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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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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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2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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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몇 달

만성질환은 어떤 사람에겐 엄청난 난관이고, 어떤 사람에겐 그저 삶의 한 단면 일 뿐이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는 정신력과 체력, 교육과 소득, 성별과 성 정체성, 나이, 직업, 종교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개인의 자산가치도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 정도에 영향을 미친다.

죽어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괴롭고 험난하다. 옛 자아가 사라지고 새로운 자아가 등장한다. 우리는 진단을 받음과 동시에 비탄에 빠져든다. “왜 나야? 왜 하필 나야?”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면 암울한 현실 속에서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 첫 번째 과제이자 가장 힘든 과제는 만사가 예전 같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랜 투병 생활에서 겪는 피로는 단순히 피곤한 상태, 수면 부족과는 다르다. 상당히 진행된 질병에서 비롯된 피로는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심각한 피로는 사람의 생기를 빼앗고 완전히 탈진된 상태이다. 그럴땐 가벼운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된다. 자꾸 움직이다보면 기력이 생기기도 한다.

통증, 많은 이가 통증을 두려워하는데, 그런 두려움은 현실적이지 않다. 통증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아픈 것이다. 본인 외에 알 수 없기에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통증 시에는 명상과 시각화, 가벼운 운동을 정기적으로 하는 것도 통증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마약성 진통제의 부작용이 무섭다고 멀리할 이유도 전혀 없다. 오늘날 다양한 형태의 중증 질환자에게 두루 처방되고 잇다. 암과 뼈질환, 장기부전 등으로 인한 통증을 다스리는데 유용한다. 제대로 처방하면 매우 안전한 약물이다.

“중독될까봐 두렵습니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사람들이 정성적 효과를 위해 약물을 사용한다면 중독될 수 있다. 하지만 진통제를 원래 의도 되로 즉, 통증을 다스릴 용도로 사용한다면 당신은 중독자가 아니다. 또한 임종을 앞둔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람은 무력감을 느끼거나 삶의 목표를 상실하거나 정신적 고뇌를 이기지 못하면 의기소침해진다. 딱히 우울하지 않아도, 심지어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도 축 처질 수 있지만 이런 순간은 거뜬히 이겨 낼 수 있다. 반면, 회복 불가능한 질병 때문에 기력이 쇠하면 환자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 못한다. 그들은 피할 수 없는 미래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이는 우울증이 아니다. 암담한 현실에 대한 냉혹한 판단이기 때문이다.

: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면 질병으로 인해 체력이 소진되어 탈진, 피로, 통증은 죽음을 앞 둔 사람이 겪어야 하는 단계인 듯 하다. 병실에서 아무런 힘없이 구역질과 구토로 인해 음식을 삼키지 못하는 모습들.... 먹을 수 없어 종합영양제랑 수액, 항생제들이 감나무에 감 열리 듯이 주렁 주렁 달려 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먹을 수 있다면 조금씩이라도 삼키고 먹으려고 해야한다. 아프다고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기력이 떨어지고 몸에 근력이 점점 떨어져... 나중에는 걸을 수 조차없다. 그 후에 찾아오는 욕창들....

건강할 때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어디로 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침대 위에서 한 발자욱도 움직일 수 없다. 아니 대소변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의 그 마음이 힘들다. 힘든 상황들을 조용히 받아들여야하는 비참함도 있을 것 같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과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의기소침해지고 말이 없어지는 것 같다.

통증에 대한 오해. 우리는 아픈 것을 조금만 못참아도 그것도 못 참느냐고 핀잔을 주곤 했다. 하지만 통증은 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통증은 본인 판단하는 것이다. 통증에 대한 감수성이 사람들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원에서 통증사정측도라는 것이 있어 그것을 기준으로 측정하여 진통제를 투여한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마약성 중독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여러 곳에서 보여지는 마약이라는 말에 제일 먼저 거부감과 죄를 짓는 기분이든다. 하지만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예외이다. 그들의 극심한 통증을 다스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때문이다.

죽어가는 사람이 최대한 편안하게 그들의 죽음을 맞이 할 수 있도록 한다. 그들에게 만사가 예전같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한다. 도움을 요청 할 경우에는 기꺼이 도와 주어야 한다.

우리도 매일의 삶이 죽음을 향한 한 발자욱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짧게 어떤 사람은 길게 발자욱을 남기며 살아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과 죽음의 의미는 모두 다르다. 어쩌면 살아있기에 우리는 죽음에 대한 내 자신에 대한 생각을 탐색을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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