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덕의 등산재구성] 정윤희와 설악산...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시나요.
[김진덕의 등산재구성] 정윤희와 설악산...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시나요.
  • 김진덕
  • 승인 2019.03.15 2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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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봄과 여름, 우리의 정윤희는 신성일과 함께 설악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설악에 관한 꿈같은 사진 한장을 남겼습니다.

처음엔 정윤희에 온통 필이 꽂혔다가 순식간에 그녀의 눈길을 받았을 뒷배경으로 관심이 바뀝니다. 이곳은 과연 설악산 어디일까요? 누가 모르시나요.

 2016년부터 궁금했는데, 집단지성을 통해 결국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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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장면은 신성일과 정윤희, 김자옥 주연의 1979년작 '가을비 우산속에'의 한장면입니다. 이 영화에 대해 좀 더 읽으시려면 --> 여기를

이곳이 어디일까요? 침봉이 있는 바위 산세는 분명 설악산일텐데. 산도 좋고 그리고...

나즈막한 지붕의 집도 세트장이 아니라 진짜  집으로 보입니다. 녹이 슨 게 분명 양철지붕 같고요. 화전민의 집인 게 틀림없습니다. 

집뒤에는 배꽃인 듯 하얀 꽃이 눈부시게 가득한게, 우리가 상상하는 '나의 살던 고향'의 전형입니다. 집앞으로 난 소롯길도 꼭 필요한 만큼 밟혀 저절로 만들어진 길이고요......

모두가 그리워 하는 우리네 고향의 원형. 과연 이곳이 어디일까요? 45년 뒤 지금에도 이곳의 흔적이 남아 있을려나. 모든게 꿈결같이 사라져, 속절없는 과거 이야기일 뿐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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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9일, 여기가 그리도 궁금하여 글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다음날 설악산 매니아인 한국산서회 안성민 선배가 이렇게 포문을 열었습니다.

ㅎ 설악산 맞나요?  가운데 삐죽 솟은 봉우리가 서북주능 장군봉 같은디. . .
그럼 한계령가는 44번 국도 옆 자양전 같기도하고. . .딱 떨어지진 않네요.^^

설악산을 충분히 가보지 못한데다 그와 함께 하는 설악산 전문 팀이 쉽사리 정답을 밝혀내기를 바라며 공을 넘겼습니다.

그렇게 시나브로 묻혀져 가다가 2018년 11월 22일 마루님이 '첫번째 상투바윗골, 재량골, 삼지 바윗골 같기도 하고 가물 됩니다 ㅎ'라고 말씀을 해 다시 관심의 불꽃을 촉발시켰습니다. 그래서 설악산 지도를 펴놓고, 블로그들의 산행기를 통해 검색을 이어갔는데, 드러날듯 드러날 듯 산세가 조금씩 미진하여 확신을 갖지 못하고 아쉽게 끝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미제의 사건으로 종결되지 않고 올해 3월 1일 다시 수사선상에 오릅니다.

당시 촬영지가 한계령과 경포대 일대였다고 하는데, 저는 도저히 알길이 없고 1979년 6월호 주간지(아마 선데이서울)에 올라온 사진을 어느 분 블로그에서 퍼서 올립니다. 당시 배우나 감독 스텝들이 거의 고인이 되셔서 알아볼 길이 더 없어져서 안타깝네요.

라고 산서회의 강승혁 선배가 예의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위의 블로그에 소개된 아래의 사진들과 사진 소개글을 실마리 삼아서 말이죠.

원 소개글- 정상의 라이벌 정윤희 김자옥이 한 스크린에서 마주쳤다. 지금까지 영화 연극을 통틀어 한번도 공연한 함께 한적이 없는 두개의 귀염둥이 별이 새영화 가을비 우산속에서 경연을 벌이는 것 . 설악에서 펼쳐진 첫 로케 현장.. 

