 문제지만 감정에 너무 힘을 빼고 있는 것도 문제였지.
힘 조절에서 실패했고, 가까워질수록 채우려는 노력만큼 비우는 과정도 필요하다는 걸 깨닫지 못했지.
감정으로 채우고 이성으로 비워내는 작업이 있어야 했어. 사랑했기에 더 필요했던 건데 우리는 그 반대였지.
감정에서 시작된 불이 삽시간에 우리 빈틈을 연기로 채웠고, 우린 금방 목까지 질식당하기 시작했지.
더 이상의 노력이 필요할까, 더이상 상처내며 감정의 폭등을 겪어야 할까,
내 노력이 벽에 부딪히는 건 그동안의 묵시적 침묵이 긍정보다 부정이 많았기에 회복불가라는 걸 알게 되었지
이성이 마비되었고, 우리의 관계는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저 싸늘하게 식은 체온앞에 이별만이 답이라 여겼다.
그만 아프고 싶어, 그만 하고 싶어 라고 뒷걸음질 쳤다. 그게 마지막 배려이고 예의라 여겨 이별의 그늘에 서버렸지
감정의 영역을 가식적으로나마 최대한 이성의 영역까지 끌고와 <안녕>이라도 내밀고, 그 뜨거운 무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린 먼 훗날 감정이 가라앉고 이성을 가까이 품고나서야 알았지.
배려보다는 소유로 집착하고 있었고, 사랑을 잘못 했다는 걸 느꼈지.
상대를 바꾸려고만 노력했지, 정작 나 자신의 흠을 들여다보지 못한거야.
너의 흠만 보고, 내게 발 맞추어주지 않는 그 걸음에 욕심부리고 있었다.
타인으로 만나 관계를 유지함에 있어 서로의 차이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면 폭력만 남게 된다는 걸 너로 인해 알게 되었다.
문득, 남의 사연에 내 기억속 이별이 떠올랐고, 그 이별이 날 성숙하게 만들었다를 느꼈다.
사랑이나 이별로 인한 경험이 날 한층 성장하게 한 건 맞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남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별이 꼭 슬프지만은 않다.
사랑만큼 이별도 잘해야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파이낸스투데이는 칼럼니스트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하는 전문적인 정보를 자유로운 형식으로 표현하는 '블로그칼럼'을 서비스합니다. 블로그칼럼은 세상의 모든 영역의 다양한 주제에 대한 글들로 구성되며,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새로운 스타일의 칼럼입니다. 칼럼 송고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gold@fntoday.co.kr 로 문의해 주세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