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나를 이기려 했는가
왜 나는 나를 이기려 했는가
  • 박다빈
    박다빈
  • 승인 2019.05.22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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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의 나약한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수월하거나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누가 그런 걸 좋아할까. 나는 되도록 내 안의 허약한 부분들을 안 보려고 하며 살았다. 의도적으로 외면하며 지낸 것이다.

   그런데 내 안의 내가 나보다 강한 것도 나는 원치 않았다. 굳이 선택하자면, 나는 나를 이기는 쪽이 좋았다. 파워의 차이가 압도적으로 날수록 좋았다. 나를 찍어 누르는 데서 이상한 희열과 성취감을 느꼈던 것이다.

   누가 싸움을 부추긴 것도 아닌데,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나와 싸우며 지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대상이 나 자신이었다니…….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대체 왜 그랬나 싶어 조금 허무해지기도 하지만. 그땐 그 모든 것이 중요하고 진지한 일이었다.

   성공하려면 스스로에게서 패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내 안에 늘 있었다. 그것은 ‘가득’에 가까운 생각이었다. 나는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줄 알았다. 내 생활을 합리화하기 위해 그런 생각을 꾸며내서 가진 건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이렇게 살고 있어. 모두가. 특별할 것 없는 일이야.

   내가 나 자신에게서 졌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나를 처벌했다. 여기서 ‘졌다.’는 것은 절대적인 판정이 아니라 상대적인 판정에 불과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그랬다. 진짜 패배한 사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패배 판정을 받은 사람만 존재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나에게 요구했다. 패배에 대한 대가를 치르라고.

   나는 엄청난 고집을 부리며 스스로를 벌했다. 빈틈없이. 그런 쪽으로는 상당히 고지식한 편이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를 언제나 너무나도 간단하게 물리쳤다. 이건 내 일이야. 사적인 영역 안의 일.

   스스로를 처벌하려 할 때 나는 어떻게 그렇게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 나는 나를 참 다양한 방법으로 참 많이 상하게 만들었다.

   사실 내 내면은 나에게 결투 신청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고유한 의견을 가질 뿐이었다. 그 의견을 못마땅하게 여기다가 전쟁 선포를 하는 것은 언제나 나였다.

   그리고 내 내면은 나를 패배시키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그것은 그저, 그저, 뭔가를 말할 뿐이었다. 어느 쪽을 가리킬 뿐이었다. 내 내면의 목소리가 내 목소리보다 클 때, 나는 내 내면의 소리를 죽이려 했다. 내 내면이 뻗은 손가락 힘이 내 손가락 힘보다 셀 때, 나는 내 내면의 손가락을 꺾으려 했다. 왜인지 모르겠다. 그땐 누구의 말도 듣고 싶지 않았고, 제일 듣고 싶지 않은 말은 내 안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말을 듣다 보면, 진정성 없는 내 삶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내 본연의 뜻에 따라 살고 있지 않다는 걸 내가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모르려 할 수는 있지만, 진짜 모를 수는 없는 일.

   내 마음이 나보다 집요하게 무언가를 말하고 무언가를 향해 있을 때, 나는 내가 내 마음에게 졌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주지 않은 패배감을 품고, 내 마음에게 복수를 시작했다. 그래 니가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니 뜻대로는 절대로 안 살아.

   처음에는 일이 이렇게 커지고 악화될 줄 몰랐다. 나는 내 본심을 저버리고 살아가는 일이 어느 때는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의 내가 거짓을 행하고 있다는 생각은 못했다. 안 하고 싶었겠지. 나보다 중요해진 뭔가를 위해 나를 저버리면서도 나에게 죄책감 갖지 않기 위해, 나는 핑계를 댔다. 난 그저 경우에 알맞게 처신하고 있는 거야. 사람이 어떻게 제멋대로만 살아가겠어. 두루 좋자고 하는 일이지. 양보도 좀 하면서 살아야지.

   제멋대로 살아가는 것과 자기 자신이 되어 살아가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참 희한하다. 나는 내가 저지른 황당한 거짓말 하나를 숨기기 위해 필요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었다. 얼떨결에 한 번 써 본 가면대로 내 얼굴을 만들기 위해 내 얼굴을 자꾸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정말 나 아닌 뭔가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닌데. 잠깐 멋을 부리거나 허세를 부리고 싶었던 것뿐인데. 잠깐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것뿐인데.

   내가 한때 나 스스로를 거짓으로 포장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마음에도 없이 던진 거짓말을 부풀리고 있었다. 성공하기 위해 내가 나를 자꾸 잡도리한 게 아니다. 내 안의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내가 내 내면을 죽어라 두들겨 패고 있었을 뿐이다. 조용히 하라고. 듣기 싫다고.

   그리고 나는 어느 날 항복했다. 불행해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 아닌 채로 껍데기 인생을 살고 있다는 거 말고 뭐가 진짜 중요한가 싶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참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에서 행복감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몇 겹 포장된 자신의 삶을 가장 좋아할 수 있고, 그것은 그저 그런 일일 뿐이다. 나는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로 걸음을 틀었다. 너무 멀리까지 가 버린 탓에, 그 길로 돌아오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의 불행함은 없었다. 그때 알았다. 그간의 내 모든 불행은 표면적으로 종류가 달라 보일 뿐, 근본적으로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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