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leeks
  • 승인 2019.06.18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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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비건축가에게 보내는 편지

지은이는 독자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건축물과 도시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각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더 많은 사람이 건축을 이해하게 될 때 더 좋은 건축물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됨으로써 우리를 감싸고 있는 공간과 도시가 더 좋아질 것이고, 그래야 우리가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건축은 예술이기도 하고, 과학이기도 하고,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이 종합된 그냥 '건축'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러면서 이 책은 건축가가 비전공자에게 보내는 일종의 편지라고 한다.

이 책을 다 읽는 순간 '나도 건축을 전공할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흥미진진하고 평소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보이게 해준 책이다. 마치 내가 사는 아파트가 나에게 뭐라 말을 해줄 거 같다. 그리고 내가 사는 도시가 다르게 보인다. 도시에 우뚝 서 있는 수많은 건물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웃고 있는 건물, 울고 있는 건물, 옆 건물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물, 지나다니는 사람을 보며 자기들끼리 뭐라 하는 것 같다.

사람이 건물을 만들지만, 건물은 사람을 만든다. 건물은 유기체다. 사람과 같은 유기체이자 네트워크이다. 비록 건축에 대해 전혀 무지한 나이지만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지은이의 말대로 비전공자인 내가 건축가에게 무언가 답장의 편지를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 자식들에게도 이 책을 꼭 읽어보게 하겠습니다.”

이것이 내 답장이다.

<책 속으로>

제1장 왜 어떤 거리는 걷고 싶은가

단위 거리당 출입구의 수는 거리 체험과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 있다. 이처럼 단위거리당 출입구 숫자가 많아서 선택의 경우의 수가 많은 경우를 '이벤트 밀도가 높다'라고 표현해 보자.

단위거리당 상점의 출입구 숫자가 많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보행자에게 권력을 이양한다. 만약 보행자가 선택권이 없는 길을 걷는다면 이는 마치 채널이 하나밖에 없는 TV처럼, 수동적이고 선택의 자유가 없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과 같다. 반면, 출입구를 통한 선택권들이 일정 간격을 두고 반복적으로 주어진다면 그 거리는 보행자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자기 주도적인 삶의 체험을 제공해 주는 거리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보행자에게 변화의 체험을 제공한다. 점포의 출입구가 자주 나타나는 점은 조금만 걸어도 새로운 점포의 쇼윈도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매번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체험의 가능성을 높여 준다. 이벤트 밀도는 그 거리가 보행자에게 얼마나 다양한 체험과 삶의 주도권을 제공할 수 있는 가를 정량적으로 보여 주는 척도가 될 수 있다.

이벤트 밀도가 높은 거리는 우연성이 넘치는 도시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사람들이 걸으면서 더 많은 선택권을 갖는 거리가 더 걷고 싶은 거리가 되는 것이다.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진다는 것은 더 주도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p. 25-32)

어떠한 거리의 상황이 사람들이 걷고 싶은 환경이 되느냐는 질문에 이 책의 답은 다음과 같다. 걷는 환경과 너무 차이가 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은 시속 4킬로미터로 걷는다. 너무 느려도 사람들은 걷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상점의 입구가 자주 나오는 거리가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든다. (p. 46)

제2장 현대 도시들은 왜 아름답지 않은가

과거 도시에는 그 지역 그 시대에서 사용 가능한 구조적 기술이 하나밖에 없었다. 건축을 하기 위해서 구할 수 있는 재료도 지금처럼 교통과 유통망이 발달한 때가 아니었기에 지극히 제한적인, 가까운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주변에 나무가 많은 경우에는 나무로, 돌산이 가까우면 돌로, 이도 저도 없으면 흙으로 빚어 구운 벽돌로 도시 내 대부분의 건물을 지었다. 구조 기술적인 면에서 본다면 성당이나 궁궐 같은 특별한 건축물만 가끔 큰 스케일로 구축했을 뿐 나머지는 대부분 인간의 노동력으로만 지어야 했기에 휴먼 스케일의 건축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한옥을 보더라도 소달구지를 통해서 옮길 만한 나무 무게와 몇 사람이 힘을 합쳐서 들어 올릴 수 있는 크기의 대들보가 그 건물의 단위 크기를 규정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휴먼 스케일의 건물들과 대형 스케일의 랜드마크 건물들이 강약의 조화를 이루었다. (p. 49-50)

