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막염에 걸리고 나서 생각한 것
결막염에 걸리고 나서 생각한 것
  • 박다빈
    박다빈
  • 승인 2019.07.2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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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때 걸린 결막염

결막염에 걸렸다. 이렇게 제대로 된 증상 다발을 가진 결막염을 경험한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앓은 결막염은 증상도 가볍고 치유도 금방 되어서.

2주쯤 전부터 눈 안쪽에 이물감이 계속 남아 있었다. 안구 이물감을 처음 인지한 건, 2주 전 평일 저녁 산책길에서였다. 먼지 같은 게 눈 안에 들어갔나 했다. 눈이야 원래 자주 가렵고 찝찝하니, 별일 아닐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컴퓨터 화면을 오래 바라보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보니, 눈이 수시로 건조해지고 피로해지기 때문에, 눈의 불편은 나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집에 가서 씻고 푹 자면 눈이 금세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늘 그랬으니까.

눈알이 뻐근한데도 눈 비비기를 멈출 수 없었다. 거의 평생 이어져 온 내 나쁜 습관 중 하나가 눈 비비기인데, 이 악습이 결막염을 악화시킨 듯했다.

2주 전 토요일 밤부터 눈이 빠질 듯이 아프기 시작했다. 자려고 누웠다가 찝찝한 느낌이 들어 눈을 비볐는데, 내가 눈을 비비자마자 눈알이 뜨거워지며 엄청난 통증이 일어났다. 가만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불을 켜고 거울을 들여다보니, 사인펜 같은 걸로 색칠한 것처럼 흰자위가 빨갰다. 눈꺼풀 안쪽과 눈시울도 부어 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하룻밤 잘 쉬고 나면 눈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자고 일어났는데도 눈이 멀쩡해지지 않았다.

다행히 지난주는 휴가 주간이었다. 그래서 낮에 눈이 불편해도 생활하는 데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일하지 않아도 되니까. 비가 많이 와서 여행도 취소됐고.

낮에는 눈이 아프지 않았다. 눈이 뻑뻑하고 눈에 눈곱이 많이 끼긴 했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그래서 또 방심했다. 눈이 벌겋게 되는 것도 나에게는 너무 익숙한 일이라. 나는 내 눈이 결막염에 걸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눈이 피곤해한다고만 생각했다. 7월에 과로했기 때문에.

지난 주 토요일 밤, 눈 비비기를 더 이상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두 눈의 흰자위가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나는 숨을 삼켰다. 흰자위가 부을 수도 있는 거였나. 난생 처음 보는 장면이 거울 속에 있었다. 놀랐고 무서웠다.

진단명은 결막염과 결막 부종이었다. 결막에 염증이 난 상태에서 눈을 계속 심하게 비벼서 물집 같은 부종이 생긴 거라고.

지금은 눈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아직도 밤에는 눈이 시큰거리고 빨개지지만, 결막 부종 증상은 사라졌다.

결막이 부어올랐던 첫 날 밤부터 그 다음 날 정오까지 나는 거의 눈을 사용하지 못했다. 눈을 감아도 눈이 아팠지만, 눈을 감고 있는 것이 뜨고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눈에 안정을 취해 줘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최대한 눈을 감고 있으려고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기분이 들었지만, 할 수 있는 건 최대한으로 하자 싶었다. 뒤늦었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안 한다면, 때를 놓치는 순간을 통해 내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것이었다. 경험을 거름 삼지 못할 것이었다.

눈에서 강한 피로감이 느껴지는데도 일에 매진했던 순간들이 감은 눈 너머로 떠올랐다. 나는 그동안 내 눈을 너무 소홀히 했고, 혹사시켰다. 그 결과 '본다.'라는 동사가 내 일상 밖으로 잠시 빠져나갔다. 앞을 볼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보고 싶다.'는 말에 대해 가장 오래 생각한 날이었다.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처음으로 실감했다.

이젠 당연한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손가락, 발가락, 사지, 이목구비, 오장육부, 이런 것들이 내 몸에 온전히 달려 있다는 것이 새삼 고마웠다. 있을 때 잘하자는 문장을 뒤덮고 있던 먼지를 또 한 번 닦아냈다.

어젯밤에는 내가 오래 그리워했던 사람이 꿈에 나왔다. 그 사람이 운전하는 걸 한 번도 본 일이 없는데, 꿈속에서 그 사람은 새하얀 차를 몰았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그 사람 옆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뒷좌석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이 시끄럽게 떠들었지만, 나는 거기로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났다는 게 너무 신기해서. 좋아서. 그 사람은 능숙하게 운전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 우리가 나누곤 하던 이야기들이었다.

살아 있는 한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사람이지만, 막상 누군가를 본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잘 만나는 것만큼 잘 헤어지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누군가와 헤어지는 일은 관계가 있던 자리에 문 하나를 만들어 놓고 떠나는 일. 예전에 나는 잠긴 문을 만들어 두는 것으로 이별의 절차를 마무리했다. 거의 늘 그렇게 했다. 그게 좋은 이별인 줄 알았다. 내가 만든 잠긴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나에게도 없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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