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훈 칼럼] (4) 우리가 ‘어른’이 되며 잃어버린 것들
[한재훈 칼럼] (4) 우리가 ‘어른’이 되며 잃어버린 것들
  • 한재훈
    한재훈
  • 승인 2019.03.1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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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어느 순간, 문득 한 가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아, 내가 언제 이렇게 컸지”. 어렸을 때 집 앞 놀이터에 앉아 흙으로 터널을 만들고 모래성을 만드는 걸 그렇게 좋아하던 내가 어느덧 사회에 나와 나 혼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아직도 내 마음은 성숙하지 못한 부분이 많은데. 모든 것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가끔은 내가 사회에서 ‘어른’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슬프기도 하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나도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테고, 스무 살이 넘어 소위 ‘어른’이 된 사람들도 어른이 되는 대가로 희생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마냥 노는 게 좋았던 여유로움, 성별, 나이 구분 없이 누구하고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친밀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뭐든 가능했던 그런 것들을 어른이 되고 난 후 갖고 있기란 누구에게나 어려운 법이다. 나도 어렸을 때 현금이 아닌 카드를 쓰면 모든 걸 무한정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으니까.

‘어른’이 되어버린 나의 마음을 오랜만에 따뜻함으로 가득 채운 영화가 나타났다. 매우 작은 메가박스 상영관에서 상영하길래, 보고 싶었던 영화라 개봉한 지 꽤 지난 후였음에도 혼자 보고 왔다. ‘메리 포핀스 리턴즈’. 영화를 보는 내내 뭘 상상해도 불가능이란 없던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한 때 해리포터를 좋아했던 나는 어딘가에는 마법의 세계가 있을 거라고, 나도 마법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지금도 마음 한 구석에는 그 믿음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러한 마음들을 다시 꺼내보는 느낌이었다.

올해 <덤보>와 <알라딘>의 실사 영화를 준비한 디즈니는 고전 애니메이션들의 재발견에 신경 쓰는 추세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뿐만이 아닌, 명작 고전들의 리메이크를 통한 흥행 가능성을 위주로 리메이크하는 것이다. 그런 디즈니에 눈에 들어온 건 1964년 작품 <메리 포핀스>였다. 당시 600만 달러 정도의 제작비로 1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기록하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러 부문을 석권했던 <메리 포핀스>는 뮤지컬로도 만들어지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영화화를 반대했던 원작자 P.L.트래버스가 죽고 나서야 유족들의 허락을 받아 영화의 속편을 만들게 된 디즈니는 <메리 포핀스>의 이야기로부터 25년이 흐른 뒤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는다.

체리트리 가 17번지에 살고 있는 마이클과 그의 세 아이들. 몇 년 전 아내이자 엄마를 잃은 이들은 살고 있는 집이 압류될 위기에 처한다. 남은 기한은 5일. 이들 앞에 나타난 건 ‘연’을 타고 날아온 메리 포핀스다. 뱅크스 가문의 아이들을 다시 돌보게 된 메리 포핀스는 마법으로 하나 둘 바꿔놓기 시작한다. ‘메리 포핀스’ 역을 맡은 에밀리 블런트의 지금까지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는 이번 작품에서의 모습이 가장 좋았다. 1964년 작품에서 포핀스 역을 맡은 줄리 앤드류스가 연상될 만큼 메리 포핀스, 그 자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거꾸로 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보일거야’라고 말하는 영화는 관점에 따라 불가능도 가능한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치 어렸을 때 우리가 모든 것이 가능할 거라 믿었던 것처럼. 어릴 적 기억이나 꿈을 잃어버렸다 할지라도 그것은 아주 사라진 것이 아닌, 마음 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메리 포핀스만의 방식으로.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들은 틀에 박힌 사고에 갇히고 그게 편하다고 느끼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세계를 보기도 하고,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메리 포핀스가 돌아와 어른이 되어버린 마이클이 아닌, 세 아이들에게 해 준 것은 삶의 터전인 집을 지켜준 것뿐만 아니라 세 남매의 유년을 지켜줬던 건 아닐까.

영화를 보면서도 음악을 듣는 즐거움과 마음 한 구석을 따뜻하게 만드는 뮤지컬을 보는 듯한 황홀함이 머리가 아닌 가슴을 울린다. 아이들이 보기 좋은 가족영화이지만, 어른들에게 더 추천하고픈 영화다. 뻔한 결말임을 알지만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메리 포핀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와 닿는다. “과거는 잊어, 현재는 영원해”

한재훈 (칼럼니스트)

 - 루나글로벌스타(연예, 영화 전문지) 창업자

-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전공

- 저서 <흔적을 따라서>, <나의 추억과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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