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부탁, 황현산] 머슴새와 ‘밭 가는 해골’
[사소한 부탁, 황현산] 머슴새와 ‘밭 가는 해골’
  • DONJIRIHANG
    DONJIRIHANG
  • 승인 2019.06.2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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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부탁, 황현산] 머슴새와 '밭 가는 해골'

이 책은 총 5부로 이루어져 있고 각 장에는 제목이 없다.

사회적 이슈, 문화, 문학 평론 등 가까운 주제들로 엮어져 있다.

예전에 '밤이 선생이다'를 읽고 이렇듯 부드러운 문체로 강하게 말씀을

하실 수도 있구나 생각했었다.

이 책 또한 부드럽고 강건함이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며

시대의 어른으로부터 배우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가끔, 우리 사회의 저 높은 곳에 있는 분들에게는 뭔가가 빠져 있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것은 아마도 이 시대에 함께 살아가야 할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포용과 따뜻한 시선과 반성을 할 줄 아는 성숙함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그들은 쌀이 저절로 생기는 다른 세상이 있기나 하다는 듯이 살고 있지만

늙은 농부가 키우든 하늘을 나는 드론이 키우든 벼는 천천히 크고

천천히 익듯이 어디에나 있는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이 세상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작가가 서문을 대신해서 쓴

머슴새와 '밭 가는 해골'을 그대로 옮겨보고 싶다.

서문을 대신한 이 글을 읽으며

어디에나 있는 비천한 사람, 서글픈 체념의 촌놈인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지만 한 글자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 박새를 민간에서는 흔히 머슴새라고 부른다. 저녁 어스름이나 해가 뜰 무렵에
이랴낄낄! 이랴낄낄! 소를 몰아 밭 가는 소리로 크게 울더대기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 옛날에 한 머슴이 혹독한 주인 밑에서 일을 했다. 주인은 머슴에게 밤낮으로 쉴 틈 없이 일을 시켰다. 낮에 밭을 간 머슴에게 밤에도 밭을 갈게 했다. 머슴은 지쳐 쓰러져 죽었다. 죽어서 머슴새가 된 머슴은 지금까지도 어스름 저녁과 어스름 새벽에 소를 몰아 밭을 간다.

그런데 살아서 그 고생을 하던 머슴은 왜 죽은 뒤에까지도 그 고생을 계속해야
하는 것인가. 이제 그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육신이 해방되었으니 혼이라도
편안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질문은 자못 엄숙하다. 인간의 운명을 그 핵심에서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이 시인 보들레르는 19세기 중엽에 우리와 똑같은 질문을 했다. 파리 센강 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고서점의 고서 더미에서 보들레르는 신기한 그림 한 장을 발견한다. 인체의 골격을 보여주기 위한 이 해부도는 앙상한 해골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화가는 그림에 제 생각 하나를 덧붙여, 해골이 그 골격을 곧추세워 밭을 갈고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벌써 저 세상의 몸이 된 이 해골에게도 아직 이 세상의 고생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두 개의 시로 되어 있는 이 시의 뒷부분을 약간 길지만 그대로 인용한다.

서글픈 체념의 촌놈들아,

너희들의 등뼈나 껍질 벗겨진

그 근육의 온갖 노역으로,

파서 일구는 그 땅으로부터,

말하라, 납골당에서 뽑혀온 죄수들아,

어떤 괴이한 추수를

끌어낼 것이며, 어떤 농가의

광을 채워야 하는가?

너희들(너무도 혹독한 운명의

무섭고도 명백한 상징!), 너희들이

보여주려는 바는, 무덤구덩이에서마저

약속된 잠이 보장된 것이 아니며,

허무가 우리에게 등돌리는 배반자이며,

모든 것이, 죽음마저, 우리를 속인다는 것이며,

슬프다!영원무궁 변함없이,

우리는 필시

알지 못하는 어떤 나라에서

거친 땅의 껍질을 벗겨야 하며

우리의 피 흐르는 맨발로

무거운 보습을 밀어야만 한다는 것인가?

해골들은 벌써 죽음의 세계, 허무의 세계에 들었지만, 죽음과 함께 영원한 휴식을 얻게 되리라는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우리가 모르는 어떤 나라에서 “거친 땅의 껍질을 벗겨야 하며”, 피 흐르는 맨발로 보습을 밀며 노력해야 한다.

그들은 죽음 뒤에까지도 영원히 험한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부당한 처사에 대해 우리는 왜 입을 다물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들 자신이 고생하는 자는 영원히 고생하게 되어 있다고 믿는 “서글픈 체념의 촌놈들”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평소에 염두에도 두지 않았던 이런 모순에 갑자기 의문이 생기는 순간을 나는 문학적 시간이라고 부른다. 문학적 시간은 대부분 개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지만, 사회적 주제와 연결될 때 그것은 역사적 시간이 된다. 그것은 또한 미학적 시간이고 은혜의 시간이고 깨우침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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