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소개] 음모론, 억측으로 무성했던 코코샤넬 나치스파이로
[음모론소개] 음모론, 억측으로 무성했던 코코샤넬 나치스파이로
  • 오희정
    오희정
  • 승인 2019.03.31 0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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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GUE

불우했던 어린시절을 극복하고

전쟁을 극복한 세계적인 셀러브리티

코코샤넬 가브리엘

개인적으로 그녀가 스파이였다, 아니였다하는

소문만 무성 할 때에도 그녀에 대한

동경은 여전했고 앞으로도 영월히 그녀를 

기억하고 존경할 것이다.

하여 세기의 나치스파이 음모론에

연루되어 시끄럽게 전세계의 주목을

사후에도 받는 존경에 마지않는 그녀

코코샤넬에 대해 멋진 칼럼을 소개 하고자 한다.

VOGUE

나치 스파이였던 

세기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의 일생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의 현대사 파일

1924년 5월 5일 역사 속의 오늘 - 샤넬 No.5 향수 탄생

세계적 패션 브랜드 '샤넬'을 설립한 
가브리엘 코코 샤넬(1883~1971)이 
독일 나치 스파이로 활동했다는 
비밀문서가 70년 만에 공개됐다. 

샤넬이 1942~1943년 독일 공작원인 
귄터 폰 딩크라게 남작의 정부(情婦) 겸 
공작원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아래는 본지가 지난해 5월 
샤넬의 파란만장한 삶을 정리하며 
나치의 프랑스 점령 시기 독일에 
협조적이었던 내용을 강조했던 기사로, 
이번 문건 공개를 계기로 재개재한다.

VOGUE

기자가 마릴린 먼로에게 물었다.

“당신은 잠 잘 때 무엇을 입는가?”

먼로가 답했다.

“샤넬 No.5.”

잠옷 대신 벌거벗은 알몸에 뿌리고 잠이 든다는
뇌쇄적인 발언으로 유명세를 탄 것이 샤넬 No.5 향수다. 

전 세계에서 30초에 한 병 씩 팔려나가고, 연간 
1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이 제품의 기획자와 

제조자는 세기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과 러시아 
황제를 위해 향수를 만들던 조향사(造香士) 
에르네스트 보. 그 유명한 샤넬 No.5 향수가 
탄생된 날이 1924년 5월 5일이었다.

인류 최초의 인공 향수 ‘샤넬 No.5’는 
83가지의 꽃향기와 화학합성 알데히드를 
브랜딩하여 제조되었다. 한 가지 원료로만 

향수를 만들던 시대에 천연원료와 합성물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문을 활짝 연 것이다.

때문에 향수 전문가들은 향수를 논할 때 
종종 No.5 이전과 이후라고 시대 구분을 
하기도 한다. 

그 동안 니콜 키드먼과 로렌 허튼, 알리 맥그로우를 
비롯한 유명 톱 여배우들을 모델로 앞세워 광고를 
하다가 할리우드의 톱 배우 브래드 피트를 내세우기도 했다.

그녀가 극단적인 민족주의 광풍이 불고 있는 
한국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태어난 것은 행운이었다.

▲ 만약 가브리엘 샤넬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조국을 배반한 반역자로 낙인이 찍혀 사회로부터 
매장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코코 샤넬’이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가브리엘 
샤넬은 프랑스의 위대한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처럼 
기구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2세에 어머니가 폐병으로 사망하자 아이들을 
돌볼 수 없게 된 아버지는 샤넬과 어린 여동생을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 버리고 자식들을 
돌보지 않았다.

샤넬은 수녀들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바느질도 수녀들에게 배웠다. 그러던 중 
샤넬의 여동생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샤넬은 고아원을 나와 생 마리 의상실의 
보조 재봉사로 일했다.

보조 재봉사 직업으로 생계 유지가 
어렵자 그녀는 캬바레 밤무대의 
무명가수로 노래를 불렀다. 그때 샤넬이
즐겨 부른 노래가 ‘코코리코’였는데, 
그의 애칭 코코 샤넬은 이 때 만들어졌다.

그 와중에 샤넬은 영국 출신의 사업가 
카펠과 운명처럼 얽혔다. 카펠의 후원으로
1910년에 파리의 캉봉 거리 21번지에 

‘샤넬 모드’라는 모자점을 내면서 유명세를 탄 
샤넬은 작가 장 콕토, 화가 피카소,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등과 어울리며 파리 사교계의 
여왕으로 군림한다. 당시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 
가브리엘 오르지아가 샤넬 모자의 열성 팬이었다.

샤넬이 추구한 패션 철학은 단순하면서 
실용적이고, 편안하면서 우아함을 잃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샤넬은 혁명가였다. 

여성의 허리를 옥죄던 코르셋을 
없애버리고 실용적인 원피스를 선보였다. 
그것은 충격이었고, 억압적인 관습에서의 해방이었다.

모조 보석을 귀부인의 목에 걸게 하고, 
검정색 포드 자동차가 미국에서 유행하자
샤넬은 장례식에서나 사용되던 검정색으로만
 
구성된 리틀 블랙 드레스를 내놓아 
샤넬의 시대를 이끌어 갔다. 
그녀가 20세기 여성에게 남긴 것은 ‘자유’였다.

“여성이 어떻게 자신을 조금도 꾸미지 않고 
집을 나설 수 있는지 난 이해할 수 없다. 그날이 
운명의 상대와 데이트를 하게 될 날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녀의 발언은 이처럼 늘 도발적이었다. 
버나드 쇼가 ‘당대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두 명의 여성’으로 꼽은 인물이 퀴리 부인과 
가브리엘 샤넬이었다. 

앙드레 말로는 말했다.
“이번 세기에 프랑스에서는 
세 이름만 남을 것이다. 드골, 피카소, 그리고 코코 샤넬.”

발췌 : 미래한국(http://www.futurekorea.co.kr)

출처: https://today.blogkor.com/995 [블로그투데이]

당시 2차세계대전, 독일, 프랑스 첩보기관들이

주도하였던 샤넬의 스파이 활동 기록자료는

1944년 11월 파리에서 작성된 메모.

보그사진:에드워드 스타이컨이 촬영한 VOGUE US 192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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