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피서지- 마당있는 집
추억의 피서지- 마당있는 집
  • 송이든
    송이든
  • 승인 2019.07.31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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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마당에는 아버지가 뚝딱 만들어 놓은 평상이 있었다.

평상 네 모서리에 긴 막대기로 기둥을 세우고, 그 네 개의 기둥 위로 철사들을 엮어 천장을 만들고, 그 천장과 막대기에는 포도넝쿨이 아름드리 드리워졌다.

무성하게 자란 포도덩쿨이 나무의 자취를 다 덮어버릴 정도로 건강미를 뽐냈다.

포도넝쿨이 따가운 햇살을 다 가려 그늘을 만들어냈다. 평상에 누우면 아직 다 익지 않은 청포도가 탐스럽게 주렁주렁 열려있고, 떨어지지도 않는 포도송이를 입 벌리고 받아먹는 시늉을 했다. 평상 밑으로는 누런 누렁이가 축 늘어진 혀를 길게 내놓고 헥헥거리고, 평상 앞에는 수돗가가 놓여있었다.

수도꼭지 아래는 한방울의 물도 흘러 하수구로 내려갈 수 없게 시멘트를 발라 만들어놓은 지금의욕조같은 걸 만들어 놓았다. 수도꼭지를 제대로 잠그지 않아 졸졸 새는 물도 다 받아내고, 여름이면 동생들과 들어가 물장난을 하는 미니 수영장 같은 곳이었다. 김장철이면 100포기가 넘는 배추를 절여놓기도 하고, 물이 안나올때는 그 통에 가득 물을 받아놓으면 물 없어 밥을 못짓고 할 걱정따윈 먼나라 이야기일뿐이다. 여름이면 우리의 간이 수영장이 되어 두 세명이 들어가 장난치고 놀기에 좋았고, 겨울이면 꽁꽁 얼어있는 얼음통이 되었다.

더운 여름, 마당있는 우리 집이 피서지였다. 그 속에서 같이 보낸 가족들과의 시간이 더할나위없풍요로웠다.

계곡물처럼 시원한 지하수를 담아놓은 수돗가 수영장에서 동생들과 신나게 물장난하고 놀다보면 한 여름인데도 이가 서로 부딪히고 떨렸다. 요즘처럼 옥상에서 뜨겁게 데워진 물탱크 물이 아니었다. 지하수물이라 얼마나 차가웠는지 모른다.

수독꼭지를 틀어막고 여기저기 튀는 물로 장난을 쳐도 옷이 젖는다 야단도 치지 않고 웃어주는 넉넉한 부모님이 있었다.

물에 들어가 놀 수 없었던 아버지는 세수대야에 물을 받아다 발을 담그셨다.

발을 담근채 물놀이하는 자식들을 보며 “고넘들 시원하겠다”, “좋을때다!” 흐뭇하게 던졌다.

난 어려서 아버지가 물놀이하는 우리를 굉장히 부러워했던 것으로 보였다.

물받이 통은 물 빠지는 구멍이 없어 어머니는 그 통 안에 든 물을 바가지로 퍼서 사용했다. 우리가 첨벙첨벙 들어가 논 물도 버리지 않고 빨래를 하고 여름 햇빛에 타들어가는 마당에 물을 뿌리기도 하셨다.

한창 물놀이하고 있으면 어머니는 시원한 수박 한통을 들고 나오신다.

수박을 칼로 반으로 나누어, 반통은 삼각형 모양으로 조각조각 자르고, 나머지

반통은 수저로 파서 수박덩어리들 위로 하얀 설탕을 쏟아부었다.

어릴 때 먹던 수박들은 따로 설탕을 들이붓지 않아도 당도가 꽤 높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얼음을 넣고 설탕을 부어 놓으면 수박이 더 빛깔이 좋고 먹음직스럽게 느껴졌다.

우리 모두 설탕 부어놓은 것만 먹으려고 전투적으로 덤볐다.

평상 밑에서 축 늘어져 헥헥거리는 누렁이도 먹는 소리에 몸을 일으켜 세운다.

난 수박 한 조각을 일부러 흘린 것처럼 떨어트려주었다. 어머니는 개미가 꼬인다고 그런 내모습을 꾸짖었지만 누렁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평상에 누워있으면 눈꺼풀이 사르륵 내려앉고 낮잠에 빠져든다. 선풍기가 없어도 그늘에 누워 자연이 주는 바람으로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더위였다.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수돗가 커다란 물받이 통과 포도덩굴이 드리워진 평상과 수박 한통을 나누어 먹던 동생들과 부채질을 해주던 어머니가 있던 그 마당있는 집이 내게는 계곡보다 놀이동산보다 더 행복한 피서지였다.

이 평화로운 풍경이 이제 너무 먼 고전영화처럼 빛바랜 사진같다.

추억은 그때 먹던 수박처럼 달달한데, 시간은 우리를 늙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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