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라는 스승
세월이라는 스승
  • 박다빈
    박다빈
  • 승인 2019.06.2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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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정말로, 정말로 끈질긴 스승이었다. 단 한 번도, 단 한 순간도 나를 포기하지 않고, 나에게 수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들려주었다. 나를 혼내지도 않고, 필요 이상으로 나를 어르지도 않으면서. 그저 머무르며 나를 바라보고, 흔들고, 부축하고, 옮길 뿐이었다. 나는 세월 밖으로 도망칠 수 없었다. 세월은 내 안에도 있었다.

그리고 나도 세월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세월을 포기하면 모든 게 끝나는 건데, 나는 그럴 만큼 용감하지 못했다.

과거에 나는 문자 그대로 조급증 환자였다. 중증 환자. 뭐든 빨리 이루어지길 바라며, 나는 1분과 1초마저 수십 조각으로 쪼개어 세곤 했다. 겉으로는 만사에 무심한 척해도, 속으로는 번갯불에 콩을 몇 포대나 볶아 먹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그런 나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나로 인해 오래도록 피곤했을 것이다. 거의 모든 것에 초조함을 느낄 수 있는 내 별난 재능에 질리기도 했을 것이다. 하여 몇 사람은 내 삶 밖으로 걸어 나가거나 달려 나갔다. 제발 마음을 느긋하게 먹으라는 잔소리에 지쳐 내가 누군가로부터 떠난 적도 있다. 당시 내가 가진 가장 큰 문제가 이것이었다. 정신 나간 조바심.

세월은 내 사정을 봐 주는 법이 없었다. 내가 그 어떤 엄살을 떨어도, 내 목소리를 한 음절조차 귀담아 듣지 않았다. 세월은 무서울 정도로 침착하고 초연했다. 하여 그것은 모든 일을 제때에 맞추어 처리했다. 내가 아무리 떼를 써도 미동하지 않고, 세월은 나에게 침묵으로 때를 가르쳤다. 니가 아무리 니 마음을 못 살게 군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일은 때가 되어야 이루어진다. 사람의 손밖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손대려 하지 않는 법을 알아라. 안달복달하는 것만 알지 말고, 차분히 기다릴 줄도 알아라. 할 일을 다 하고 나면 물러서 있을 줄도 알아라. 덜 이루어진 일을 두고 숙면할 수 있는 법을 익혀라. 미완성과 손을 잡고 춤추는 법을 배워라. 완성의 순간이 잠깐이라면, 미완성의 순간은 인생 대부분에 걸쳐 있다. 니가 미완성을 즐기지 못한다면, 니 인생도 즐거울 수 없다. 인생은 과정이니까. 미완성과 친해지지 못한다면, 너는 언제까지나 깊은 호흡을 하지 못할 것이다. 숨을 쉬는 둥 마는 둥하며 이리저리 쫓아다니다가 인생을 끝내게 될 것이다.

물론 세월은 나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끊임없이 나에게 배울 거리를 실어다 줄 뿐. 때로는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세월은 나를 가르쳤다. 그래서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옛 세월의 가르침을 내가 이해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것마저 세월의 계획이었던 건지, 단순한 우연인지 나는 모른다.

어려서는 세월이 그냥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월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인생이었다. 인생 안에서 인생을 배우며 사람은 여물어 간다. 결국 자기가 자기를 가르치고 키우며 살아가는 것이다. 반성(反省), 즉, 되돌려 살펴보는 일을 통해 그 모든 양육과 성숙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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