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다양한 계급으로 분류되는 순간
사람들이 다양한 계급으로 분류되는 순간
  • 박다빈
    박다빈
  • 승인 2019.06.1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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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하고 어울리지 마.”라는 말. 경제적 배경 차이가 꽤 많이 나는 집안끼리 엮이는 일일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말 같은데. 언뜻 듣기에는 현실감이 전혀 없는 말 같은데. 살면서 이 말을 몇 차례 들었다. 들을 때마다, 나는 조용히 숨을 참고 눈을 고쳐 떴다.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잠시 막막해서.

어려서는 이 말 앞에서 매번 발끈했다. 발끈 정도가 아니었나. 별것도 아닌 기준으로 계급을 만들고 사람들을 분류하는 순간이 너무 언짢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절대로, 절대로 나오지 못했을 말들이 그 사람의 부재를 딛고 나오는 순간은 나에게 어떤 공포이기도 했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오갈 내 이야기들이 가장 나쁜 쪽으로 상상되어서. 그 공포는 '인간관계 다 이런 건가.' 하는 회의감을 낳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그런 공포와 회의감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때는 그것들이 나에게 커다란 의미이자 실체였다.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다양한 수준으로 험담하는 행실이 나에게는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누군가의 이미지를 깎아내려야 내 이미지가 좋아진다는 괴상한 논리를 버리기 전까지, 나도 누군가를 뒤에서 욕하거나 싫어했다. 그런 내가 구역질나게 역겨우면서도, 나는 '다들 그렇게 사니까.'라는 생각에 의지하였다.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폄하하는 대화에 끼지 않으면 무리에서 소외될 것 같다는 두려움에 한 번도 제대로 덤비지 않았다. 겁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비열해서였다. 남들에게 억지로 동조하면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억지로 그런 게 아니다. 그땐 좋은 것이 거의 없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을 안 좋게 말했다. 안 좋아할 것들, 탓할 것들만 골라서 찾아다니는 사람처럼 굴면서.

그리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과 만나지 않기를 원했다. 나도 “그런 사람하고 어울리지 마.”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듣기는 싫은데, 내가 내뱉을 때는 너무 논리적인 것 같은 말. 당시 이 말은 그런 말이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그 사람이 하는 일, 그 사람이 가진 것, 그 사람 취향, 그 사람이 타고난 가정환경 같은 건 그 사람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닌데. 나도 누군가의 일부만으로 그 사람 전체를 함부로 판단하며, 그 사람에게 어떤 계급을 부여하였다. 나 또한 누군가로부터 일방적으로 어떤 계급을 부여 받았다. 악순환이었다.

내가 다른 많은 것들을 그만둘 때 그러했듯이, 이것도 질릴 만큼 질린 다음에 그만두었다. '아, 도저히……. 이건 진짜 아닌데. 진짜 아닌데.'라는 마음이 들고 나서야, 나는 문득 주변을 둘러보며 내 행실의 문제점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꽉꽉 억눌러 온 양심이 폭발하며 죄책감이 되었다. 내가 나라서 눈감아 준 순간들이 두 눈을 시뻘겋게 뜨고 나를 따라다녔다.

뭔가가 옳지 않다고 생각할 때, 그 생각을 하는 것 자체는 쉽지만, 그 생각대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누누이 스스로에게 건넨 말처럼, 인간답게 살려면.

죄책감 자체를 스스로에 대한 징벌로 생각하고 실질적인 개선은 하지 않는 사람으로 계속 살아간다면, 나는 무엇이겠는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쪽팔리는 건 알면서, 쪽팔리는 사람으로 계속 살아가는 마음은 무엇인가. 변화가 더 두려운 일인가, 구질구질한 걸 알면서 마음을 닦지 않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더 두려운 일인가. 그런 생각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내 의도와 상관없는 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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