도시를 형태와 재료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나누어 본다면 도시는 네 종류가 나올 수 있다. 형태도 단순하고 재료도 단순한 경우(한국의 아파트 단지), 형태는 복잡하고 재료는 단순한 경우(그리스 산토리니 섬), 형태는 단순하고 재료는 복잡한 경우(서울의 논현동 뒷골목), 형태도 다양하고 재료도 다양한 경우(서울의 청담동 명품 플래그샵 거리)이다. (p. 52)

20세기 초 근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는 주택을 “사람이 살 수 있게 하는 기계”라고 정의 내렸다. 건축에서 기능적인 면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기능은 건축이라는 자전거의 두 바퀴 중 하나에 불과하다. 자전거가 굴러가려면 두 개의 바퀴가 필요하듯 건축은 기능 이외에도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바퀴가 필요하다. 현대도시의 건축에서 부족한 부분이 이 부분이다. 기능적으로 작동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빠른 자동차를 위한 길과 넓은 집들을 추구했지만 정작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감성을 깨우는 공간을 놓쳐 온 것이다. (p. 67-68)

제3장 펜트하우스가 비싼 이유

펜트하우스가 비싼 이유는 주변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펜트하우스는 부자들이 권력을 갖는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 구조를 가장 확실히 보여 주는 공간 형태다. 건축 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의 구조를 그 내부에 숨기고 있다. '공간은 권력을 만들어 낸다'라는 명제를 팬옵티콘(panopticon)처럼 잘 설명해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팬옵티콘'이라는 단어를 분석해 보면, 전체를 뜻하는 'pan'과 바라본다는 뜻의 'opticon'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합성어로, 번역하면 '모두 본다'라는 뜻이 된다. 팬옵티콘은 감옥이다. 건축가가 아닌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러미 벤담이 디자인 한 것이다. (p. 71-73)

팬옵티콘과 파리의 도시 구조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떠한 공간 디자인은 서 있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서 권력을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아파트 단지에서 건너편 동을 바라보는 경우가 그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밤이 되면 아파트 동 간이 가까운 단지라면 자연스럽게 건너편 동에 있는 집의 거실이나 침실의 내부가 눈에 들어온다. 이때 한층이라도 높은 층의 사람은 그보다 낮은 층의 사람을 바라보기가 쉽고, 반대로 낮은 층의 사람들은 자신의 집보다 높은 층의 집들은 잘 볼 수가 없다. 늪은 층에 사는 사람은 마치 간수가 감시탑에 숨어서 바라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주변 경관을 비롯해서 모든 것을 내려다볼 수 있고 본인은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펜트하우스가 가장 비싼 이유가 여기에 있다. (p. 76-78)

옥탑방은 옆집 옥상에서 뛰어서 넘어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보안이 전혀 안 되는 취약한 공간이다. 그 공간에 들어가는 게 쉽다는 것은 그 만큼 중요한 공간이 아니라는 뜻이며, 동시에 권력을 가진 공간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아무나 넘어 들어갈 수 있는 옥탑방은 펜트하우스와는 달리 가격이 높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공간의 디자인은 권력의 창출 및 재분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따라서 건축가들이 도시 구조를 디자인하고 건물을 디자인하는 것은 향후 수백년간의 권력 구조를 구성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p. 82)

바라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사이에는 이와 같은 권력과 보안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건축적 장치에서는 창문이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을 결정짓는 장치이다. 하지만 단순히 창문이 모두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모텔과 호텔은 둘 다 창문이 필요하지만 창문의 크기에 따라서 미묘하게 건축적 의미가 나누어진다.

모텔은 항상 밤이기를 원하는 공간이다. 외부 공간을 거의 다 차단하는 곳이 모텔이라면, 반대로 호텔에서는 바깥 경치를 보기 원한다. 그리고 보이기를 원한다. 건축에서 창문은 건축물의 안과 밖을 연결해 주는 소통의 요소이자 '바라본다'는 권력을 조절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극단적인 경우가 파크 하얏트 호텔의 경우이다. 이 호텔은 전면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유리창도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투명 유리로 되어 있다. 이 말은 내가 바깥 경치를 보는 목적도 있지만 동시에 내가 여기에 묵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아도 무방하다는 말이다. “이 비싼 호텔에 묵는 것이 자랑스럽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렇듯 같은 빌딩이지만 창문의 크기에 따라서 모텔이 되기도 하고 호텔이 되기도 한다. 창문은 건축물의 기능과 사회적·심리적인 요구에 따라서 외부와 내부의 관계를 조절하여 공간의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건축 요소이다. (p. 86-89)

