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 칼럼]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사회
[전정희 칼럼]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사회
  • 전정희 소설가
  • 승인 2019.08.05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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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을 운영하고 있을 때였다. 학원은 널찍하고 좋았는데 주차장 들어가는 입구가 다소 좁은 편이어서 입구에는 차를 주차하지 않는 것이 그 건물에 입주한 사람들의 불문율이었다. 그런데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늘 1.5톤 트럭이 세워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트럭 옆에는 일부러 달아놓은 날카로운 못이 죽 박혀 있었다. 처음에 멋모르고 운전을 하다가 오른쪽 뒷문이 긁힌 이후로 나는 트럭을 보면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트럭운전만 15년을 했다는 트럭 주인은 교묘하게 차를 주차해 놓았다. 차를 주차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기왕 주차할 바에야 트럭을 조금만 더 벽 쪽으로 붙여놓는다면 다른 차들이 수월하게 주차장을 드나들 수 있을 텐데 가뜩이나 좁은 입구를 벽에서 뚝 떨어져 주차를 해 놓는 것이다. 게다가 골목 끝은 ㄱ자로 꺾여 있어서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영락없이 차가 긁히게 되어 있었다.

그날도 나는 한숨을 내쉬며 서서히 차를 몰아 주차장 입구로 들어섰다. 트럭을 지난 뒤 끝부분에서 각도를 가늠한 후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운전을 해야만 몇 미리 간격으로 겨우 차가 지나갈 수 있었다. 정말 짜증스러운 출근길이었다. 잠시 간격을 보고 있는 사이 그새 뒤에 차가 하나 붙어 있었다. 백미러를 보니 언젠가 차를 빨리 빼주지 않아 다툰 적이 있는 507호 남자였다.

어느 날, 급한 볼일이 생겨 주차장으로 갔더니 507호 남자의 차가 어정쩡하게 세워져 있어 차를 뺄 수가 없었다. 나는 507호에 전화를 걸던지 아니면 관리실에 인터폰을 부탁하려고 뒤돌아섰다. 마침 그때 한 남자가 주차장으로 들어서더니 문제의 차 트렁크를 열고는 상자 하나를 꺼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차를 좀 빼달라고 말했다. 남자는 급한 듯 금방 오겠다며 사무실로 뛰어 들어갔다. 나는 상자를 가져다주는 일이 매우 급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제나저제나 507호 남자가 다시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5분이 지나고 10여분이 지나도록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관리실로 찾아가 차 번호 주인을 물어 507호로 찾아갔다. 그런데 노크를 하고 문을 연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507호 사람들은 원탁으로 된 탁자에 빙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차를 빼달라고 부탁했던 남자는 탁자 가운데 놓인 찌개를 숟가락으로 떠서 입안으로 넣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남자는 너무도 태연하게 ‘이제 한 숟가락 남았어요, 지금 나가요.’ 하고는 찌개 그릇 속으로 다시 숟가락을 밀어 넣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말했다.

“아니 도대체 차를 빼달라고 말한 지가 언젠데 밥을 먹고 있는 거예요?”

그제야 남자는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데 내가 운전을 못해서 못 나가는 것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손에 들은 밥그릇은 여전히 놓지 않은 채였다. 나는 운전을 못해서 그 상황에서는 도저히 차를 뺄 수가 없으니 당신이 한번 해보라고 했다. 사태가 험악해질 기미가 보이자 남자의 동료가 자신은 밥을 다 먹었으니 대신 차를 빼주겠다며 남자의 키를 받아 내 뒤를 따라 내려왔다. 나를 따라 내려오는 남자의 얼굴에도 미안한 내색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직접 내려와서 보고는 그 상황에서는 누구도 차를 빼낼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는지 혀를 끌끌 찼다.

“아니, 차를 왜 이렇게 삐딱하게 세워놨지? 미안해요.”

남자는 손쉽게 차를 빼주었다. 생각해보면 아주 작은 일이지만 나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정말 화가 치밀어서 운전대를 잡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세상에는 왜 그리 부당한 일들이 많은지, 어째서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의문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주차장에 차를 빼러 가다가 트럭주인이 트럭주위를 살피며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사람들이 말이지 양심이 없어, 허구헌날 백미러를 떨어뜨리더니 이젠 그것도 부족해서 트럭을 돌아가면서 못으로 긁어놔?”

트럭 주인은 오가는 모든 사람이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나는 트럭 주인이 ‘양심’이라는 단어를 쓴 것에 놀라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트럭 주인은 정말 분해서 못 참겠다는 듯 트럭을 여기저기 살피다가 다시 언성을 높였다.

“어떤 놈인지 내 손에 한번 걸리기만 해봐라, 내가 몇 배는 갚아줄 테니.”

요컨대 트럭 주인은 주차장을 이용하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자기 차에 해코지를 하니 자기가 심술을 안 부릴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이치와 같은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트럭에 긁힌 차는 내차만이 아니었다. 주차장을 드나드는 많은 차들이 조금만 방심을 하면 차에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인지 트럭은 백미러가 떨어져 있는 날이 많았다. 트럭에 긁힌 자가용 운전자들이 트럭의 백미러를 일부러 쳐서 떨어뜨리기도 하고 트럭 옆에 박혀 있는 못을 구부려도 놓지만 그런 일이 생긴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모두들 골탕을 먹었다. 그러나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는 뱁새를 찾아가 정식으로 항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법, 결국 나는 얼마가지 않아 학원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러나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면 사람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에 진저리가 쳐진다.

사회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것을 사회 규범이라고 한다. 사회 규범에는 도덕 규범, 관습 규범, 법 규범 등이 있으나 이 중 사회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법 규범과 도덕 규범이다. 법 규범은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하여 국가가 제정하고 강제로 실시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내용은 도덕 규범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리고 도덕 규범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양심에 관계된 것으로, 법 규범과 달리 자율적으로 지키도록 한다. 즉 도덕 규범을 어기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사회적인 비난을 받지만, 법 규범을 어기면 처벌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도덕 규범 중 주차는 아주 사소한 문제이나 우리 사회에는 서로를 배려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가 비일비재하다. 작게는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 불법 주․정차 안하기, 공공장소에서 담배 피우지 않기, 무단횡단 하지 않기, 공공장소에서 소란 피우지 않기,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하지 않기 등등.

이처럼 기초 질서 지키기는 단순히 개인의 양심이나 예의의 차원을 떠나서, 서로가 반드시 지켜야할 아주 기본적인 규범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지키면 좋고 안 지켜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으로 모두가 인식했으면 좋겠다. 항상 나 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며 살아간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밝고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소설가 전정희 / 저서 '하얀민들레' '묵호댁'
소설가 전정희 / 저서 '하얀민들레' '묵호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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