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라고 말하는 것이 실은 대단한 일이었음을
"괜찮다."라고 말하는 것이 실은 대단한 일이었음을
  • 박다빈
    박다빈
  • 승인 2019.03.22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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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한 마디, 나를 지탱해 주는 명언에 관하여 (2)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나에게 "괜찮다."라는 말을 정말 자주 해 주었다. 정말 자주. 내가 시험을 잘못 쳤을 때도, 체험 학습 가서 거액의 돈을 몽땅 도둑맞았을 때도(그건 우리 살림에 정말 거액이어서, 그건 돈이 아니라 엄마의 피땀이어서, 나는 며칠 내내 아뜩해했다), 난데없이 억울한 일을 당해 공황에 빠졌을 때도, 바라던 일이 잘 되지 않아 슬퍼할 때도,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괜찮다. 괜찮다.

   그때는 엄마가 그냥 속도 없이 그런 말을 해 주는 줄 알았다. 나에게 살뜰한 관심이 없어서, 일이 너무 바빠서, 대강 괜찮다고만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게 아님을 알았다. 나는 나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괜찮다는 말을 선뜻 건네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괜찮다는 말은 결코 쉽게 나오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두 번 정도는 마음 없이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진심 없이 꾸준히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뭔가를 진심으로 괜찮다고 생각하거나, 그것이 진심으로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그 말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괜찮은 게 별로 없는 어른'으로 살아도 엄마는 나에게 항상 괜찮다고 해 주었다. "괜찮다. 니 나이에 벌써 전부 괜찮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안 괜찮아도 괜찮다. 너무 애쓰지 마라. 때 되면 된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맘 편히 지내라. 매사 니 할 일에 전념하면 된다."

   엄마는 무슨 일을 당해도 울지 않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세상 모든 것에 괜찮다고 할 줄 아는 용감하고 품이 넓은 사람이었다. 나는 엄마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단 한 순간도 무너지지 않을 철옹성 같은 사람. 

   내가 엄마 삶의 진짜 모습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무렵부터, 엄마는 당신의 헐어 빠진 내면을 조금씩 보여 주었다. 살면 살수록 엄마의 흔들림 없는 강인함이 비정상적으로 느껴져서, 엄마가 마냥 딴딴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엄마도 사람이었다. 엄마는 그냥 괜찮아서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다. 당신이 안 괜찮으면 안 되기 때문에, 엄마는 죽기살기로 괜찮기를 소망하거나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굳게 믿어 버리는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나를 경악하게 했다. 내 마음 편하자고 엄마를 그저 용맹한 장수처럼 생각해 온 건 아닌가. 

   이렇다 할 기술 하나 없이 아이 둘을 혼자 키우기 위해, 엄마는 세상 모든 것과 동맹을 맺기로 했다. 불행과도 싸우지 않았다. 불행이 오면 불행이 오는 대로 엄마는 엄마의 삶을 꾸려 나갔다. 우리의 작은 보금자리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괜찮다. 괜찮다."

   자식이 나이가 들면 부모 자식 간의 역할이 바뀐다고 하는데, 나는 몇 년 전부터 그것을 실감하고 그것을 살고 있다. 엄마가 얼굴을 가리지 않고 울고, 엄마가 첫 옹알이 같은 투정을 하고, 엄마가 자신의 아픔을 드러낼 때, 나는 엄마에게 괜찮다고 한다.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서 괜찮다고 하는 게 아니라, 울어도 되고 투정해도 되고 아파해도 된다고, 그 자연스러운 표현 모두가 괜찮아서 괜찮다고 한다. 엄마 말고 사람으로 살아도 괜찮다고.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누군가의 짐을 나누어 지는 것이 예전에는 단순 노동일 줄 알았더니. 그것은 마음 깊은 데서 자발적으로 우러난 보답의 마음이고 사랑의 마음이고 기꺼운 행복의 마음이구나. 

   내 생애 전반을 지탱해 준 엄마의 "괜찮다.". 이제는 내가 그 말로 엄마 삶의 하부를 지지하려고 한다. 내가 엄마를 안고 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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