제4장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뉴욕 이야기

심리학에는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주창한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실험에서 두 대의 자동차를 한 대는 깨끗한 상태로, 다른 한 대는 유리창을 약간 깨 놓은 상태로 자동차 보닛을 둘 다 열어 놓고 주차를 시켜 두었다. 재미난 결과가 나왔는데, 유리창이 깨진 상태의 차는 10분 만에 배터리를 도난당했고, 이후 타이어도 도난당하고, 일주일 후에는 완전 폐차 상태까지 갔다는 것이다. 반면 옆의 깨끗한 상태로 보닛이 열려 있던 차는 깨끗하게 유지되었다고 한다. 이 실험에서처럼 약간의 비호감적인 컨디션이 연출되면 부정적인 변화는 가속도가 붙어서 더욱 급속하게 나빠지게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것이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다. 할렘에서 유태인이 이탈한 경우가 이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조금씩 빈집이 생기면서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하는 집이 생겨나면 그것이 그 동네를 급속하게 나쁜 동네로 만드는 것이다. (p. 101)

제5장 강남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 사람이 만든 도시, 도시가 만든 사람

2002년 노벨상을 받은 MIT의 호비츠 교수에 의하면, 많은 세포들이 자살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일부 세포는 스스로가 일정 시간이 되면 자살하듯이 소멸되고 새로운 세포로 적극적으로 교체되는 것이 생명체 고유의 특성임을 밝혔다. 이렇듯 살아 있는 생명 시스템은 세포를 끊임없이 없애고 새로운 물질을 외부로부터 받아들여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오래된 세포를 교체시키면서 성장한다. 생명체에 이러한 성장, 발전, 진화가 있듯이 도시에도 성장, 발전, 진화가 있다. 『생명의 그물(Web of Life)』의 저자 프리초프 카프라 박사에 의하면, 어떠한 시스템이 살아 있는 유기체냐 죽어 있는 무기체냐를 결정하는 요소는 그 조직체의 패턴이 스스로 만들어지는 네트워크냐 아니면 외부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도시는 초기 계획자의 디자인이라는 수동적인 패턴을 뛰어넘어 특정한 디자이너의 계획 없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지는 패턴들이 보이는데, 이 같은 자생적 패턴은 도시를 살아 있는 유기체로 보기에 충분한 증거라고 생각된다. (p. 125)

제6장 강북의 도로는 왜 구불구불한가 : 포도주 같은 건축

과거 도시에는 상하수도 시설이 부재하였다. 하지만 상하수도 시설은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이런 인프라가 구축되기 전인 조선 시대 때 주거들은 한강의 지류 하천을 따라서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실개천 주변으로 주거들이 들어서게 되고 그 옆으로 사람과 말들이 지나다니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도로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 시대의 도시는 수변 공간 주변으로 빨래도 하고 상하수도 시설로 사용하는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후 인구 밀도가 높아지면서 하천의 위생적 문제가 심각해지고 동시에 자동차도로의 확보가 도시 형성에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으로 부각되면서 하천 부지는 거의 대부분 복개되어 도로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강북의 도로망은 많은 부분이 구불구불한 자연 하천과도 같은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이다. 대형 간선도로가 들어서게 되면서 과거 하천 중심으로 커뮤니티의 중심권이 형성되었던 것과는 반대로 도로가 기존 커뮤니티를 나누는 문제가 대두되었고 지금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처럼 과거의 기술적 한계와 오랜 시간의 역사가 현재 우리가 사는 공간을 규정하고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p. 143-144)

연극을 할 때 우리는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무대 디자이너는 그 스토리에 맞추어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최소한의 공간과 재료로 최적의 무대 세트를 디자인한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건축가는 먼저 사람의 행위를 디자인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작가가 시나리오를 먼저 쓰는 것과도 같다. 연극 시나리오 없이 무대 세트가 디자인될 수 없듯이, 건축가는 사회와 삶의 모습을 그리는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에는 건축물을 디자인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어떠한 행위를 할 때, 그 행위에 걸맞는 환경을 연출해 주기 위해서 건축이 무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연극의 스토리는 빈약한데 무대 장치만 블록버스터급으로 해 놓으면 안 되듯, 너무 부족해도 안 되지만 너무 과해도 안 되는 것이 건축물이다. (p. 147)

제7장 교회는 왜 들어가기 어려운가

제8장 우리는 왜 공원이 부족하다고 말할까

제9장 열린 공간과 그 적들 : 사무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10장 죽은 아파트의 사회

