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바다가 내어준 풍경, 그때가 행복이었다.
제주바다가 내어준 풍경, 그때가 행복이었다.
  • 송이든
    송이든
  • 승인 2019.08.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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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속에 살다보니 숨막힘이 자주 덤빈다.
답답할 때가 너무 많다. 미세먼지로 인해 창문을 열기도 두렵고, 창문으로 보이는 세상은 건물로 다 막혀있다.
고향 바닷가 그 곳이 낭만이었고, 위안이고 행복한 걸음이었다는 뼈저리게 느낀다.
지금은 뚜벅뚜벅 걸어 편히 마주할 풍경도 정경도 바다내음도 파도소리도 없다.
모든 것이 너무 멀리 있다.
빌딩사이로 자동차 지나다니는 소음소리만 시끄럽게 깔려있고, 등대 아닌 간판 레온싸인이 눈을 피곤하게 만들고, 공원이라해봐야 그저 몇 그루의 나무와 인위적인 벤치만 놓여있다. 낭만도 없고 풍경도 별볼일 없다.
내 푸르고 붉은 청춘이 머물던 곳은 제주도였다.
집 근처에 최고의 풍경이 있었다. 내 방 작은 창문으로도 바다를 다 담을 수 있었다.
걸어서 2~3분 거리에 방파제가 있고, 등대가 있었다.
남들은 여행지로 맘먹고 들어서는 품이지만 나는 숨쉬는 것처럼 그 풍경과 그 공간들을 찾았다. 눈만 뜨면 보이는 그 푸른 바다가 평상복처럼 걸쳐 있었다.
그땐 그저 당연하다 생각했다. 얼마나 큰 위로가 되어주는 풍경이었는지, 또 얼마나 뜨거운 입김이었는지 그땐 정말 몰랐다.
떠나봐야 안다더니.
내가 품었던 그곳이 그냥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매일 차려주는 엄마의 밥상이 왜 그리 그리워지는지 고향의 품을 떠나봐야 아는 것처럼.
객지생활로 지쳐 향수병을 앓는 사람처럼 그 풍경이 그립고 그리웠다.
저녁무렵이면 동네 산책하듯 방파제를 향했다. 탁트인 바다를 향해 뻗어있는 그 길 끝에 걸터앉아 바다 위에서 나는 모든 소리에 귀를 열었다.
바다와 최대한 밀착시키고 철썩거리는 파도소리와 바닷바람을 맞으며 지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이 보다 좋은 사운드는 없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작품은 없다. 모든 피로가 다 풀리고 복잡한 감정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사색하는 걸 즐기는 내게 바다는 최적의 공간을 내주고, 천천히 내 삶을 적셨다.
자연이 내주는 색으로 온 몸이 도배되는 밤을 이렇게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행복이었다.
여름이면 더위를 피해 돗자리를 깔고 하늘을 마주하고 누워 있는 사람들로 붐비고, 고기가 잡히는지 마는지 낚시대 던져놓고 세월을 건지는 사람들,등대가 있는 공터에는 여행객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기타를 치며 낭만을 즐기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기타소리에 나를 맡긴다. 음악은 낯선 사람들도 금방 가깝게 맺어주는 마력을 지녔다.
고깃배들이 만선으로 돌아올 새벽이면 은갈치가 은빛자태를 뽑내며 유혹했다.
친구와 다툰 날, 부모님에게 혼난 날, 사랑으로 가슴이 충만한 날, 시련으로 멍이 들고 우울한 날, 쓸쓸하고 외로운 날,
그 모든 날 나는 그곳에 가서 위로를 얻고, 불만을 쏟고, 감정을 토해냈다. 어느 날은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관계로 어지러운 날이면 그 실타래를 풀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 마음을 다스리기도 했다.
바다에 조명을 켜듯 등대불빛이 움직이고,바다 가운데에서는 불을 켠 고기잡이 어선이 바다 밑을 깨우고, 붉게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과 엎지락뒤치락 거품 물고 달려드는 파도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맑아지기까지 했다.
바다는 항상 내 방황의 끝에 있었고, 내 불안한 미래를 안았고, 내 그 울퉁불퉁한 청춘에 사계절처럼 존재했다.
친구들과 밤새 불 피우며 고민상담하고 새우깡에 맥주 마시며 보낸 밤들, 제주 바다가 내어준 그 품에서 참 즐겁고 행복했다.
이렇게 걷던 내 고향 제주의 밤은 나의 젊음 한가운데, 나의 여름한가운데에 있었다.
그 바닷가에서 등대 불빛을 따라 걷던 그 길이 내게 참 소소하면서 평온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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