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훈 칼럼] (2) 소소한 행복을 주는 다이어리, 너도 써 봐
[한재훈 칼럼] (2) 소소한 행복을 주는 다이어리, 너도 써 봐
  • 한재훈
    한재훈
  • 승인 2019.03.0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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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잡다하게 글 쓰고 기록을 남기는 것을 좋아했던 내가 일기라는 것을 온전히 스스로 원해서 쓰기 시작한 것이. 계기는 이랬다. 당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던 나는 영화와 할리우드 문화에 관심이 많아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극장에서 영화를 즐겨 보곤 했다. 그 때의 삶의 즐거움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게 바로 할리우드 배우들과 펜팔을 주고받으며 편지와 싸인을 모으는 것이었다. 펜팔을 주고받으며 영어 실력이 엄청나게 향상했던 이 시기에 외고를 준비하기도 했었는데, 아무튼 편지를 하나하나 주고 받으면서의 느낌이나 개인적인 행복함들을 보관하고 싶어 시작한 게 다이어리의 시초였다. 처음에 기록을 시작하게 된 이후, 단순히 며칠에 한 번 끄적이던 것에 머무르던 내 기록들은 시간이 조금씩 흐르며 더 자주, 더 구체적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부터 일기만을 쓰기 위한 나만의 일기장을 마련했다. 당시엔 그냥 일기장을 하나 산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샀지만, 지금은 한 해가 끝날 때쯤 1년을 나와 함께 할 예쁜 일기장을 고를 때 설레면서도 즐거움이 넘친다.

어렸을 때는 많은 이들이 일기를 쓴 경험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하루 수업을 마치며 꼭 내주는 숙제가 일기 쓰기였을 테니까. 요즘도 아마 그렇겠지. 근데 써 오라고 할 때는 막상 쓰기 싫었다. 이유 같은 건 없었고 그냥 귀찮았다. "매일 쓰는 일기가 달라봤자 얼마나 다르겠어". 오늘은 날씨가 어땠고, 무엇을 먹었고, 엄마에게 칭찬을 받았거나 싸워서 기분이 나쁘다거나 이런 내용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 때는 어렸으니까 하루하루 일상이 달라져봤자 얼마나 달랐겠는가. 어렸을 때의 추억이 담긴 그런 일기장들이 지금은 안타깝게 사라졌지만, 분명히 그런 내용을 썼을 것이다. 내 동생의 일기장만 봐도 나랑 별반 다르지 않기에 그 때의 애들은 보통 다 일기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하루하루의 기록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다. 일기를 쓰기 전에는 분명 몰랐던 사실이었는데, 학교에서 일기를 쓰게 했던 이유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이다. 하루하루를 글로 기록하고 내 인생을 저장한다는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학교에서 가르치려고 했다는 걸 깨달았다.

필자는 지나간 과거에 별로 얽매이지 않는 편인데, 그래도 가끔씩 예전의 일기장을 펼쳐봐야 할 일이 생긴다. 떠올리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거나, 기억하고 싶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한 사소한 일 같은 것 때문에 말이다. 누구든 항상 자신의 인생이 '맑은 날씨'는 아닌 것처럼 '흐린 날씨'도 있기 마련인데, 문득 생각해보면 일기장을 다시 펼쳐서 보게 되는 날은 보통 '흐린 날씨'가 아닌가 싶다. 그럴 때 일기장을 보면 나름대로 힘도 나고, 기록해 둔 문구를 읽으며 미소를 짓게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중학교 3학년 때의 내 일기를 보면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최소 일기장의 반은 차지하고 있을 텐데 그 조그마한 일기장 안에 내 감정이 다 들어있다는 것이 지금도 읽을 때마다 신기하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조금은, 아니 꽤 많이 오글거리는 내용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다이어리에 적혀 있는 글을 읽는 것만으로 그 때의 감정과 기억이 조금이나마 살아날 때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실감하게 된다. 그 때의 나는 어땠구나, 지금의 나와는 이러한 모습이 다르구나, 내가 어느 부분에서 많이 성숙해졌구나, 이런 식으로 나를 돌아볼 수도 있고, 매 순간을 기록하며 현재의 소중한 기억들을 나중에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기에.

그렇게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정식으로 첫 일기장을 가지게 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소중한 순간들을 다이어리에 기록하는 게 습관이 됐고, 매일 쓰지는 못하더라도 재밌는 일을 하나씩 찾아 다이어리를 쓰는 게 삶의 소소한 행복이 됐다. 이제는 다이어리를 쓰지 않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바쁜 삶 속에서 하루 10분만 투자해서 다이어리를 쓰는 습관을 기른다면 분명히 소소하게 얻는 게 있을 것이라 장담한다.

⁂ 한재훈 (칼럼니스트) : ‘루나글로벌스타’ 창업자, 작가, 영화 글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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