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몰랐던 것들
어려서 몰랐던 것들
  • 박다빈
    박다빈
  • 승인 2019.03.03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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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저녁 단상

   삶이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는 문득문득 생각한다. 그 페이지가 넘어가기 전에는 내가 까맣게 몰랐던 것들에 관하여. 오늘은 옷과 관련된 기억들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나는 남들에 비해 추위를 좀 많이 타는 편이라, 그동안 여러 사람들에게 '옷 신세'를 여러 차례 지며 살았다. 여기서 말하는 옷이란 겉옷, 장갑, 모자, 목도리 같은 걸 총칭하는 단어다. 퍼렇게 질린 얼굴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나에게 흔쾌히 자신의 옷가지를 건네 준 사람들. 그들 덕분에 나는 다양한 종류의 냉해를 피했다. 감기, 몸살, 동상 같은 것들을. 

   누군가에게 내 옷가지를 내어 주는 경험을 하게 되기 전까지, 나는 그 행위의 실질적인 깊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마음 가는 사람이 추워하는 걸 보는 게 생각보다 못할 짓이라는 걸 알게 되고 나서, 나는 내가 과거에 참 크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내가 받은 것들은 단순한 옷가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개 마음이었고 때로는 고백이었다.

   누군가를 내 마음에 들여 놓을 수 있게 되고 나서야, 나는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 마음속에서 무료 숙박을 하며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진실로 마음을 꺼내 쓸 수 있게 되고부터,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마음을 주는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할 수 있었다. '저 사람이 나한테 마음을 쓰는구나.' 파악하고 거기에 제때 감사할 수 있었다. 보답할 수 있었다. 인연에 깊이를 더해 갈 수 있었다. 마음을 들고 오는 사람이 얼마나 아프도록 귀한지, 마음을 들고 누군가에게로 나아가는 일이 얼마나 기쁘고 눈물겨운 일인지, 저릿하게 배워 나갈 수 있었다.

   나로부터 마음이 융통하기 시작하자, 세상 모든 것이 마음의 일처럼 보였다. 그것은 황당한 환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정말로 많은 것들이 마음의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마음 없이 행해지는 일들이 세상에 존재할 수는 있겠지만, 웬만한 일들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되고 진행될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아직은 그 믿음을 품어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계속 믿고 싶었다.   

   살아가는 일이 한 권의 책을 읽는 것 같다고 하는 말이 요즘 부쩍 와 닿는다. 한 해, 한 달, 하루의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내가 얼마나의 집중력, 열정을 발휘하느냐에 따라서, 나는 뭔가를 배우거나 배우지 못한다. 어느 대목을 한 번 읽고도 그것을 뚝딱 암기하는 때가 있을 것이고, 뭔가를 열 번을 읽어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거나 아무것도 뉘우치지 못하는 때도 있을 것이다. 똑같은 페이지를 읽어도, 누군가는 첫째 문단에서 감동을 받고, 누군가는 둘째 문단에서 오열할 것이다. 누군가가 감명 받은 구절을 읽고 누군가는 화를 내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비극 같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코메디일 수도 있다. 참 이상하지만 참 범상한 일.

   똑같은 책을 읽어도, 전교생의 독후감은 전부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결과일 터. 나와 다른 의견을 드러내는 사람이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불편해진다면 '나는 지금 저 사람이 내 독후감과 똑같은 독후감 쓰기를 바라고 있구나.' 생각해 보자고 스스로에게 조금 유쾌하게 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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