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 사람은 이해하고 싶을까
왜 그 사람은 이해하고 싶을까
  • 박다빈
    박다빈
  • 승인 2019.07.3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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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정말 용납할 수 없는 일. 그런 일을 행하는 사람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 나는 내가 목격한 것에서 내 마음을 최대한 물리곤 했습니다. 마음만 물리나요. 몸도 물렸습니다. 그건 들여다볼 필요도 없고, 고민하거나 갈등할 필요도 없고, 이해할 필요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내 인생관, 가치관에서 너무 벗어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몇 날을 고려해 봐도, 그건 나에게 '아닌 것'으로 판명될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목격하는 즉시 거기에서 관심을 껐습니다. 관심 쏟아 봤자, 언젠가는 거기서 돌아서서 멀어질 게 뻔하니까요. 괜한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 말고, 내 갈 길 열심히 가자 싶었습니다.

물론 나도 사람인데, 사람인 내가 누굴 어떻게 판단하나요. 나에게 '아닌 것'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 자체가 못 쓸 사람 되는 건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가진 도덕과 윤리는 언제나 주관적인 도덕과 윤리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인생 위를 걸으며 살아가는 사람이지, 절대적인 법칙 위를 걸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니고 살아가는 원칙은 나를 타인보다 우월하게 만들어 주는 원칙이 아닙니다. 아니어야 합니다. 내 개인적인 원칙은 내가 좀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해 스스로 세운 원칙일 뿐입니다. 내 원칙은 언제나 나만의 원칙이어야 하고, 그것은 내 인생에만 적용되어야 합니다.

만일 내가 그 경각심을 잊어버리면요. 외면하면요. 나는 내 원칙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삿대질을 시작할 것입니다. 내 원칙을 기준점 삼으며, 괜찮은 사람과 안 괜찮은 사람을 함부로 나눌 것입니다. 그러면서 끝없이 교만해질 것입니다.

교만해지는 데서 오는 기이한 쾌감은 엄청난 중독을 일으킵니다. 그 중독을 제때 해결하지 않으면, 나는 고립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자만에 빠져 혼자 고립될 것이고, 나중에는 세상에서 철저하게 고립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 원칙에 위배되는 상황을 만날 때마다, 마음의 뺨을 자꾸 두드립니다. 엉뚱한 짓하지 말자고. 아닌 것은 그냥 지나가면 된다고. 나에게 아닌 것은 나에게만 아닌 것이라고. 내 견해에 절대성을 부여하면 결국 망가지는 건 나 하나라고.

그런데 어느 때는 어떤 사람을 기어코 이해하고 싶습니다. 분명 그 사람이 한 일은 내 기준에서 '아닌 것'인데요. 나는 그 사람을 무심히 지나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내 원칙이 머무는 자리와 너무 먼 곳에서 움직이는 사람인데요. 나는 그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 합니다. 그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서 머리를 싸맵니다. 평상심을 잃고 헤맵니다.

내가 뭐에 홀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내 인생 결이 바뀌는 시점에 도달해서 그런 건지, 나는 모릅니다. 한 번씩 그런 고집을 부리게 됩니다. 내가 단 한 번도 작심해 본 적 없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근거 없는 동질감을 느끼는 나 자신에게 당혹감을 느끼면서요.

원래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일을 뿌리까지 파고들며, 그 일의 원인과 그 일을 둘러싼 마음을 헤아려 보는 나는 누구일까요. 그게 누구이든, 그 헤아림의 주체는 결국 내 원칙의 폭을 넓힙니다. '절대 안 될 일'이 '그럴 만한 일'로 돌변되는 순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내 원칙 밖의 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계속 그 일 없이 살겠지만, 그 일을 하는 사람을 내 인생에서 배제하지도 않습니다. 내 원칙과 다른 원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마음 담은 눈길과 진심을 주는 것입니다. 못 본 척 지나치지 않구요. 그러면서도 기분이 찝찝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나와 반드시 헤어질 사람 보듯 그 사람을 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어디서 뭘 하든, 그 사람과 내 관계의 근본이 훼손되지 않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계속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가진 원칙을 상관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번씩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내가 가진 원칙의 폭이 꾸준히 확장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는 의미를 지닌 말입니다. 옳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을 가까이하면, 그 사람에게 물들기 쉽다는 의미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나는 그 말이 언제나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 기준에 옳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과는 되도록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사람을 미워해서 그를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는 그런 사람에게 무감각하면서 그를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피해 다니지 않습니다. 내 기준에 옳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과 오래 함께 지내도 내 가치관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내 가치관이 어느 정도 견고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내 가치관과 너무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이들의 인생이 진심으로 궁금했습니다. 그들을 알고 싶었습니다. 비록 그들은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지만, 그 다름에 구애 받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내 가치관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고 났더니, 비로소 사람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항상 내 가치관과 비교되면서 보이던 사람들이 그들 그 자체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다름을 인정한다는 게 얼마나 많은 단계를 가지고 있는 오랜 여정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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