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덕의 등산재구성]가야산 해인사, 1960년대 관광기념 사진첩 리스트입니다.
[김진덕의 등산재구성]가야산 해인사, 1960년대 관광기념 사진첩 리스트입니다.
  • 김진덕
    김진덕
  • 승인 2019.07.3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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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기념 사진첩은 1960년대 초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60년대 판본들의 존재 유무와 종수(種數)는 해당 명승지가 1960년대에 어떤 위상을 차지했는지를 알려줄 시금석 노릇을 하게 된다.

아래는 가야산 해인사를 담은 1960년대 관광기념 사진첩 리스트 9권이다. 표지를 통해서 당시 해인사에 대해 여러 상념을 품게 된다.

고적앨범, 해인사라는 '음각'된 글씨가 장중한데, 음각될 수 있는 까닭은 당시 장정 방식이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70년대부터는 달라진다. 사진에다 비닐을 씌우게 되는데, 깊이가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표지 안에는 합판을 넣고 종이를 붙여 만들었다.

이 사이즈로 만드는 건 사실 일제 때의 유습이고 합판을 넣는 것은 더 멀리 그리도 더 오래 전으로 올라가게 된다. 이렇게 코덱스(Codex)형식의 책표지에 나무판을 넣어 형태를 유지하는 건 유럽 중세시대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그게 일본을 거쳐 한국까지 이어지게 된 거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말이다.

역시 초기 판본.

사진 한장 한장마다 미농지라던가 앏은 반투명 종이가 있다. 예전 박정희 어록의 책 앞에 있는 박정희 사진을 같은 식으로 처리한 걸 기억할 이 많을 것이다.

이 방식은....그런데,

속리산, 제주도 경주 등 당시 '일타' 명승지에서 모두 보인다.

60년대 최고 스타들은 그래서 경주, 제주, 속리산 그리고 해인사 등 일제 때부터 이어져 온 전통적인 명승지 그리고 설악산과 같은 전후 새롭게 뜨오른 신흥 강자로 양분되어 있었다.

이 사진첩은 사이즈가 다른 것보다 조금 더 크다. 일제 때 억수로 쏟아져 나온 금강산 사진첩에서 흔히 보이는 사이즈이다.

1961년 5월 5일 합천 해인사 탐승기념이라고 적혀 있다. 언제 발행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간기 역할을 해주어 감사.

해인사 여행기념.

여기에 있는 이 비석은 누구일까. 그때는 지금과 달리 팔만대장경이 얼굴 노릇을 하지 못했다.

사진첩 중에서 제일 중요한 사진 중 하나. 1960년대 해인사 동구에는 이렇게 관광객들을 받아들일 공간이 조성되어 있었다.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이나 여행객들은 저 곳에서 홍류동 맑은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었다.

해인사의 상징은 뭐니뭐니해도 일주문이었다. 전국에 사찰이 그리 많다해도 일주문은 곧 해인사였다. 어떤 연유로 이렇게 자리잡았는지 궁금하다.

지금이라면? 팔만대장경쯤 될까.

역시 일주문.

60년대에는 표지에 여러가지가 경합하다가 70년대 넘어서서는 일주문으로 거의 통일된다.

이런 책자들의 제작처는 서울 대전 그리고 대구였다. 해인사를 접근하는 교통로의 하나도 대구였다.

이렇게 장중하게 커버도 있는 것도 있었다.

한자의 글씨체의 현란함을 보시라.

지금 우리가 결코 재생할 수 없다. 마치 고려청자가 그러하듯...

짐작으로는 60년대 발행된 기념첩이 2,30여권 되지 않을까. 긴호흡으로 한권씩 모으다보면 팔부능선은 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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