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은 눈 너머의 세계
감은 눈 너머의 세계
  • 박다빈
    박다빈
  • 승인 2019.07.25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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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세계

당신에게도 그런 풍경 있나요. 눈 감을 때 한 번씩 떠오르는 풍경. 나에게는 그런 풍경이 있습니다. 하나가 아니에요. 꽤 많아요.

내가 눈을 감을 때 펼쳐지는 세계에는 당신도 있습니다. 사실 당신이 그 세계에 자주 등장합니다. 눈꺼풀이 만드는 검은색 장막 뒤에서 나오는 당신. 거기서 당신은 내가 무심코 흘려들은 말을 다시 하고 있어요. 내가 무심코 놓친 표정을 다시 짓고 있어요. 눈을 감으면 그런 장면들이 가장 많이 떠올라요. 내가 무심히 지나친 것들 중에 무심히 대해서는 안 되었을 것들을.

눈을 감고 보는 세계는 마음의 세계인 것 같아요.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을 쥐어짜도 떠오르지 않던 것들이 감은 눈 너머로 스르르 쏟아지는 걸 보면. 머리는 망각을 하지만, 마음은 망각을 안 한다고 난 생각하거든요. 내 마음이 내 마음을 다 둘러볼 수 없어서 그렇지, 내 마음속에는 내 생의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다고 난 생각해요. 몸은 여기서 죽지만, 마음은 죽지 않고 그동안 모은 것들을 간직한 채로 다른 세계로 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경험과 추억이 자산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눈을 감고 있을 때 나에게로 오는 풍경들은 마음이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 아닐까. 그런 생각을 가끔 합니다. 마음에는 입이 없잖아요. 눈만 있지. 마음은 그 눈으로 본 것들을 영상이나 사진 형태로 저장해 뒀다가, 그것들로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습니다. 내가 조용한 곳에 앉아 눈을 감을 때마다.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보여주고, 나를 흔들어 깨울 만한 것들을 보여주면서, 마음은 제 나름의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성찰시키기. 반성시키기.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 될 때마다, 나는 내 마음이 내 편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 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 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건 내 생각이나 감정이지 마음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어느 순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잡다한 생각과 감정을 정돈할 때까지, 마음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요. 내가 차분한 상태가 되고 나서야, 마음은 비로소 나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보입니다.

어쩌면 마음은 늘 나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는데, 내가 내 생각과 감정에 정신 팔려 내 마음을 못 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유가 어떻건, 내가 내 마음을 만나기 위해 나는 숨을 고르고 차분해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은 채로 내 마음을 서둘러 만나려고 할 때마다, 나는 내 생각이 내 마음이라고 착각했습니다. 내 감정이 내 마음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이게 내 뜻이야.”라고 말하며 내 마음이 가리키는 길과 다른 길로 걸었습니다.

내 마음은 나를 속이지 않습니다. 내가 그것의 이야기를 확실히 듣지 못해 엉뚱한 오해를 하는 경우는 있어도.

그래서 지금은 의미 있는 선택을 내려야 하는 순간마다,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조용한 공간으로 갑니다. 그리로 가서 심호흡을 하며 내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내 마음인 척하는 것들을 조용히 건져내며,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 봅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요란한 것들은 내 마음의 소리가 아닙니다. 내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내 내면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것은 대개 욕망입니다.

뭔가가 빨리 충족되길 원해서, 욕망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내면을 뒤흔듭니다. 욕망은 에고(ego)에서 나옵니다. 에고는 몸이 죽을 때 같이 죽는 녀석입니다. 에고가 말하는 '나'는 내 몸입니다. 참나가 아닙니다. 에고는 물질 자아입니다. 에고는 시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고는 뭐든 빨리 얻으려고 자주 안달합니다.

그런 반면, 마음은 불멸합니다. 마음은 시간에 구애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언제나 차분합니다. 굳이 뭔가를 악착같이 요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번 생에 안 되는 일은 다음 생에 하면 되니까요.

비극의 끝에서 자기 자신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비극의 끝, 그 적막의 지점에서 그들은 비로소 자기 마음의 소리를 들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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