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과 나 사이에 적정한 간격을 만들어 주는 바람
대상과 나 사이에 적정한 간격을 만들어 주는 바람
  • 박다빈
    박다빈
  • 승인 2019.03.26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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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 내가 가장 만나고 싶은 바람은

   어떤 사람이 미술관 입구에 들어섭니다. 오늘은 풍경화를 주로 그리는 화가의 전시가 있는 날입니다. 미술관 입구를 지나친 사람이 전시실 문턱을 넘습니다. 전시실 왼쪽 벽에는 큼지막한 풍경화가 걸려 있습니다. 가을 풍경을 그린 그림 같습니다.

   그 사람이 별안간 풍경화 앞으로 저벅저벅 걷습니다. 그는 걸음을 늦추지 않습니다. 급기야 그는 풍경화에 코를 박습니다.

   그의 눈앞으로 보이는 것은 붉게 물든 능선의 일부분과 나무줄기의 일부분입니다. 나머지는 뭐가 뭔지 잘 구별되지 않습니다.

   대상과 나 사이의 거리가 지나치게 좁을 때, 나는 그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아무리 좋은 마음을 먹고 대상과 밀착했다 하여도, 내가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그 대상의 일부분만을 부정확하게 보는 사람이 됩니다. 대상의 진면목은 볼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너무 사랑하면 눈이 먼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너무 사랑한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든 것이 누구인지도.

   대상과 나 사이의 허공은 허공이면서 가능성이고 기회입니다. 이 허공은 대상과 내가 서로를 제대로 식별하기 위해 최소로 필요한 거리를 확보하게 해 줍니다. 이 허공은 대상과 나 사이에 휴식 시간이 드나들도록 합니다. 이 허공은 대상과 내가 한 몸이 아님을 인지시켜, 대상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게 합니다.

   어려서는 대상에게 내 전부를 주는 것이 낭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상과 나 사이에 아무런 틈이 없는 것이 기쁨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와 다르게 생각합니다.

   누군가와 손을 놓고 걸어도 충분히 아름다운 길이 있고, 그 사람 없이도 그 사람으로 인해 충분히 따뜻한 하루가 있습니다. 눈앞이 대상으로 가득하지 않아도 가득 행복할 수 있는 인생이 있습니다. ‘그 존재가 내 삶을 채우는 것’보다 ‘그 존재의 존재함 자체’를 사랑하게 되니, 세상 곳곳에 내려앉아 있는 허공들이 있는 그대로 완벽해 보이더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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