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덕의 등산재구성] (22)해인사의 마지막 미스테리 - 홍도여관 안을 처음으로 엿보다.
[김진덕의 등산재구성] (22)해인사의 마지막 미스테리 - 홍도여관 안을 처음으로 엿보다.
  • 김진덕 칼럼니스트
    김진덕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3.04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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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팔만대장경의 장(藏)은 감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 대장(大藏)은 신비로운 구석도 없이 다 드러나 있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엑스트라들이 그 누구에게도 눈길을 받지 못한다. 홍도여관도 마치 엑스트라인양 해인사와 관련하여 이름이라도 짐작할 이들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오늘날 해인사의 마지막 미스테리일 수도 있겠다. 

아래는 일제 때부터 70년대까지 해인사 동구(洞口)를 장식했던 그 홍도여관을 복원해 보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6.25 전쟁 중 미군은 해인사를 폭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한국군 장군 덕택에 금강산의 수많은 사찰과 달리 전화를 입지 않았다. 사진 하단의 설명에는 '연간 해인사를 찾는 관광객이 50만에 달했는데, 시설이 완비되어 관광객들이 불편이 없었다.'라고 적고 있다. 

같은 시기 국내의 그 어떤 곳과 비교해도 최고로 번듯한 상가단지는 전쟁 후 급조되었다기보다는 폭격을 당하지 않은 해방 전의 시설이 아닐까라는 심증이 간다.

가야산 홍류동 깊은 계곡의 해인사 앞의 이 시설단지를 대표하는 걸로 홍도여관이 있'었'다. 일제 때부터 해인사를 찾던 유명 인사들이 들렀다. 6.25 때도 폭격을 받지 않아 온전했었다.

그러다가 언젠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렸다.

1939년 나온 '조선의 관광' 중 일부인데, 맨 아래 '여관'은 홍도여관을 말하고 있다. '해인사 산문 앞에 조선식과 내지식 객실로 이루어진 홍도여관이 있다. 수용인원은 만원이다.'

홍도여관은 일제때에도 인기 절정이었던 해인사가 내방객들과 관광객들을 수용하기 위한 목적의 직영여관이었다. 유명한 근대 여성 나혜석은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에 상처받은 신세가 되어 해인사를 찾는다.

울창한 숲 사이로 들어서 꼬부랑꼬부랑한 길을 따라 숨을 몰아쉬며 어넉에 올라서니 산중에 지엘 보기 싫은 함석지붕 하나가 나타난다.

이것이 해인사 지정 여관인 홍도여관이다. 방 하나를 청구하여 행장을 풀고나서 여관 1,2층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니 도회지에서도 볼 수 없을 만치 설비가 되어 있으며만원이 될 때는 이삼백명을 수용할 수 있다 한다. 반찬이며 대접이 놀랐다. 

라고 적고 있다.

조선인들은 일제식 '함석지붕'을 대체로 싫어했다. 그러나 나혜석은 그 안에 들어가서는 놀랐다고 했다. 조선 여관과 조금 고급(일식) 여관의 첫번째 차이는 '서비스' 정신의 유무였다.

소설가 김동리도 막 필명을 날리기 시작하던 무렵, 글을 쓰기 위해 해인사에 머문 적이 있는데, 홍도여관이 비싸서 하룻밤인가 자고는 그다음날 인근 민가로 옮겼다고 자서전에 남기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사찰앞에 번듯한 여관이 있던 것은 해인사만은 아니었다. 일본인들이 복작복작했던 부산 통도사 앞에도 이렇게 마츠다야(증전옥) 여관/호텔이 있었다. 일제 때 일본인들과 좀 사는 조선인들은 관광과 여행을 즐겼고, 따라서 사찰은 수익사업으로 여관을 운영했던 걸로 보인다.

그렇다면 홍도여관의 홍도(紅濤)는 무슨 뜻인가. 6,70년대 수학여행 온 - 아마 그들은 한글세대였을 것이다 - 고등학생들이 홍도여관을 지나치면서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아아가 있다'라는 노래를 불러 주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고 한다.

나 역시 아마 그 홍도가 이 홍도라고 이해했을 것인데. 홍도의 '도'는 파도 도이다. 그래서 육군 노도부대는 '성난파도'라는 뜻이고, 일제떄 인기 절정의 원산 송도원해수욕장은 솔향이 파도처럼 밀려온다는 뜻이겠다. 홍도는 해인사가 있는 홍류동 계곡의 '홍'을 따서 만든 붉은 단풍이 온산을 물들인다'쯤 될려나.

 

위치를 다시보자. 지금은 역시 사라진 신령스러운 연못인 영지를 사이에 두고 있다. 건물이 두채임이 확인된다. 

이제 공식자료들 말고 여러 B급 자료들에 의해서 그 모습을 좀더 살펴보자.

비석군 저쪽으로 근대식 건물이 눈에 띤다. 저게 바로 홍도여관이다. 아래부터는 저 건물을 확인하기 위해 시간과 돈과 정열을^^ 쏟아부은 건데, 막상 모아보니 어쩌면 조촐하다는 거를 양해하시라.

1960년경 모습이로 호텔 입구의 모습이다. 입구좌측의 기둥에는 전등이 오른쪽 기둥에는 '홍도여관'이라는 간판일거다. 그 오른쪽에는 게시판이 잇는데., 무엇무엇이 적혀 있었을까? 단체여행명? 식사명? 

오른쪽 건물의 모습이다. 전형적인 일제식 2층 건물이다. 지금도 군산 울릉도 등에 남아 있다.

1960년 경 대학생들로 보이는 - 아마 졸업여행이나 입학여행- 뒤로 홍도여관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이제 홍도여관 안으로 들어가보자.1 956년 이화여대 산악부는 동계 가야산을 오른다. 그때 그들이 숙박한 곳은.... 아무래도 홍도여관일 것이다.

당시 이렇게 쾌적한  그리고 꽃무늬의 여관은 여기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문턱을 보면 일본식이 아닌가 싶다.

벽을 들어내면 이렇게 단체여행객들도 수용할 수 있다.

촛불을 두루 켜고...사과와 과일을 놓고 도란도란...미제 캔틴에는 술이 있겠지. 홍류동 물소리는 밤새 그침이 없는데....

전후 1960년경 나온 지리산 개발 관련 책자에 의하면, 관광 지리산의 제일 치명적인 약점 중 하나가 지리산 자락 그 어디에도 여관이 없다는 것으로 적는다. 그 정도로 맨 처음의 상가단지 사진은 해인사가 어떤 위세를 누렸는지를 알게 된다. 이상 당시 해인사의 중심에 있던 홍도여관 이야기였습니다...

홍도여관 그 속을 엿보다   

해인사 관광첩에서 본 60년대식 우리네 사랑 이야기 

1960년대 해인사 관광사진 기념첩 리스트 

1959년 전설같았던 해인사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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