제11장 왜 사람들은 라스베이거스의 네온사인을 좋아하는가

이러한 모순된 현상, 즉 자국 간판은 싫어하면서 외국에 나가서 보는 지저분한 간판에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이것은 문화의 사대주의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지식적 배경에 의해서 외부 환경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은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네온사인 간판에 열광한다. 그렇다면 미국인들도 그럴까? 적어도 필자의 미국인 친구들은 라스베이거스의 네온사인 간판을 싸구려 장식이라고 싫어했다. 하지만 재미난 사실은 똑같은 친구들가 대만에 여행을 갔을 때 그곳 거리의 지저분한 간판은 좋아했다. 이 같은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간판 경관에 대한 판단은 경험하는 사람이 그 간판을 정보로 이해하느냐 아니면 장식으로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미국인들에게 라스베이거스의 네온사인은 정보로 인식되어 정보가 과부하되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같은 사람이 홍콩에 가서 한자로 쓰인 간판을 볼 경우엔 그것들은 모르는 글자이기 때문에 정보가 아닌 아르누보('새로운 예술'을 뜻한다) 장식과 같이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도시 경관의 많은 부분들은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의해서 가치가 평가된다. 특히나 풍경 속에서 사인물 같은 상징적인 요소들은 사람들 개인의 인지에 따라서 크게 차이를 갖게 된다. (p. 250-251)

과연 어떤 정보들이 우리의 공간을 구성하는가? 개인적으로 '보이드(void), 심벌(symbol) 액티비티(activity)라는 세 종류의 정보로 만들어진다.'라고 결론 내렸다. 보이드는 물리적인 양이다. 정량적으로 측정 가능한, 실제 비어 있는 공간의 볼륨이다. 시대와 문화를 떠나서 객관적인 정보이다. 심벌 정보는 간판, 조각품, 그림 같은 상징적인 정보이다. 개인에 따라서 정보 해석의 차이가 있다. 마지막인 액티비티 정보는 사람들의 행동에 의한 정보이다.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행위가 무엇인지가 공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종류의 정보가 하나의 공간을 만든다. 따라서 예전 텍스트만 있는 인터넷 공간은 세 종류의 정보 중에서 심벌 정보만 있는 공간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추후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보이드 정보와 액티비티 정보가 추가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싸이월드 미니 홈피의 '마이룸' 같은 것이 보이드 정보가 인터넷 공간에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고, 페이스북은 액티비티 정보로 만들어진 인터넷 공간인 것이다.

이로서 공간이 정보라는 것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과연 '건축 공간은 사람과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는가?'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으로서는 완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세 가지 관계가 더 필요한 것이다. 알다시피 사람 간의 소통의 기본은 문장이다. 그리고 문장은 단어와 문장 구성(영어의 1형식부터 5형식)이라는 두 가지로 완성된다. 이렇듯 언어의 소통은 문장 구성이라는 그릇에 단어가 담겨져서 전달된다. 마찬가지로 건축 공간은 세 가지 종류의 관계라는 문장 구성에 세 가지 종류의 정보가 담겨서 전달되는 것이다. 세 가지 종류의 관계들은 실제적(physical), 시각적(visual), 심리적(psychological) 관계이다. 실제적 관계는 볼 수도 있고 그곳에 갈 수도 있는 관계이다. 시각적 관계는 볼 수만 있고 갈 수 없는 관계이다. 한강의 다리가 끊어지고 배도 없다면 강북과 강남은 볼 수는 있지만 갈 수는 없는 시각적 관계가 된다. 심리적 관계는 볼 수도 갈 수도 없지만 머릿속으로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관계이다. 마치 계단식 아파트에서 같은 계단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벽 너머에 존재하는 702호와 703호처럼 말이다. 이처럼 세 가지 정보와 세 가지 관계라는 시각으로 건축 공간을 읽어보기 바란다. 그러면 현실 공간부터 인터넷 공간까지 많은 부분이 이해가 되기 시작할 것이다. (p. 257-258)

제12장 뜨는 거리의 법칙

일반적으로 외부인이 한 도시에 애착을 갖기 시작하는 시점은 그 도시의 도로망을 완전히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인식이 안 되면 길을 잃기 쉽고 공포감을 느끼게 되며 그러면 주변을 즐길 여유가 없이 경계만 하기 때문이다. (p. 276)

