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등산 같지 않아도
인생이 등산 같지 않아도
  • 박다빈
    박다빈
  • 승인 2019.08.0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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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산 밑으로 내려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산에는 분명한 정상이 있고, 오르막만큼의 내리막이 있다. 삶이 자주 등산에 비유되는데, 사실 삶은 등산보다 훨씬 복잡하다. 등산도 그리 간단한 행위는 아니지만, 삶에 비할까.

나는 삶이 등산 같기를 바라면서 오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삶은 등산 같지 않은데. 삶의 본질적인 형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내 삶과 수시로 불화하였다. '왜 인생은 저러지를 못하고 이렇게밖에 안 되나.' 그런 생각이 나를 화나게 했다. 간혹 나는 억울함도 느꼈다. 인생이 내 기대 같지 않아서. 인생은 원래 그대로고, 인생에 대한 내 태도만 바뀌었을 뿐인데. 인생이 나에게 뭘 한 게 아닌데. 나는 뭔가에 호되게 당한 것처럼 억울해했다.

우리가 산을 오를 때는 총 몇 km를 걸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등산로 입구 표지판 앞에 서서, 우리가 걸어야 하는 거리를 계산해 보면 된다. 표지판이 없으면, 핸드폰으로 검색해 봐도 된다. 자신이 걸어야 하는 거리를. 그 거리를 걷는 동안 소모되는 칼로리까지 검색할 수 있다. 그게 대충 얼마나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등산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등산로를 선택해, 그 길을 걸을 수 있다. 등산 난이도 조절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인생에서 우리는 우리가 총 몇 년을 살아갈 수 있는지 모른다. 자기 수명을 100년으로 가정했을 때, 오르막과 내리막 비율이 1:1이라는 보장도 없다. 인생 난이도 조절도 불가능하다. 1초 앞도 내다볼 수가 없다. 한때는 그 사실이 나에게 비극이고 형벌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인생은 더 이상 비극과 형벌이 아니다. 내가 인생이라는 것을 내 마음대로 통제하려고 악을 썼을 때, 내 인생은 고약한 비극이었지만. 내가 인생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간의 불투명한 막을 손바닥으로 힘껏 닦던 때, 내 인생은 산맥 같은 짐이었지만. 나는 인생에 규칙이 잡혀 있어야 한다는 억지를 마침내 버렸다. 인생의 설계도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도망쳤다. 인생의 목덜미를 쥐고 그것을 이리저리 끌고 다녀야 한다는 욕망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자유로워졌다.

그 자유가 모든 어려움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준 건 아니다. 내 인생으로는 여전히 수많은 언덕들이 유입되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넘어야 한다. 피할 곳이 없다. 끝을 알 수 없는 오르막길을 걸어야 하는 순간도 여전히 존재한다. 인생, 쉽지 않다. 아직도.

그런데 '그게 뭐?' 하는 생각이 있다. 어느 날 그런 생각이 생겼다. 인생이 쉽지 않다고 내가 불행해져야 하나. 인생이 고꾸라질 때마다 내가 불행해져야 하나. 내가 겪는 고난의 크기만큼 내가 불행해져야 하나. 왜? 누굴 위해서?

어려운 건 어렵게 해 나가면 되지, 굳이 그거 때문에 내가 내 일상을 어두운 흑백으로 만들어야 하나. 인생 그 자체가 나를 절망시키는 게 아니라, 인생이 대체로 쉬웠으면 했던 내 바람이 나를 절망시키는 건데.

그 어떤 순간에도 행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을 지금은 믿는다. 눈앞의 현실에 내 마음을 수동적으로 동화시키지 않고, 내 마음을 내가 원하는 상태로 만드는 삶. 일상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고통에 잡아먹히지 않고, 나머지 일상 속에서 행복을 누리는 삶.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행복을 지켜내는 삶.

좋은 마음 하나 가지고 있는 게 뭐 대수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그동안 꽤 많이 만났다. 좋은 마음, 그 까짓 게 대체 뭘 할 수 있냐고 말하는 사람들. 나는 마음 그 자체가 무슨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안에 고여 있는 마음을 바라보고 그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 마음이 아니라 사람이 무슨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하는 일은 존재하는 것뿐이다. 인생을 바꾸는 건 좋은 마음이 아니라, 좋은 마음의 존재를 발견하고 거기서 나오는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기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음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힘이 잠재되어 있다. 그 힘을 발현시키는 건, 그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사람의 의지와 선택. 마음 혼자서는 그 안에 있는 힘을 발현시킬 수 없다. 나 아니면 누구도 내 마음의 힘을 발현시킬 수 없다. 거기에 아무리 엄청난 힘이 잠재되어 있다 해도, 마음이 쓰이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런 힘도 발산하지 못한다. 마음이 암만 굴뚝같아도, 그 굴뚝같은 마음 꺼내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는 멀리 있지 않은 것 같다. 선택되지 않은 행복은 행복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실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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