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골라 담을 수 있다면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골라 담을 수 있다면
  • 송이든
    송이든
  • 승인 2019.05.1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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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남편을 보내고 홀로 삶과 고군분투하시던 외할머니는 젊은 나이때부터 머리카락이 백발이셨다.

그 백발이 항상 어머니에게 매서운 겨울만큼 시리고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한 죄의식과 안쓰러움으로   
항상 자리잡으셨다.
자식들땜에 맘고생을 많이 해서 머리가 샜다고 여기셨다.
그리고 그런 본인도 흰머리의 침투를 막아내려 거름을 주고 영양을 공급해가며 발악했지만
잡초처럼 자라난 흰머리들이 엄마의 노력을 밀어내 버렸다.
거울앞에서 머리카락을 열손가락으로 이리저리 휘저으며
''시상에~~허옇네. 아주 눈내린 산이네. 나도 니 외할머니 닮아 버렸네.'' 하셨다.
어머니는  마치 정글 숲을 헤쳐나가듯 머리카락을 꼼꼼히 훑어보시곤 백발이셨던 외할머니를 떠올리셨다.
아직 늙은 건  아닌데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를 거울에 비추더니
자신이 늙어버린 것 같은 허무함과 허탈함의 중간에 머무르는 듯한 표정을 지으셨다.
''니네들은 이런 것 만큼은 내 닮으면 안될긴데~'' 하고 걱정하셨다. 
염색을 할 때마다 녹음기를 틀어놓듯 무한반복으로 내어 놓던 어머니의 말이었다.
''걱정마! 나는 아버지 닮아 그런 일 없을거야.''
''그래야지. 니 아버지는 머리가 아주 숯검댕이처럼 까맣잖아. 반골습끼가 있어서 그렇지, 근데 또 딸들은 곱슬끼가 없는 게 또 얼마나 다행이여!''
그랬다.
아버지는 나이가 드셔도 그 흔한 새치 한가닥이 없었지만 곱슬머리셨다. 
근데 딸들의 머리결은 찰랑거렸고,  곱슬끼가 없었다.
다행히도 엄마를 닮은 것이다. 곱슬머리가 아닌 것에 감사하며 살았다.

유난히 아버지를 많이 닮은 나는 엄마의 지분보다 아버지의 지분을 절대적으로 가지고 있었기에

머리카락 역시 하얘질 리가 없고 염색할 일도 없을 것이라 자부했다.

하지만 완전 나만의 착각이었다.
마흔이 넘으면서 하얀 싹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염색을 하는 환경에 접어든 것이다.
목위로는 엄마의 지분이 배정되고, 목 아래는 아버지의 지분을 가져왔다.
엄마는 두상이 진짜 작다. 그걸 내가 닮았다.
손바닥으로 다 가려지는 두상과 부드러운 머리결과 흰머리의 씨앗까지 엄마를 다 닮았고,
아버지의 검은 머리카락의 지분과 곱슬머리를  닮지 않았다.

엄마는 뭐든 잘 드신다. 

그리고  살이 찌는 체질인 반면 아버지는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다.

나는 아버지의 체질을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 뭘 많이 먹는다해서 살찌겠다고 걱정 한 번 해 본 적이 없다. 

이런 체질은 내 아이들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 같다.
작은 두상과  찰랑거리는 머리결과 살찌지 않는체질은 내가 부모님에게 각각 물러받은 유전자이고,
또 내 아이들에게까지 그대로 넘어갔다.
내 어머니가 그랬듯이 나역시 흰머리만큼은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지만
그게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골라 담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조건 좋은 실을 뽑아내듯 이기적인 유전자만 담아주고 싶은  마음이 부모들의 생각일 것이다. 나 역시 부모이기에 ~~

어느 날 딸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몸매를 자랑하며 ''이런 유전자를 줘서 완전 땡큐지♡''하면서  손하트를 날려주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저런 말을 부모님한테 한번도 해본 적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부모님에게 무뚝뚝하다고 뭐라 말할 입장이 안되는 딸이었다.
다행이지 않은가! 내 자식들이 나의 무뚝뚝함을 닮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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