우리는 앞서서 걷고 싶은 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이벤트 밀도가 높은 거리여야 한다고 배웠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가게의 입구가 자주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 공간의 속도가 느려야 한다는 점도 걷고 싶은 거리의 특징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뜨는 거리가 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안전'이다. 대부분의 거리에서 안전은 쇼윈도의 불빛과 사람들의 눈으로 만들어지지만 정동길처럼 대사관 보안이라는 이유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p. 291-294)

제13장 제품 디자인 vs 건축 디자인

건축은 인간의 몸보다 큰 것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몸보다 작은 물체를 디자인하는 것과는 다르게,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사용자의 시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디자인해야 한다. (p. 302)

건축물이 대지의 환경과 에너지를 잘 이용하는지 못하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그 건축물을 그 땅에서 들어서 다른 장소로 옮겨 놓고 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서 근대 건축의 대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디자인한 '낙수장'이라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주택이 있다. 이 주택은 시골의 계곡 폭포 옆에 지어져서 집의 테라스가 폭포 위로 뻗어 나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주택을 청담동 한 가운데로 옮겼다고 생각해 보자. 그 집이 얼마나 생뚱맞아 보이겠는가? 반면 우리가 잘 아는 한남동의 '이룸' 박물관을 보자. 그 박물관의 건물들은 훌륭한 건축물들이다. 디자인도 개성 있고 시공도 훌륭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건축물이 파리에 옮겨졌다고 생각해 보자. 아마 거기서도 계속 훌륭한 건축물로서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이 말은 이 건축물은 주변의 환경과 연관을 맺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진정 훌륭한 건축 디자인은 어느 한 땅에서는 훌륭하게 작동하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때 이상하게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이다. (p. 311-312)

제14장 동과 서 : 서로 다른 생각의 기운

제15장 건축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은 주로 세 가지로 나누어지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인공물인 건축도 자연을 대하는 방식이 세 가지이다. 이를 경사 대지 위에 건축물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설명해 보자. 첫째,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흔히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 재개발에 사용되는 방식이다. 대지의 경사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고 거대한 축대를 쌓아서 평평한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아파트 건물을 앉힌다. 대형 토목 공사가 필요하고 자연의 모습을 모두 바꾸어 버리는 폭력적인 방식이다. 두 번째는 자연을 이용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이방식은 첫 번째 방식보다 좀 더 스마트하다. 경사 대지가 있다면 그 경사면을 이용한다. 예를 들어서 경사 대지에 교회를 짓는다면 대지의 경사면을 이용해서 교인의 객석을 배치하고 강대상을 아래쪽에 두어서 편하게 설교를 들을 수 있는 기능적인 교회를 만드는 것이다. 자연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재미난 건축을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자연을 동등한 대화의 상대로 보는 방식이다. 성 베네딕트 채플(스위스)이 그러한 경우이다. 이 교회는 경사 대지에 마루를 평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벽체와 마루 사이에 틈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땅과 교회 마루 사이의 비어 있는 공간을 통해서 음양의 공명을 만들어 내고 인공의 건축물과 자연이 대화할 수 있는 디자인을 했다. 이렇게 한 이유를 건축가는 “땅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교회”를 디자인하려 했다고 설명한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정자가 이러한 종류의 자연과 대화를 가능케 하는 건축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p. 345-346)

건축적 요소로 보았을 때 벽은 단절을 의미한다. 하나의 공간이었다가 벽이 서면 둘로 나누어지게 된다. 옹벽도 벽이기 때문에 지역의 단절을 의미한다. 땅의 모양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서 사람들 간의 관계도 바꾸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자연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이유이다. 계단으로 연결된 달동네에 사는 것과 옹벽으로 나누어진 아파트 단지에 사는 것은 보기보다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우리가 과연 편한 주차장을 얻기 위해 잃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p. 360-361)

실제로 자연에는 아무런 경계가 없다. 자연을 나누는 것은 인간일 뿐이다. 국경선, 38선, 이스라엘 가자 지구도 그렇다. 건축에서 울타리는 벽이고, 벽은 단절을 의미하는데, 인간은 자연 속에 너무 많은 단절의 벽울 세운 거다. 수백 년 전 영국 귀족들은 자신의 영토의 영역을 나타낼 때 담장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에 자신이 키우는 양들이 자신의 땅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고 멀리서는 안 보이는 해자 같은 웅덩이를 파서 울타리를 대신했다. 이를 '하하(haha)'라고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영역은 구획하지만 시각적으로 자연 속에 인공의 경계가 안보이게 했다. 하하 덕에 자신의 영토가 무한하게 더 넓게 느껴지기도 하고 동시에 자연의 모습을 보존할 수도 있었다. (p.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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