'정상 라이벌 -설악의 대결'이라는 제목이 눈에 띱니다. 산세가 알프스스러워 이국적 분위기를 연출하기 좋을텐데, 사실 설악 올로케 영화는 의외로 그리 많지 않습니다.  

ㅁ 설악산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찍은 배우는 누구일까요? --> 여기를

ㅁ 정윤희와 설악산) 1882년 그녀는 토왕성 빙벽을 오르려 했다 ---> 여기를

원 소개글- 잠시 쉬는 시간을 틈타 계곡의 초하를 즐기는 정양의 짖궂은 물장난에 김양의 깔깔 대소가 터진다.

암벽이 병풍처럼 세워져 있는 뒷 배경은 분명히 설악산입니다. 더 궁금해지네요.

원소개글- 숙소겸 오픈 세트이기도 한 산장으로 가다가 장승을 발견하고  잠시 발을 멈추었다.  촬영보다 산책에 정신이 팔린 걸까?

강승혁 선배의 집중력과 놀라운 추리력을 믿기에 곧 결과를 알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3월 13일 이렇게 명징한 논리와 증거로 깨끗하게 해결해 냈습니다.

 

자양전의 전이 밭(田)을 의미한다면 몇가지로 조건을 축약해 볼 수 있었습니다.

첫째 촬영지가 한계리 일대였다고 알려졌던 점.

둘, 위 사진에서 촬영지 근처에서 장승을 보고 있는 사진이 있고,  얕은 계곡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된 마을이 있을 거라는 점

셋째, 마을을 이루려면 산지에서 밭을 일굴만한 지형에서 가능한 일일테고, 그 밭은 일조 조건상 남향으로 산을 등져야 가능한 지형일테고, 그렇다면 한계령 정상에 가까운 곳은 아닐테고 한계령을 중심으로 암봉이 보이는 좌우일 확률이 크다고 보았습니다.

저는 가본 적이 없지만, 옛날 책을 보다보니 사진에서 자양전에 장승이 보이고 화전민의 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양전 일대 즉 즉 재량골과 장군바위골 상투바위골 사진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이 사진은 블로그에서 퍼온 것인데 설명을 옮겨 봅니다. 장군바위골 풍경으로 설명을 하고 있네요

그 블로그는 역시 설악산 매니아로 이름높은 맘짱님 의 블로그였는데요.

재량골 옆 장군바위골의 풍경이라는데, 놀랍습니다.

정확합니다. 너무 똑같아 도리어 의아롭기까지 합니다.

설악산을 가려 할 ‹š, 장수대 지나면서 고개를 외로 빼어내어 설악만이 갖는 풍경,설악산이 갖는 묘한 아우라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마음이 바빠집니다. 빨리 한계령에 오르기를 그리고 오색지구에 닿기를..

그러다보니 관심권 밖이었던 재량밭. 장군바위골.상투바위길이라는 지명을 오늘은 유심히 보게 됩니다.

1939년 화전민 가구수는 총 34만호에 187만명으로 당시 농가 300만호의 11%에 달했습니다. 1973년 박정희 정권때의 조사에 의하면, 그때도  화전민은 총 30만호로 당시 농가의 12%를 점했습니다. 그리고 강제적인 화전민 정리 사업이 잇따랐죠. 그러나 그들에 대한 변변한 기록이나 조사작업 또는 구술작업은 보기 어렵습니다.

이 장면이 살짝 달라보입니다. 지금 설악산이 등산'객'들이 스쳐지나가는 대상일 뿐이지만, 한때는 그곳이 넓은 품이 되어 많은 이들을 거두어 살렸다는 것을 말이죠.

언젠가 시간나면 이 사진 한장 들고, 장군바위골 입구를 서성거리면서 이 지점에 서보고 싶습니다. 무상한 세월을 느끼고, 숫가락이나 깨진 그릇 또는 유리구슬 하나가 눈에 띠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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